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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환대가 필요한 이유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허은실 〈이마〉

나를 사랑하듯이 타인을 환대해야 한다
환대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허은실의 시 〈이마〉는 타인에게서 오는 환대의 깊은 뜻을 짚어보게 한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은 타인에게서 받은 무수한 환대의 결과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벌거벗은 생명으로 태어나는데, 누군가의 보살피는 손길, 즉 환대가 없었다면 그 벌거벗은 생명은 낳자마자 죽고 말 것이다. 낙태는 미지의 태아가 오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이고, 환대를 거스르는 대상을 부정하는 선택이다. 환대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도덕 원리의 기초이자 생명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우리는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환대로 말미암아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이마〉는 우리가 받은 환대 중에서 가장 작은 것, 그 찰나를 포착하고 그 계기적 경험을 풀어놓는다.

시의 화자는 아파서 누워 있다. ‘나’는 아파 누워 있고,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마에서는 열이 끓는다. 누군가가 와서 이마에 손을 얹고 환자에게 열이 있는지 없는지를 통해 병의 예후를 감지해보려고 한다. 아픈 ‘나’의 이마에 손을 얹는 행위는 ‘나’를 사랑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의 이마에 손을 얹는 행위는 윤리적인 것이기보다는 생명을 보살피고 염려하는 친절이나 배려함에 속한다. 이것은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다.

곤경에 빠진 내게 환대를 베푸는 사람이 누구든, 그가 도살장에서 뼈를 발라내는 사람이든, 혹은 시장 바닥에서 생선을 가르고 잘라 파는 장사치든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내게 환대를 베푸는 그 행위가 마음을 환하게 물들인다. 환대는 친절이고, 배려이며, 존중함이다. 그래서 환대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시인은 환대로 말미암아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환대가 실존의 불안과 두려움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 지문이 다 닳는다”
(〈더듬다〉). 사람은 누구나 고립되어 살기보다는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타인을 갈망하는데, 특히 환대를 베푸는 타인을 갈망한다.

환대의 본질은 사랑함, 더 나아가 생명윤리적 품음이고, 그 실천의 형식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행위이다. 당신이 나의 곁으로 올 때 당신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주는 것, 이것이 환대다. 상대가 갈망하는 것을 조건 없이 베풂, 이것이 환대다. 환대는 정주민과 떠돌이, 영주권자와 난민, 주인과 손님 같은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 환대를 베푸는 자는 이것을 받는 자를 자신과 같은 평등한 인격적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내 자리로 다가오는 타인을 기뻐하고 환영함, 이것이 환대의 전제 조건이다. 서로 갈등하거나 적대하는 사회에서 환대는 아주 희귀한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적대란 기본적으로 타인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타인이 베푼 환대로 말미암아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덜어지고, 위로를 받으면서 병을 떨치고 병상에서 일어날 희망을 품는다. 그래서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는 여유를 찾는다.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이란 상상적 공간, 즉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되고, 서로를 내치거나 죽이지 않고 받아들이며 환대를 베풀며 사는 이상사회의 모습일 테다. 그런 이상사회를 잠시나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시인에 따르면 이마는 가난한 것이며, 그래서 더러는 타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마는 타인의 손바닥을 통해 오는 환대를 받는 자리다. “이마의 크기가 /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 알 것 같았다”라는 구절이 에둘러 말하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생을 스치고 지나간 어느 “세밑의 흰 밤”을 떠올린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 벙어리처럼 울었”던 그 세밑의 흰 밤을. 왜 울었을까? 물론 혼자 아파 누워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데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내 곁에 없었기 때문에 서러웠을 것이다. 아플 때만큼 타인의 보살핌이 필요한 때도 없다. 시인은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 누워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이 펄펄 끓는 이마에 타인의 따뜻한 손바닥이 아니라 ‘내’ 오른팔이 얹혀 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라고, 아무도 아파 누워 있는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이다. 그래서 서러운 감정이 폭발해 벙어리처럼 울었던 것이다. 사람은 절대적인 환대, 베풀되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환대가 없는 곳에서 고립감과 지독한 불행감을 맛본다. 사람은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는 환대를 베풀고 환대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상호 평등하고, 존엄한 심연인 까닭이다. 시인은 그 사실을 “어둔 창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 나를 닮은 이 있네 / 문득 나 또한 누군가의 몸에 / 세 든 것을 알았네”(〈야릇〉)라고 노래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되 같은 존재다. 나는 곧 당신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를 사랑하듯이 타인을 환대해야 한다. 환대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허은실(1975~ )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2010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등단한 지 일곱 해 만에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를 냈다. 시인은 시골에서 자랐는지 시집 도처에 농경문화적 정서의 흔적들이 간간이 드러난다. 춘궁, 낟가리, 화투점, 칡, 그믐달, 개 꼬실르는 냄새, 숭어가 솟는 저녁, 매화가 피는 밤, 햇빛 끓는 흰 마당… 따위들. 강원도 사투리를 시종 능숙하게 구사하는 〈칡〉, 그리고 “비석치기를 하다 말고 / 우리는 메뚜기를 잡았다 / 점심 때 마당은 햇살이 캄캄 / 봉당엔 고모의 구두가 그대로였다”(〈무렵〉) 같은 시가 그렇다. 오늘날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비석치기를 모르고, 메뚜기 잡기 같은 경험이 없고, 봉당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사람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와 넓게 통섭하면서 감각적 경험을 쌓고 정서적 정체성을 빚는다. 그것들은 일종의 원체험으로 우리 자아에 각인되며 결국 우리가 누구인가를 규정한다.
  •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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