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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고 살리는 게 보살이자 부처이고 신 아닐까요?

〈풍경소리〉로 2017 이상문학상 대상 받은 구효서 작가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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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2017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구효서 작가의 중편소설 〈풍경소리〉는 이은상 시조 〈성불사의 밤〉 중 이 세 구절을 소설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성불사에 홀로 찾아든 객인 여성 미와 그리고 성불사의 주승과 수봉 스님, 공양주 좌자 등의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지만, 이렇다 할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미와는 그저 차파티 같은 지질의 노트에 슥삭슥삭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낮에는 쓰르라미 소리에 섞인 풍경 소리, 밤에는 솔바람에 섞인 풍경 소리를 듣는다. 좌자는 된장으로 무쳐 낸 두릅나물무침과 표고버섯무침, 밤과 잣을 넣은 흑미밥 등속을 내놓고, 미와는 “기가 막힌다”고 감탄하면서 먹는다. 사찰을 떠나는 날, 미와는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멀고 깊은 곳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에 답하지 못한 미와는 ‘두고두고 나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담백하지만 수수께끼로 가득 찬 소설

읽는 동안 한적한 절에 머물며 담백한 음식과 소리, 풍경에 말갛게 정화되는 듯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음식처럼 소설의 층위는 복합적이고 깊다. 미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 미혼모였던 엄마는 미와를 몰래 낳아 키웠다. 충북 영동의 제과점에서 일하던 엄마는 세상에 다시없는 생크림과 휘핑크림을 만들었고, 방 안에 틀어박혀 레고만 하던 미와는 스물네 살 때 나노블록 회사에 특채되어 서울로 떠난다. 미와가 떠나자 엄마는 일도 그만두고 고양이만 키우다 한참 어린 미국 남자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나고, 그곳에 묻힌다.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미와가 고양이 울음소리 환청에 시달리다 성불사를 찾고, 위안을 얻고 떠난다는 이야기다. 엄마는 그날그날 가장 잘된 휘핑크림을 미와에게 먹여줄 때 말고는 모성애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리 출생에 대해 알려달라고 캐묻고 원망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던 엄마는 이승 사람 같지 않았고, 훌쩍 이국으로 떠난 후의 죽음까지도 수수께끼같다. 나란히 앉아 허공을 응시하는 주승과 좌자는 노부부 같은 이미지고, 주승과 수봉 스님도 부자 관계가 아닐까 짐작되지만 소설은 어떤 궁금증도 풀어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기도 하고, 청각과 미각, 시각 등 오감으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어떤 존재에 대해 말하는 듯하기도 하다. 휘핑크림을 만들던 미와의 생모뿐 아니라 미와의 허기를 알아채고 뭔가 계속 먹여주던 좌자나 영차 보살 모두 엄마 이미지로 다가온다.

맑고 담백하지만 수수께끼로 가득 찬 이 소설에 대해 구효서 작가를 만나 물었다. 생모뿐 아니라 좌자, 영차 보살 모두 미와의 엄마같이 느껴진다고 했더니, 작가는 “먹이는 일은 살리는 일이에요. 먹이고 살리는 게 바로 보살이자 부처이고 신 아닐까요? 미와의 생모는 하얗고 달콤하지만 녹아 없어지기 쉬워 형체가 없는 휘핑크림 같은 사람이잖아요? 반면 좌자는 장독같이 푸근하고 땅에 굳건히 뿌리내린 존재입니다. 영차 보살은 구도자처럼 꿋꿋하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지요. 가장 전형적인 엄마 이미지는 좌자이지만, 무엇을 ‘엄마답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 모두가 엄마이자 여성의 이미지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소설에는 미와와 수봉 스님이 대적광전 외벽의 심우도(尋牛圖)를 함께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동이 소를 찾아내고, 쇠등 위에 올라타 피리를 분다. 그러다 소가 사라지고 초동도 사라진다. 자신의 본성을 발견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빗댄 이 선화(禪畵)가 소설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슬쩍 지나가는 이야기로만 등장한다.

“심우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다면 소설공법상 약간 하수인 데다 이 소설의 취지에도 맞지 않습니다. 저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시도 자체가 온당하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억압과 강제,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폭력이 개입되니까요.”


소설은 미와의 1인칭 시점과 또 다른 존재의 1인칭 시점으로 번갈아 서술된다. “바람이 잦아들고 밤이 깊어 모든 사물이 딱 정지해 고요하고 적막해도 모든 소리의 연원인 나마저 잠들거나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라는 서술을 볼 때 또 다른 존재는 신 혹은 초월자가 아닌가 짐작된다.

“시조에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모두가 잠든 후에도 홀로 남는 소리는 뭘까요? 모든 소리를 존재하게 하는 소리로 《장자》에 등장하는 천뢰, 온갖 피조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래의 존재일까요? 쉽게 말하면 초월자라는 존재에 대해 20대 때는 목사님, 스님들을 붙들고 묻고, 30대 때부터는 혼자 탐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우리 인식과 감각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올해로 환갑, 등단한 지 30년이 되는 구효서 작가는 강화도 북단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뒷산에 오르면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오고 밤낮으로 대남 확성기 방송이 들리던 곳이었다. 그는 중학생이던 1971년,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이주해 구로동에 정착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장편 《라디오라디오》 등 여러 소설과 산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요즘도 《현대문학》에 유년 시절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그는 “글을 쓰면 새록새록 기억이 다시 샘솟습니다.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뭔가를 끝없이 써낼 수 있다는 사실에 저 자신도 놀랍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강화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문학의 출발점이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강화도는 제 문학이 끝없이 출발했다 복귀하는 곳입니다. 서울로 이주했을 때 도시문명과 서울내기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선망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향수에 동시에 시달렸죠. 전통적인 정서에 익숙한 제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를 계속 지그재그로 오가며 소설을 써온 이유가 그 때문이지 싶어요. 한쪽에만 오래 머무르면 좀이 쑤셔요.”


등단 30년, 다양한 주제·구성·문체로 변화 추구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스스로도 “세어보지 않았다”고 할 만큼 수십 권의 장편소설과 소설집, 산문집을 발표해왔고,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에 이어 이번에 동인문학상까지 받았다. 내놓는 소설마다 다양한 주제와 구성, 문체를 구사하면서 끝없는 변모를 추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요즘 그는 왼손으로 장편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오른손은 너무 익숙해져서 쓰고자 하는 대로 쉽게 따라갑니다. 왼손으로 쓰니 완전히 달라요. 내 안에 나를 거부하는 타자가 있는 느낌이에요. 되다 만 문장, 비문이 엄청 많이 나와요. 인간의 호흡과 맞는 문장을 좋은 문장이라고 하잖아요? ‘인간의 호흡이란 질서에 맞춰야 꼭 좋은 문장인가? 너무 인간 중심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힌 미학이 아닌가?’ 어깃장을 놓고, ‘나쁜 문장, 거친 문장은 안 돼’라는 금기를 깨고 싶어요. 내용도 학살과 강간으로 온 마을이 초토화된 카오스적인 상황을 다룹니다.”


2016년에 출간한 장편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는 아프리카 말라위를 배경으로 한국계 입양아인 여성과 미국 여성, 아프리카 남성을 둘러싼 사랑 이야기다. 강화도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그의 문학세계는 이렇게 국적과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확장되곤 한다. 올해 3월에 나올 단편집에 실리는 소설에서는 인물과 시간, 공간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배제시켰다. “이름을 들으면 성별과 세대까지 유추할 수 있잖아요? 이름과 시공간이 명확하면 독자들의 선입견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심지어 호응하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소설이 나올까 실험해봤죠”라고 말한다. 그의 리얼리즘 소설이나 산문은 편안하고 따뜻하지만, 모더니즘 소설은 계속 파격을 시도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어렵다’는 평도 듣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대중의 구미에 맞출 생각은 없다고 한다.

“〈낯선 여름〉이라고 대중 입맛에 맞춰 써본 적이 있지만, 대중한테조차 외면당했어요. 대신 대중적이지 않은 홍상수 감독 눈에 띄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죠. ‘나는 대중적으로 써봐야 비대중적이 되는구나. 그럴 바에야 내 갈 길을 가자’고 생각했습니다. 왕창 인세가 들어온 적이 없으니, 하루하루 원고료를 벌기 위해 열심히 써왔습니다.”

그래서 상이 주는 의미도 크다.

“상을 받으면 솔직히 입이 째지죠. 겉으로는 아닌 척 표정 관리하지만 정말 좋아요. 의욕이 솟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용기를 내야 하고, 믿는 데가 있어야 하잖아요? 상은 ‘잘하고 있어’라는 인정이자 ‘계속 해도 돼’라는 응원 같아서 다시 오만한 용기를 낼 수 있게 합니다.”

이제껏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중 최고령이라는 그에게서 누구 못지않은 청년정신이 엿보였다.
  •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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