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불행

글 : 박정민 

녹록지가 않다. 늘 선택을 해야 하고, 장고 끝에 둔 악수 탓에 발생하는 좋지 않은 결과는 이내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왜 좋은 일보다는 좋지 않은 일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설령 좋은 일이 있어도 곧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란 확신이 그 기쁨을 반감시킨다. 사는 게 참. 녹록지가 않다는 거다.

뉴스를 들으면 화가 나는 기사들뿐이고 대체 어떤 것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올곧이 나를 지키고 나대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것조차 쉽지가 않다. 나를 지키는 순간 잃어버려야 할 그 모든 것이 두렵다. 직장을 다녀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칼퇴근 후 스포츠댄스 동호회에 나가서 자이브 실력 고취에 시간을 투자하면, 다음 날 나를 향해 쏟아지는 김 부장의 눈총이 더 고취되는 느낌과 비슷할까. 나대로 살아가기엔 주변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무수하다. 이 세상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긴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시는 일 전부 잘 되길 빌겠습니다.’

방금 전에 대리기사님께 드린 이 말이, 으레 인사치레로 건네는 이 말이, 아니 진심으로 건넨다손 치더라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말이다. 그래, 그저 말일 뿐이다. 하시는 일이 전부 잘되면 강남역 사거리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다크서클은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아마도, ‘왜 나는 이렇게 미친 듯이 행복할까’란 고민보단 ‘나는 왜 남들처럼 행복하지 못할까’의 고민으로 그것들을 설명하기가 더 용이할 것이다.

공연팀 회식이 끝나고 조연출 동생이 묻는다.

“형 이번 글 주제는 뭐예요?”
“불행.”

말을 잇지 못하는 그 친구에게,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어딨냐. 다 불행하지.”

라고 해버렸다. 뭐라고 생각했을까. ‘형 맞아요. 저도 불행해요’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니에요. 저는 며칠 전에 여친 생겨서 행복해요’라고 생각했을까.(만약 그랬다면 저주를 내리겠다) 그것도 아니면 ‘뭐래. 당구나 치러 가야지’라고 생각했을까.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당구 치러 가는 스물한 살 동생에게 너무 구차한 이야기를 해버린 건 아닌지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니가 여자친구가 생긴 건 용서할 수 없다.

‘왜 이래?’

글을 보면서 몇몇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위선은 아닐까 곱씹고 곱씹는다.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겠지만, ‘이 정도면 변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내가 아닌 누군가의 얼굴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떤 것들이 내 안에 퇴적이 돼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그 감정들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쏟아버리는 이 용기 혹은 객기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저 어쩌면 이게 나만 겪는 건 아닐 거라는 일종의 희망 같은 것에 기대서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걸까. 우선 확실히 밝혀둔다. 나 취하지 않았다.

만약 이런 구질구질한 비관을 가진 이가 어딘가에 또 있다면, 여기 이렇게 나도 그러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네가 그렇게 특별한 비극을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내게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말해주는 건 20년 전 에메랄드 캐슬뿐이다. 그래,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걸.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것이 이 마음을 옥죄고 괴롭히는 것뿐이다. 지금 이 불행을 떠나보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 다음엔 또 어떤 불행이 찾아올까. 그리고 그 불행을 대비해 이것저것 무기를 마련해 놓는다. 그러면서도 제발 이 수류탄을 깨물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불행, 불안, 불확실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고민. 다가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걱정. 그것들은 보통 일어나지 않아서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것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땐 차라리 그 일들이 일어나버리길 바랄 때도 있다.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다 나은 줄로만 알았던) 강박장애 증상들이 지금 내 속이 썩어 있다는 걸 증명한다. 끝까지 일어나지 않는 그 불안들이 나를 증명하는 셈이다.

‘네가 걱정하는 그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사실이다.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그 모든 일련의 불안들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이런 모순 따위에 무릎 꿇어봤자 나가는 건 무릎뿐이다. 태생이 사이즈가 요만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 떳떳하게 살지 못한 과거들에 대한 노파심일 수도 있다. 별 수 없다. 지나간 어제 때문에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엔 난 오늘도,

다 잘될 거라고 주문을 걸고,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다시 한 번 밝히는데, 취한 건 아니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 〈순정〉 〈오피스〉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안투라지〉 〈응답하라 1988〉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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