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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때까지 한다’는 불굴의 정신과 기억 형상화 작업으로 정상에 오르다

‘한강의 옛 기억을 담은 미술관’ 설계한 백희성 건축가

마포대교 중간쯤 가면 바지선에 세운 돔 형태의 작은 섬이 보인다. 한강의 자연환경을 살리기 위한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한강의 옛 기억을 담은 미술관’(이하 기억을 담은 미술관)으로 백희성 건축가(KEAB 대표)가 설계한 것이다. 백 대표는 돔 모양은 조약돌을 형상화한 것이고 바닥에는 모래를 깔았다고 일러주었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옛날 한강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아름다운 몽돌이 굉장히 많았다더군요. 배가 다니는 길을 피해 백사장이 깔려 있던 곳쯤에 기억을 담은 미술관을 설치한 겁니다.”

서울시 주관으로 앞으로 50여 작품이 한강에 설치될 예정이다. 기억을 담은 미술관도 한강 곳곳에 들어설 예정이라는데 6월 시범 개장을 거쳐 올해 말부터 상시 개관하게 된다.

자전적 에세이 《환상적 생각》과 프랑스의 오래된 건물을 소설 형식으로 소개한 《보이지 않는 집》의 저자 백희성 대표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2016년 초 한국에 건축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귀국하자마자 중요한 프로젝트를 연이어 수주하면서 건축계가 눈여겨보는 인물이 되었다.

전라남도 화순의 14만 8760㎡(4만 5000평)에 이르는 식품문화예술단지 설계는 그의 책을 읽은 독자의 강력한 추천으로 맡게 되었다. 식품단지를 갤러리처럼 만들기 원하는 건축주의 바람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화순의 기억을 담아 10가지 색깔의 벽돌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제주도의 대형 오피스텔을 의뢰받았을 때 그는 파도와 검은 돌을 떠올리고 마천석을 불에 구워 각기 다른 색깔로 만들었다. 마천석 외벽은 낮에는 입체적 외곽과 파도가 밀려드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밤이면 완벽한 검은색으로 바뀐다. 백희성 대표는 ‘건축은 상상’이라고 말했다.

“건축가들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어요. 저는 인간의 내면에 관심이 많아요. ‘기억이 건축이 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밖으로 눈을 돌렸고, 카피가 안 되는 게 뭘까 생각해 보니 바로 사람이었어요. 개개인마다 개성이 넘치니까요. 인간의 성격과 정체성을 규정짓는 건 경험입니다. 그 경험이 기억이라는 장치를 통해 희석되고 발효되면서 개인마다 독특한 가치관이 생기는 거죠. 늘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요.”

바지선에 세운 돔 형태의 작은 섬, ‘한강의 옛 기억을 담은 미술관’.
인간이든 도시든 소실된 기억이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기에 그 잃어버린 기억을 어떻게든 끄집어내서 건축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백 대표의 목표이다. 그는 일을 맡으면 의뢰인이나 주변 환경 등을 오래 지켜보면서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내 현재와 연결시킨다.

그가 건축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의 관심 덕분이다. 꿈이 자꾸 바뀌는 고등학생 아들이 어릴 때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책상에 건축학 책을 슬쩍 얹어두었던 것이다. 명지대학교에서 현대건축설계를 공부할 때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빠져들었다. 공모전에 수없이 도전해 50번 낙방하고 8번 당선된 그는 대기업 디자인팀 입사 기회를 밀치고 대학원에 진학해 전통건축까지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 국제현상설계공모전을 열심히 준비하던 중 한국건축사는 응시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실무를 쌓은 뒤 세계 무대에 나가려던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자 곧바로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다.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는 부모님에게 1000만원을 빌려 2006년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다들 무모하다고 했지만 ‘국제건축공모전에 참여해 세계의 많은 건축가들과 승부를 가려보고, 내가 원하는 건축을 하자’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었죠.”

프랑스 대학 입학을 위한 어학시험에 통과하려면 적어도 2년이 걸린다는 말에 ‘공부 시간을 늘려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각오로 밤 12시까지 매달렸다. ‘정말 간절하다면 될 때까지 하자’는 신조로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독하게 노력해 1년 3개월 만에 시험을 통과했다. 그가 파리-발드센 건축대학 마스터 과정에 편입하여 배운 것은 ‘다양한 시각’이었다.

“과제를 내면 한국 교수님은 분명한 기준을 갖고 비평하셨는데 프랑스 교수님은 매주 다른 기준으로 비평하셔서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다양한 비평으로 인해 여러 시각을 갖게 되었죠. 이제는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다른 분야 전문가나 저와 견해가 다른 분들에게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선에 대해 생각합니다.”


세계를 무대로 기억을 형상화할 계획

건축가 백희성은 “기억이 건축이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백 대표는 건축을 충분히 공부하고 간 덕에 프랑스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며 국내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권했다. 프랑스에서도 ‘될 때까지 하자’는 정신을 발휘해 재학 중에 응모한 공모전에서 6번 떨어지고 2번 당선되었다. 졸업 전 100군데가 넘는 곳에 지원하여 겨우 찾은 일자리로 실무 경험을 쌓은 그는 졸업 후 지원자가 넘쳐 입사 공고를 내지 않는 장누벨건축사무소에 들어갈 결심을 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건축물을 짓는 세계적인 건축사무소예요. 프랑스 친구들조차 어차피 못 들어갈 곳이라며 지원할 엄두를 내지 않는 곳이죠.”

장누벨건축사무소에 이력서를 보냈으나 소식이 없자 직접 서류를 들고 찾아갔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그냥 놓고 가라는 말뿐 역시 소식이 없어 세 번째 또 도전했다. 그래도 답이 없자 전화로 “이력서를 봤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말했다. 며칠 후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답변이 왔고 드디어 합격했다. 장누벨에 입사하자 프랑스 친구들이 더 놀랐다고 한다.

연이어 프랑스 모든 건축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심사하는 폴 베이몽상을 수상하는 개가를 올렸다. 백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사실이 국내에까지 알려졌다.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고 책도 출간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장누벨건축사무소에서 3년 정도 일한 뒤 독립했다.

“프랑스는 신축이 별로 없고 주로 리노베이션이에요. 프랑스 친구들도 베트남 같은 건축이 활발한 나라로 많이 진출해요. 세계에서 인구당 건축이 가장 활발한 곳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그는 서울을 정의하기 힘든 도시, 매력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거대한 도시에 산과 고궁이 있어요. 지하철역에서 올라가면 광화문이 보이는 건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놀라운 풍경이죠. 한국은 보석으로 꽉 찬 짱돌 같은 나라입니다. 콘텐츠를 발굴하고 창조하기 좋은 환경인 데다 공무원들이 열려 있어요. 서울의 지명에 대한 조사를 체계적으로 하고, 그 이름을 추적해가면 숨겨져 있던 귀한 얘기가 나올 겁니다.”

그의 사무실은 BC 13세기 한성백제 자리인 풍납동에 있다. 신석기시대를 제외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땅이라는 이야기를 따라 그곳에 자리 잡은 것이다.

걸어온 길이 다 힘들었다는 백희성 대표는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된 건 2002년부터 쓰기 시작한 ‘자기 관찰 노트’ 30권이라고 소개했다. 건축에 대한 고민을 경험을 통해 해결하며 기록한 산물이다. 그는 건축이야말로 ‘자아 성찰의 도구’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가 AI(인공지능)로 하나 되는 시대인 만큼 공상을 잘하는 친구들이 미래를 지배할 겁니다. 머리 좋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해외로 나가 꿈을 펼치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백희성 대표도 파리 활동을 점차 늘려 세계 무대에서의 기억 형상화 꿈을 꾸고 있다.
  •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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