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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근미의 책 세상

일본 근대화를 이루고 조선을 침략한 사무라이들이 우경화 일본을 휘젓고 있다

이광훈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와 미시마 유키오 《우국》

깨어 있는 민족, 실력 있는 나라만이 살아남는다. 《우국》과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를 통해 사무라이 정신이 현재의 일본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살벌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2년 전 유명 작가의 표절 사건으로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 문학적 성과가 높을 뿐만 아니라 베스트셀러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작가였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를 통째로 베꼈다는 모 작가를 비롯하여 표절 혐의를 받은 여러 작가가 슬그머니 복귀하여 작품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 유명 작가는 아직 조용하다. “한국 문단에 공헌한 바가 크니 이제 그만 돌아와 작품을 발표하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 작품을 표절할 수 있나. 그 점만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유명 작가가 표절했다는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소설 《우국》. 근위보병 제1연대 소속 다케야마 신지 중위와 아름다운 레이코의 뜨거운 신혼과 비극적 선택을 충격적으로 담았다. 한국의 유명 작가가 거의 그대로 표절하여 문제가 된 대목이다.

두 사람이 모두 실로 젊고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라 이들의 사랑 행위는 매우 격렬하였는데, 이것은 밤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 돌아온 중위는 먼지투성이 군복을 벗다가 그 틈도 참지 못해, 집에 돌아온 그 자리에서 새댁의 가는 허리를 꺾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곧잘 이에 응하였다. 첫날밤으로부터 한 달이 채 될까 말까 할 때, 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

요시다 쇼인을 기리는 쇼인신사. 현판 글씨는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썼다.
《우국》의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대단히 비장하다.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신혼인 다케야마 신지를 가담시키지 않는다. 다케야마는 친구들이 자신을 배제한 것만 해도 마음이 무거운데 직접 처형을 해야 할 처지가 되자 자결을 결심한다. 27쪽 가운데 11쪽이 다케야마 신지와 레이코의 자결 장면을 담은 만큼 작품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1961년에 《우국》을 발표한 미시마 유키오는 9년 후인 1970년, 4부작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 마지막 편을 출판사에 넘긴 후 자신의 추종자를 데리고 일본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한다. 그 자리에서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우국》의 주인공처럼 할복하여 45세에 생을 마감했다. 세계 여러 유명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죽음을 맞긴 했지만 자신의 작품에 상세히 묘사한 할복 장면을 실행에 옮긴 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주목받는 작가가 극우 신념을 주창하며 공개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대단히 컸다.

할복, 가미카제 자살 특공대, 인간 탄환 등 일본인의 비장한 죽음의 기원은 무엇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 즉 사무라이가 있다.


완벽히 파악하여 넘어야 할 일본

시모노세키 시에 세운 ‘조선통신사 상륙엄류지지’ 기념비. 글씨는 김종필 전 총리가 썼다.
한반도를 35년이나 지배하면서 우리 국민을 전쟁과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을 뿐 아니라 소녀들을 위안부로 유린한 일본.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은 마당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역사를 왜곡하는 것에 분노하기에 앞서, 일본이 어떤 생각으로 한국을 바라보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를 비롯한 메이지유신 관련 책을 읽고 메이지유신 발상지를 여행하고 나면 일본은 ‘힘 좀 있다고 우리를 괴롭힌, 그래서 기분 나쁜 나라’에 그치지 않는다. 사과만 확실히 하면 너그럽게 용서해주고 끝낼 나라는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을 제대로 파악해서 완벽히 넘어선 뒤, 다시는 넘보지 못하게 실력을 확고히 다져야 한다는 다짐까지 가야 한다.

지난 4월 말 나흘 일정으로 메이지유신 발상지를 여행했을 때 우리 팀을 안내한 여행가이드는 “17년간 한국 관광객과 함께 일본 곳곳을 누볐지만 처음 와본 곳”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일본을 여행하는 목적이 대개 온천과 맛 기행, 쇼핑으로 모아지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우리 팀이 시모노세키, 하기, 기타큐슈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지 못했다. 나가사키 시에서 약간의 한국인들과 마주쳤고, 후쿠오카 시에서는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한국인이 많았다.

다다미 8장의 쇼카손주쿠. 요시다 쇼인이 제자 90명을 길러낸 곳이다.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출발 전에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를 비롯한 메이지유신 관련 책을 읽고 하루쯤 시간을 내서 야마구치 현 북서쪽 해안에 자리 잡은 하기 시를 찾아보라. 메이지유신의 발상지인 하기는 한국의 어떤 여행사 관광상품에도 등장하지 않는 낯선 도시다. 19세기부터 한일합병을 기획하여 20세기 초반에 조선을 짓밟은 주역들이 대부분 하기 출신인 만큼 그곳에 가면 우리가 21세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떠오를 것이다.

19세기는 세계 열강들이 식민지 사냥에 나섰던 시기이다. 봉건국가였던 일본은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서양 제국주의와 같은 반열에 올라선 아시아에서 유일한 국가이다.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은 능동적으로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여 근대화를 이뤄나갔다.

새 시대를 연 사무라이들을 움직이게 한 인물이 바로 하기가 배출한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태어난 고장을 벗어나면 사형을 당하던 시절에 네 차례에 걸쳐 일본 열도를 누비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살피고 명망가들을 만나 천하의 정세를 논했던 인물이다. 한 차례 구속되었을 때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이론을 더욱 확고히 다졌다.

요시다 쇼인은 1년 남짓 쇼카손주쿠라는 사설 학숙을 열어 혈기 왕성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다미 8장의 초라한 시골 학숙에서 90여 명의 제자를 가르쳤고 이들이 나라를 바꾸는 동력이 되었다.

픽션에 가까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맹신자였던 요시다 쇼인은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한반도 정복설을 굳게 신봉하여 제자들에게 정한론(征韓論)을 철저히 주입했다. 서른 살에 요시다 쇼인이 요절하자 제자들은 영국으로 건너가 선진문명을 배우고 열강이 드나들던 상하이를 견학하며 스스로 강해졌다. 그 결과 조선을 지배한 주역 10여 명이 하기 출신이며 그중 한 명이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라니 놀랄 만하지 않은가. 조선은 일본보다 20여 년 늦게 개항의 압박을 받았을 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성리학에 빠져 방 안에서 사상만 논하며 무신을 경멸했던 조선과 달리, 칼을 쓰는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앞선 서양 기술을 습득하고 행동하면서 일본을 근대국가로 만들었다.


150년 전과 비슷한 상황

아베 총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하기 시에 위치한 메이지유신 발상지.
아베 신조가 이끄는 일본은 우경화로 치달으며 노골적으로 사무라이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쇼인신사의 현판 글씨는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조부)의 작품이고, 1968년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사토 총리(아베 총리 외종조부)는 웅장한 기념비를 세웠다. 아베 총리는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한·중·일 세 나라의 현실이 150년 전과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라는 개탄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은 북핵 위협을 핑계 삼아 군사력을 키우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정상이 북핵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시진핑은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망언을 했다.

깨어 있는 민족, 실력 있는 나라만이 살아남는다. 《우국》과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를 통해 사무라이 정신이 현재의 일본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살벌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길 권한다.
  •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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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도마안중근   ( 2017-06-12 ) 찬성 : 5 반대 : 6
잡지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분은 안중근 의사인데 안창호 선생이라고 적고 출판하다니...편집과 검토는 제대로 하는겁니까? 홈페이지에라도 정확히 고쳐서 나와 다행이지만 잡지사 관계자들의 역사의식 부재가 심히 걱정되네요...국사 공부부터 하고 글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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