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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산뜻하게 그리고 싶어요

화가 서상익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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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익은 어렸을 때부터 생각과 고민, 꿈을 모두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2008년 첫 개인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던 자취방 침대에 사자가 누워 있는 장면 등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진보를 거듭한 지금 그는 미술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하되 보는 사람은 무겁지 않게 느끼도록 산뜻하게 그리고 싶어 한다.
몇 시쯤일까? 북적거려야 할 햄버거 가게가 텅 비어 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실내를 환하게 밝히고 있고, 검은색 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구석에 앉아 있거나 서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괜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소외를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5월 10일까지 통의동 아트팩토리 서울에서 열린 서상익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 〈Anotherday-느와르적 풍경2〉이다. 또 다른 작품 〈Anotherday-11월의 비〉에서는 샌드위치 가게 서브웨이(SUBWAY) 간판이 선명한 건물이 보인다. 밖은 어둑한데 실내는 환하게 조명을 밝히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작가가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봤던 장면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하지만, 현대 도시의 풍경이 어디나 비슷하기 때문인지 우리 정서에도 금방 와 닿는다.

“서울에 있을 때도 제가 찾는 공간은 이런 분위기입니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주로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서 사람을 만나거든요. 북적이던 도시가 적막에 잠겼을 때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이죠. 환하게 붉을 밝히고 있는 텅 빈 공간이 주는 묘한 긴장감이 있어요. 풍요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안하고 쓸쓸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공간 자체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법칙〉, Oil on canvas, 193.9×130.3cm, 2012
서브웨이 건물 앞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남자는 록그룹 건스앤로지스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이고, 건물 바깥의 철제 계단에 서 있는 남자는 작가 자신이다. 중·고등학교 때 그는 록음악과 홍콩 느와르 영화에 빠져서 살았다고 한다. 남자아이들이 폭력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던 시기, 그는 싸움을 싫어했다. 대신 방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고, 록음악을 듣고 느와르 영화를 봤다. 그림과 음악, 영화는 겉으로는 잔잔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던 그의 내면을 발산하는 통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듯 긴장감이 감도는 그의 작품에서 느와르 영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고, 그 시절 그의 우상이었던 록 뮤지션 슬래시와 커트 코베인이 종종 작품에 등장한다. 다섯 살이 되어서야 말하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말하기보다 그리기가 더 빨랐다고 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부터 그는 뭔가 그리고 있었다.

“웬일인지 부모님은 절대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셨어요. 세뱃돈으로 장난감을 사와도 환불하라고 하셨죠. 그래서 정말 갖고 싶었던 로봇 장난감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형이랑 방을 같이 쓰면서 꿈꾸던 혼자만의 방도 그림으로 그렸죠.”

〈G Richter〉, 22×27.3cm, Oil on canvas, 2014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식으로 생각과 고민, 꿈을 모두 그림으로 표현했다. 서울대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다닌 그는 2008년 첫 개인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던 자취방 침대에 사자가 누워 있는 장면 등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상상을 넘나드는 그림들이었다.

“그때는 최대한 진짜같이 재현해보려고 했어요. 사자가 자취방 침대에 누워 있을 리는 없잖아요? 상상을 실제같이 세밀하게 재현할수록 ‘진짜일까?’라는 착각을 일으키며 현실과 충돌하는 힘이 커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다 보니 사진처럼 묘사할 수 있게 되었고, ‘무슨 이야기를 할까, 뭘 그릴까’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답답해지더라고요. 이야기를 짜 넣는 데 집중하다 보니 그리는 쾌감에서는 점점 멀어졌거든요. 포토샵을 활용해 초현실적인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들을 보면서 ‘저건 사진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인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전시 요청과 주문이 밀려들면서 한창 인기를 끌 때 그는 작품세계를 넓히기로 결심했다.

“그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재정립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떤 것은 사진으로 표현하는 게 낫고, 어떤 것은 글로, 어떤 것은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게 적당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림으로 그려야 할까? 어떤 방식으로 그려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그리느냐는 2차적인 문제이고, 물감을 어떻게 사용할까, 붓질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실험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야기가 약해졌다면서 ‘예전만 못하다’는 컬렉터나 화랑 관계자들도 있어요. 물론 요즘 작품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붓질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방문 - Unexpected awakening〉, Oil on canvas, 145.5×89.4cm, 2008
그런 고민 속에서 시작한 게 ‘화가의 성전’ 시리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답을 찾아 나아갔던 거장들의 초상을 그렸다. 마티스, 피카소, 뒤샹, 앤디 워홀, 잭슨 폴록,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다양한 배경과 화풍, 사조의 작가 70여 명을 그렸다.

“대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나갔는지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는 점에서 그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인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성인의 초상을 그릴 때 그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배경을 집어넣듯 대표 작품을 배경으로 거장들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탐구해가는 과정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숙제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Anotherday - 느와르적 풍경2〉, Oil on canvas, 130.3×80.3cm, 2017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그 숲의 비밀 3-Hunter〉에는 그의 이런 고민들이 농축되어 있다.

“작품 완성에 1년 넘게 걸렸습니다. 푸른색 계통의 물감을 엷게 흘려 내리고 그 위에 또 두껍게 흘려 내리면서 물감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숲은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포감과 두려움, 미스터리가 커지잖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제 내면의 심연을 그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뚝뚝 흘러내린 물감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 작품은 치밀한 묘사로 감탄을 자아냈던 이전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작가의 표현방식, 붓질은 결국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제가 일상과 상상을 혼합해서 그릴 때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이 껍질일 수도 있고, 상상이 실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불확실함, 모호함을 이야기하면서 정확하고 치밀하게 그리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감과 붓질이 서로 침투하고 엉키고 흘러내리고 훑고 지나가면서 경계가 불분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습니다.”

〈JM Basquiat〉, 22×27.3cm, Oil on canvas, 2015
이 작품에도 이야기는 숨어 있다. 숲의 오른쪽 위에 벌거벗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압박감을 느끼는 작가 자신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총을 들고 서 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헤이트풀8〉에 흑인 장교로 등장한 사무엘 잭슨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라고 압박하는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5월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고전을 보기 위해 영국에 다녀왔다.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감각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작가라서 좋아합니다.”

서상익 작가가 추구하는 방향도 비슷하다.

“미술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하되 보는 사람은 무겁지 않게 느끼도록 산뜻하게 그리고 싶습니다. 감각과 이성이 균형을 이루는 작품으로 ‘이런 색, 이런 구도는 특이하네’라는 그림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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