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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 덧없는 사랑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김소형 〈두 조각〉

사진제공 : 김소형
같이 잠들었다
내가 여름을 말하면 너는 바다를

그런 날이면 새벽에 금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포말이 무엇인지도 몰라서
커다란 문어가 내뿜는 숨을 상상하며
파도를 기억했다

같이 배가 고팠다
꿈에서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슬픔이 속삭였지만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우리는 믿지 않지만
사랑은 믿었다

조각을 비춘 그림자는
천천히 천천히
머리부터 녹고 있었다

김소형 시집 《ㅅㅜㅍ》, 문학과지성사, 2015


〈두 조각〉은 사랑에 관한 시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존재의 분리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으니, 이별의 시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두 조각’은 빵 조각, 천 조각, 돌 조각 같이 애초 하나였다가 둘로 깨어지고 나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하나였다가 이별하면 둘로 나뉘어 두 조각이 되는 것이다. 둘은 사랑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이 잠들었다가 깨어나고, 같이 밥을 먹고 난 뒤 배고팠던 경험을 공유한다. 경험의 공유는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아울러 “우리는 믿지 않지만 / 사랑은 믿었다”라는 구절에 비추어 보자면 둘은 사랑하지만 이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람은 무한하게 큰 것과 무한하게 작은 것 사이에 존재한다. 그 둘 사이에서 영원을 꿈꾸는 게 사람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영원은 가망 없는 꿈이지만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그 영원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다. 사랑은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킨다. 물론 어떤 사랑도 영원하지 않지만 사랑은 찰나로 영원을 가로지르는 체험이다. 거기에 사랑의 미스터리, 사랑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 대부분은 사랑을 모른 채 사랑을 한다. 사랑을 모르는 것은 그것이 투명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투명하고, 자주 ‘무엇인지도 모름’이다. 사랑은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고, 어쩌다, 우연히, 뜻밖에 나타나는 기적이다. 그래서 사랑은 일반화되지 않는다. 사랑은 비관습적 열정이고, 열정의 과잉에 휩싸이는 일이다. 그런 과잉이 없다면 사랑은 발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깨어지는 것도 과잉 때문이다.

첫 연에서 “내가 여름을 말하면 너는 바다를”이라는 구절이 제시된다. 이 구절은 미완의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이 문장에서 생략된 부분은 ‘보여준다’였을 테다. 사랑은 상대의 갈망에 대해 신속하게 응답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유추가 가능하다. 여름은 바다와 가장 어울리는 짝이다. 사랑이 상대의 갈망에 응답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두 번째 연에서 제시되는 “새벽에 금빛 바다”로 드러난다. 첫 연에서 제시된 미완의 문장을 이어지는 구절로 완성하면 “내가 여름을 말하면 너는 새벽에 금빛 바다를 펼쳐 보여준다”가 될 것이지만 시인은 문장을 둘로 분절해서 두 연에 걸쳐 펼쳐낸다. 연과 연 사이에는 어떤 휴지(休止), 단절, 숨 고르기가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랑이 쉽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암시다.

사랑의 비극적 운명은 아프로디테의 신화가 잘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는 피투성이로 죽은 애인 아도니스를 안고 가슴을 치며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그래, 운명의 여신들이 승리했다. 그러나 나는 운명의 여신들에게 완전한 승리는 주지 않으리라. 나의 아도니스여, 그대의 죽음과 내 탄식을 해마다 새로워지게 하리라. 그대가 흘린 피는 꽃으로 피어나리라. 이로써 내가 위안을 얻는대서, 누가 나를 시기할 수 있을 것인가!” 아프로디테가 아도니스의 피 위에 신의 술을 뿌리자 연못에 거품이 인다. 이 거품들이 핏빛 꽃으로 피어나는 찰나 다른 바람이 이것을 쓸어간다.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신이자 거품의 여신이다. 아프로디테는 물결의 거품, 엷은 구름, 달, 가볍게 흐르는 바람, 나부끼는 눈, 교교한 광채, 그늘진 대지, 뱃머리를 감싸는 수신(水神)의 딸, 바닷물에서 날아오르는 물고기다. 우리 가슴에 사랑의 불씨를 심는 것도 이 여신이다.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 속하고,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사랑의 여신은 곧 거품의 여신이다. 그래서 사랑은 피었다가 이내 지고, 바람에 일어났다가 쉬이 사라지는 거품같이 덧없다.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의 종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슬픔이 속삭였지만 / 모른 척 눈을 감았다”라는 구절이 암시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마침내 하나가 깨져 두 조각으로 나뉘면 그 둘은 다른 궤도를 그리며 나아간다. 사랑하는 이들은 “불타는 날개를 펼치고” 사라지는 새들, 내 곁을 떠나는 당신은 “불사르는, 맞아, 당신은 검은 새”(〈4〉)다. 남은 조각은 사라진 다른 조각이 비추는 그림자 속에 잠긴다. “머리부터 녹고 있”는 그림자. 그림자는 천천히 사라진다. 녹아 사라진다는 것은 아마도 망각되는 사실에 대한 암시일 테다. 사랑의 종말은 망각이고, 이 망각은 관계의 죽음이다. 〈두 조각〉은 아프로디테의 꽃으로 피어난 거품들이 그렇듯이 덧없이 끝나는 사랑에 대한 노래다. 사랑이 꽃이라면 이 꽃은 아름답지만 빨리 져서 덧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은 “활짝 열린 / 죽음을 향해” 날아가기 때문이다.(〈흑백〉)

김소형은 이 덧없는 사랑의 종말을, 사랑이 죽은 세상의 끔찍함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랑의 불꽃들은 꺼져버린다. 우리의 사랑은 거품 속에서 피어났다가 거품으로 사라진다. 그래서 “그저 당신과 하루만 늙고 싶었던” 욕망도 사라지고, “빛이 주검이 되어 가라앉는 숲에서 / 다만 당신을 울리고 울고 싶었습니다”란 꿈도 덧없어진다.(〈ㅅㅜㅍ〉) “우리는 추워서 모였다가 죽은 자들”(〈오케스트라〉)이고, 없는 발로 “검은 해변”을 떠돌고 “당신이 몸을 던지는 소리 / 진종일 들으며 잠”든다.(〈아홉장의 밤〉) 사랑이 죽어서 “거대한 무덤”이거나 “얼음수용소”가 되어버린 이 세상에 우리는 “산산조각 난 채로” 빗방울 하나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다.


김소형(1984~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10년 계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2015년 첫 시집 《ㅅㅜㅍ》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불이여, 멈추지 말고 연주해다오”(〈오케스트라〉)라고 노래하는 시인, “불붙은 건물을 보며 / 사랑한다, 안 한다 / 중얼” 거리는(〈연소〉) 시인, 그가 김소형이다. 이 세상은 사랑의 불꽃이 연소되면서 내는 빛과 열로 따뜻하게 빛나는 곳이다. 허나 불꽃들이 다 꺼지고 나면 차디찬 재와 어둠이 들어찰 것이다. 사랑이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은 밤과 시체들이다. “방바닥에선 이빨이 솟아나고 / 시체들은 옷걸이에 걸려 쓰러지는 밤”(〈아홉 장의 밤〉)이 오고, 이 세상은 “저지대 속에 시체를 품고 / 멸망한 도시”(〈신성한 도시〉)로 변해버린다. 김소형은 사랑의 불꽃들이 다 연소하고 사라진 자리에서 혀가 뽑히고 발 없는 발로 검은 해변을 헤매 다니며 “불이여, 제발 연주해다오 / 제발”(〈오케스트라〉)이라고 노래한다.
  •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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