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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곧 하나의 장소들이다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서효인 〈경기 북부〉

고향 친구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북한이 보이는 줄로 안다. 아파트에서 보이는 건 또 다른 아파트뿐이다. 아파트 앞에 아파트 앞에 아파트에서 아파트를 생각하며 잔다. 아파트 뒤에 아파트 뒤에 아파트에서 아파트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룬다. 내가 아는 노인은 종일 텔레비전을 보며 북한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생각은 텔레비전뿐이다. 드라마 다음에는 예능 다음에는 뉴스 생각을 한다. 드라마 전에 예능 전에 뉴스에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다. 북한을 비스듬히 등지고 아파트는 줄을 섰다. 나는 빨갱이도 아니요, 청년도 아니다. 나는 입주민이다. 고향 친구도 입주민이요, 아는 노인도 입주민이다. 골프 연습장의 조도와 소음은 매일 우리를 도발한다. 총 쏘는 소리 들리지만 누구도 귀를 막진 않았다. 골프장 민원은 해결되지 않았다. 도시는 슬픔에 빠졌다. 개그 프로그램을 본다. 도시는 웃지 않는다. 도시는 눈부시고, 내일은 월요일이다.

서효인 시집 《여수》, 문학과지성사, 2017


《여수》는 장소들의, 장소들에 의한, 장소들을 위한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여수, 곡성, 강릉, 부평, 남해, 강화, 목포, 인천, 진도, 평택, 서울, 나주, 안양, 안성, 대전, 서귀포, 구미, 분당, 파주, 익산, 마산, 영광, 압해도, 철원, 개성, 진주, 화정, 무안… 같은 귀에 익은 나라 안 도시들이 주르륵 나온다. 《여수》는 1974년에 나온 고은의 《문의마을에 가서》 이후 가장 많은 지명을 담은 시집이다. 고은의 장소들은 창조보다 소멸에 더 기여한 한 허무주의자가 치른 방랑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고은의 장소들에는 삶의 연고성이 깊지 않다. 서효인의 지명들은 삶의 자리, 다채로운 변전(變轉)을 품은 시간이 함께 버무려진 지리적 거점, “전율하는 삶, 웃음 짓는 죽음”(에드몽 자베스)이 한 데 뒤섞인 장소들이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장소에서 살고 누구와 만나면서, 여러 실존 사건을 겪는다. 이를테면 ‘여수’는 사랑하는 여자가 사는 도시여서 사랑하게 되는 장소다. 우리는 장소라는 거점에 삶의 닻을 내려야만 삶을 꾸릴 수 있다. 장소들은 거기 닻을 내린 우리를 붙잡아 더러는 그 장소가 족쇄가 되지만 대개는 그 장소에 기꺼이 귀속되는 것이다. 어쩌면 삶은 장소 속에서 이루어지는 한바탕 소동이다. 장소의 귀속에서 풀려나는 일은 죽은 뒤로 무로 사라지면서 이루어진다. 죽음은 존재자가 장소를 벗어나 무로 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산 자에게 장소들은 본질적으로 기억-장소들이다. 시인들은 장소들을 하나씩 호명하면서 삶의 변전을 이룬 기억들도 함께 소환한다. 그리하여 《여수》가 보여주는 장소의 지리학은 기억과 정념의 중력이 작동하고,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이 펼쳐지는 자리에서 이룬 무구한 전복의 지리학이다.

〈경기 북부〉는 ‘경기 북부’에 있는 한 아파트 입주민으로 사는 자의 장소 경험을 보여준다. 짐작하건대 시의 화자는 대다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서 사는 탈향자의 정서를 내면화한다. 그는 ‘경기 북부’에 들어선 아파트 대단지에서 “아파트 앞에 아파트 앞에 아파트에서 아파트를 생각하며” 잠들고, “아파트 뒤에 아파트 뒤에 아파트에서 아파트를 생각하며” 잠 못 드는 아파트 입주민으로 살아간다. 아파트 입주민이란 정체성은 오늘날 그다지 이채로울 것이 없는 범속함에 물든, 진부한 삶의 진실이다. 이들이 나날이 겪어내는 삶은 똑같은 것의 반복이다. 출근과 퇴근,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는 따위의 일과다. 똑같은 형태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똑같은 대형 마트에서 구입한 식품들을 먹고, 똑같은 드라마를 보고, 다음에는 똑같은 예능을 보고, 다음에는 똑같은 뉴스를 본다. 어떤 욕망들이 유예되는 가운데 삶은 대체로 지리멸렬하다. 이 삶은 신성함이 제거된 속화된 것이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이다.

아파트 입주민은 제 삶의 자리인 장소에 대해 생각한다. 아파트가 서 있는 ‘경기 북부’는 북한에서 가깝다. 시의 화자는 “생각”한다. 생각이란 “공허를 짓뜯는 섬광”(에드몽 자베스)이다. 생각은 망각에 선행한다. 망각의 여명을 뚫고 “도시는 슬픔에 빠졌다”거나 “도시는 웃지 않는다”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 관조적 생각의 바닥에는 ‘도시’는 삶의 자리이고, 동시에 삶 그 자체라는 관념이 들어 있다. 도시-삶은 하나로 굴러간다. 앞의 두 문장은 “나는 슬픔에 빠졌다”거나 “나는 웃지 않는다”라고 바꿀 수도 있을 테다. 시를 섬세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두 문장이 교묘한 방식으로 두 가지 뜻을 중첩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으리라.

한반도의 지리학에서 ‘경기 북부’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북한과의 경계가 가까운 곳이다. 그렇다고 ‘경기 북부’ 아파트 대단지 너머로 ‘북한’이 보일 거라는 상상은 어처구니없다. “고향 친구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북한이 보이는 줄로 안다.” 물론 북한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시계(視界) 저 너머, 더 먼 곳에 있다. 저 너머의 것은 실재가 아니라 실재에 만든 관념이거나 아우라다. 발터 벤야민이 언급했듯이 “아우라는 멂의 현상이다.” 국경 너머의 ‘북한’은 지리적 가까움에 반해 가장 멂의 현상으로 뚜렷하다. ‘북한’은 우리가 겪지 않은 공허하고 부정적인 것의 아우라다. 이 부정성의 정체는 잠재적인 위협과 파괴다. 때때로 이것이 한반도 남쪽 사람들의 의식을 압박하고 가위 눌리게 한다.

아파트 입주민이란 누구인가?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이자 신분 상승의 욕구와 과시 욕구에 매개된 공간이다. 이 안에 깃들어 사는 입주민이란 ‘같은 것의 지옥’에 부려진 자들, 무한 소비의 속도전에 내몰려 현실의 비루함에 감염되어 주저앉은 자들이다. 이 시의 중요한 전언은 우리 삶들에서 차이가 지워지며 균일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아파트 입주민으로 살면서 고만고만한 삶의 규모와 체적 속에서 우리 내면에 달라붙는 근심과 욕망의 내역들이 서로를 흉내 내면서 닮는다. 우리는 같은 것을 욕망하고 서로 닮은 삶을 산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근처 골프 연습장의 지나친 빛과 소음공해에 시달리며 민원을 넣는다. 하나의 고통은 만인의 고통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차이가 지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개별자의 의식과 생활이 균일화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아토포스적인 다름이 사라진 ‘같은 것의 지옥’에 이른다. 대단위 아파트들은 ‘같은 것의 지옥’을 전시하는 진열장이다. 이곳에서 저마다 의미를 일궈내는 생을 꿈꾸지만 꿈들은 사산하고, 삶은 너무 쉽게 악몽으로 변질되고 만다.

장소의 기억과 기억의 장소는 하나다. 장소들은 시간 -과거, 현재, 미래- 을 관통하는데, 우리가 장소를 가로질러 가는 게 아니라 실은 장소가 우리 실존의 한가운데를 천천히 가로질러 간다. 앞선 자들에 견주자면 우리는 이 장소들에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다. 장소들은 우리 삶을 끊임없이 발명한다. 또한 실존의 싸움터이기도 하다. 현존과 부재 사이에서 우리는 이 싸움을 치른다. 이 실존의 싸움을 치르다가 죽음으로써 우리보다 늦게 올 이들에게 장소를 양보한다. 우리는 장소들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장소들이 우리 삶과 의식을 거쳐 지나간다. 장소들은 칙칙한 삶과 기억을 품은 거점임과 동시에 찬란한 죽음들이 탄생하는 자리들이기 때문이다.


서효인(1981~ )은 목포에서 태어났다. 1981년은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었다.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해외여행 자유화 시대가 열렸다. 나라 밖 미국에서는 중성자탄이 처음으로 생산됐고, 최초의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발사되었다. 그해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을 연고지로 한 여섯 개의 프로야구 팀으로 꾸려진 KBO가 발족된 프로야구의 원년이다. 그런 해에 태어난 사람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그는 시인이 되었다. 광주에서 성장했기에 그의 정체성에는 ‘광주’가 각인되고, 광주를 연고지로 삼은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소년으로 성장한다. ‘광주’라는 장소,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가 함의한 정치성은 서효인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한 요소이다. 2006년 계간 《시인세계》의 신인상을 받아 등단하고,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등을 펴냈다.
  •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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