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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어둠 속에서 듣는 시간 합창, 먹먹한 순간을 느끼며 읽는 소설

첫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를 낸 윤해서 작가

글 : 이근미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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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년 전 진핵세포를 호모사피엔스로 연결한 뒤 ‘인류 역사는 등장의 역사다’라는 말로 방점을 찍는가 하면 ‘결국은 과잉의 문제다. 표현의 과잉, 시간의 과잉, 외로움도 과장된다’는 말로 정곡을 찌르는 윤해서 작가.
영상과 현란함이 오히려 사람을 단순화시키는 세상이다. 활자만으로 상상력을 무한대로 뻗어가게 만드는 오묘한 그녀의 소설로 마음을 확장하면 좋을 듯하다.
첫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를 낸 윤해서 작가를 만났다. 1990년대만 해도 작가들이 소설집을 내면 2만 부 정도 팔렸다고 하자 윤 작가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출간한 지 한 달 남짓 된 자신의 책 반응을 아직 잘 모르겠다면서.

8편의 단편을 담은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는 ‘시간 합창’이라는 뜻이고 표제작 〈테 포케레케레〉는 아프리카 원시부족 말로 ‘미지의 어둠’이라는 의미다. 〈[다]〉 〈커서 블링크〉 같은 제목까지 접하면 머리가 복잡해질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덮을까, 계속 넘길까 갈등이 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음에 생소한 무늬가 생기면서 상상력이 폭발하게 된다. 어느 순간 ‘보보투보쿡, 숭고룽고’를 읊조리며 리듬을 타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윤 작가는 굉장히 긴장된다고 했다.

“제가 처음 들고 나온 책이 너무 어렵게만 받아들여질까봐서요. 그냥 덮어두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가 뮤직비디오 볼 때 생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보잖아요. 제 책도 느끼는 대로 읽으면 좋겠어요.”

《코러스크로노스》에 담긴 소설들을 구태여 스토리를 헤아리기보다 느낌을 따라가며 이미지와 의성어를 음미해달라는 당부다. 소설 갈피 어디쯤에서 먹먹한 순간을 만났을 때 들려오는 합창 소리에 귀 기울이면 될 듯하다.

소설집의 맨 앞과 뒤를 장식한 작품의 제목은 동일하다. 〈테 포케레케레〉는 문단의 순서만 바꾸어 두 편의 소설로 탄생했다. 권하건대 맨 뒤의 〈테 포케레케레〉를 읽고 맨 앞의 〈테 포케레케레〉로 이동하시라. 두 편을 읽으면 ‘왜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읊’의 세계에서 ‘르르르르르’ 혼돈하다가 ‘탕탕’ 소리에 깨어날 것이다.

연결이 되는 듯 안 되는 듯 모호한 시간 속에서 들려오는 합창을 세심하게 들어보라. 생경과 혼돈 속에서 각자의 길을 찾은 독자들에게 맨 마지막 장 ‘작가의 말’이 친절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시와 소설에 경계가 있다면, 그 사이 어디쯤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먹먹한 순간들이 한순간이라도 멈추기를 바랍니다”라고.

〈테 포케레케레〉에 등장하는 서빙고역의 ‘코러스크로노스’에 가면 실마리가 풀릴까 싶었는데 윤 작가는 아예 그 동네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연히 그런 카페는 없어요, 상상의 공간이죠. 시간이 무화된 공간을 생각하면서 오래된 역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다가 서빙고역이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쓴 거예요.”


오묘한 스토리와 독특한 장치들

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 따라다니는 ‘어렵다’는 얘기에 여전히 마음 쓰인다는 표정이었다.

“이야기가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소설마다 어떤 이야기를 하나씩 갖고 있어요. 〈홀〉에서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눈을 갖게 되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돼요.”

흘림체, 도형, 기호, 자음과 모음의 나열, 시, 불규칙한 줄 바꾸기, 독특한 배열, 되풀이되는 의성어 등 다양한 시도에 대해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형식과 함께 떠오른다”고 했다. 가볍고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돌고 도는 시대, 자극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스토리에 식상한 이들을 그녀의 소설은 새롭고 오묘한 세계로 인도한다.

윤해서 작가는 국문과를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하다가 2008년에 다시 대학에 가서 문학을 전공하고 2010년 문단에 데뷔했다.

“국문과 다닐 때 수업은 거의 안 듣고 탈춤 동아리 활동에 열중했어요. 졸업하고 그냥 사는데 문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박사 과정 중인 그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소설을 쓰고 있다. 20대 후반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그녀가 공부 못지않게 열심히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다. 《코러스크로노스》의 표지 사진은 윤해서 작가가 여행 중에 직접 찍은 것이다. 네팔의 포카라와 몽골의 홉스굴 호수같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는다.

“포카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친구와 함께 갔다가 너무 좋아서 혼자 남아 석 달을 더 있었어요. 어디서나 보이는 안나푸르나에 심취해 있다가 산책 등을 하면서 지냈죠.”

관광객이 거의 없는 비수기 때 찾은 홉스굴 호수에서는 오롯이 자연과 함께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로 작은 공항에 도착해 버스로 한참을 가야 하는 오지예요. 비수기에 갔더니 캠프가 거의 철수하고 관광객이 10여 명밖에 없었어요. 무서웠지만 자연에 던져진 느낌이 좋아서 보름 동안 있다가 왔어요.”

여행을 갈 때 책을 가져가지 않고, 숙소도 그곳에 가서 사정에 맞춰 정한다.

“네팔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 있었고 몽골에서는 게르에서 지냈어요. 여행 가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해요. 혼자 가서 낯선 곳에 있으면 무섭기도 하지만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점이 좋아요.”

2015년에는 페루를 거쳐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을 다녀왔는데 고생한 기억만 남았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생각과 수많은 이미지가 작품 어디쯤에 녹아 있을지 찾아보며 소설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깨끗한 국내를 자주 여행한다는데 최근 다녀온 남해가 좋았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시대, 빛에 가까이 가고 싶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혼란한 시대를 통과하는 작가의 삶은 어떤지 궁금했다.

“작가로 사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라 뭘 하든지 어려운 세상인 것 같아요. 외부 상황, 사회 현실 자체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고 느껴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요. 정치 상황이 아주 개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영향을 미치게 됐잖아요. 초・중・고 학생들까지 생각할 정도니까요. 어린아이들은 정치를 모르고 살아야 좋은 나라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해요.”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그녀는 역시 글로 해소하길 소망했다.

“지금 다 같이 슬픈 상태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면서 슬픔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첫 번째 소설집은 등단 7년 만에 선보였지만 다음 소설집은 좀 더 빨리 나올 거라면서 여름쯤에는 장편소설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편소설은 호흡도 다르고, 스토리도 좀 있어야 해서 계속 구상 중이에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막연히 빛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빛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빛이 뭘까. 〈테 포케레케레〉의 ‘시간이 사라지자 세계는 일그러진다. 세계는 작은 한 점으로 쪼그라들고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하고 세계는 한쪽 면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흐름의 방향을 잃고 세계는 모든 시간대의 그물에 걸려 사방으로 마구 튀어오른다’는 그 이후가 아닐까 짐작해봤다. 20억 년 전 진핵세포를 호모사피엔스로 연결한 뒤 ‘인류 역사는 등장의 역사다’라는 말로 방점을 찍는가 하면 ‘결국은 과잉의 문제다. 표현의 과잉, 시간의 과잉, 외로움도 과장된다’는 말로 정곡을 찌르는 윤해서 작가. 영상과 현란함이 오히려 사람을 단순화시키는 세상이다. 활자만으로 상상력을 무한대로 뻗어가게 만드는 오묘한 그녀의 소설로 마음을 확장하면 좋을 듯하다.
  •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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