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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과 디자인 모두 최고인 스피커를 만들다

스피커 디자이너 유국일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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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수를 데려올 테니 눈을 감아보세요. 이제 눈을 떠보세요. 앞에 있는 가수가 보이지 않나요?”
원음 그대로의 생생한 소리는 환영도 만들어내는가? 그의 말대로 진짜 가수가 와 있는 듯 느껴졌다. 1월 31일까지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유국일의 메탈 스피커’전에는 독특한 형태의 스피커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스피커라기보다는 예술작품으로 보였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더욱 놀라웠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댕댕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는 바닷가나 유럽의 한 마을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종소리인지 거리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스피커 디자이너 유국일씨는 스피커의 독특한 모양은 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 : 유국일
소리의 왜곡 없이 원음을 그대로 재생

“이것은 ‘혜성’이라고 이름붙인 스피커예요. 아랫부분은 혜성의 불꼬리 모양이고, 빙 둘러 구멍을 뚫어놓은 부분은 은하수를 연상시키죠. 사람들은 저마다 밤하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잖아요?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소원을 빌고, 동화적인 요소도 있죠. 오랫동안 별 이미지를 활용해서 디자인해 왔습니다. 스피커의 모양은 하나하나 소리의 왜곡을 없애주는 과학적인 장치이기도 합니다. 여기 만져보세요. 떨림이 없죠? 내부 진동으로 스피커 통이 울리면 원음에서 멀어지면서 소리가 탁해집니다. 진동은 무게와 반비례하기 때문에 무거운 금속 스피커가 훨씬 진동을 줄여줍니다. 여기 이 불꼬리 모양 역시 진동을 잡아주고, 유닛 주변의 등고선 패턴은 소리의 회오리현상을 교정해줍니다. 그래서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낼 수 있죠. 소리의 왜곡 없이 원음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스피커, 24년 동안 이것만 연구했습니다. 제 스피커는 과학과 기능, 미학이 접목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는 오브제 역할을 하는 스피커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전시장에는 ‘혜성’뿐 아니라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돋보이는 ‘수평과 수직’, 고대 그리스에서 영감을 얻은 ‘셀레네의 말’ 시리즈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말머리 조각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달의 여신 셀레네를 위해 마차를 끌었던 말이라고 합니다. 말머리조각의 역사적인 성격이 제 작품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 그 소리가 녹음된 그때 그 순간으로 데려가주니까요. 앞으로 이런 모티프로 작업할 계획입니다.”

〈Horizontaland Vertical〉
홍익대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처음 금속으로 스피커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 미친놈이라고 했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명품이라는 스피커도 모두 나무로 만들던 때였다.

“네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빠져 살았습니다. 장전축의 레코드판에서 음악이 나오는 게 신기했고, 내셔널 녹음기로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서 들었죠. 음악 감상실도 드나들었습니다. 대학 때는 음악잡지 의뢰로 공연사진 촬영도 했지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목록을 죽 적어봤습니다. 사진을 할까, 음악을 할까 고민도 했죠. 그러다 내가 전공한 금속과 소리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1998년 첫 금속 스피커가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다. 똑같은 음악이 왜 스피커마다 다른 소리로 들리는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반복해서 듣고, 자료조사를 하고, 세계 최고의 명품 스피커들을 구해서 뜯어보았다. 청동, 황동, 스테인리스 등 각종 금속으로 실험했다. 요즘은 비행기 동체에 쓰이는 두랄루민으로 스피커를 만든다. 단단하면서도 가공성이 좋아서다. 그는 “스피커로 돈을 벌었다기보다 갖가지 일을 해서 번 돈을 쏟아부었다”고 말한다. 개발과 제작에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제작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흠이 생기면 폐기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을 걸 만한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대량생산으로 전환할 생각도 없다.

“기능이나 디자인이나 최고의 스피커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이번 전시에 나온 스피커 일곱 점을 조립하고 튜닝하는 데만 석 달이 걸렸습니다.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죠. 같은 스피커를 계속 만들면 재미없잖아요? 세상에 없던 스피커를 내놓아야지요.”


최고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하여

독일 음향회사 아큐톤과의 협업 회의.
그는 오디오 마니아라는 사람들까지 소리가 아니라 브랜드에만 열광하는 풍토를 안타까워한다. 그의 이름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스피커를 연구하면서 기술특허 8개, 디자인특허 32개, 국제특허 1개를 취득했고,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과 iF,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에서 14차례에 걸쳐 상을 받았다. 고음질 포터블 플레이어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아이리버 아스텔앤컨(Astell&Kern)의 디자인과 소리 튜닝을 맡고, SK텔레콤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의 소리 튜닝도 맡았다. 이것들 역시 원음 그대로를 재생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스피커에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독일 음향회사 아큐톤(Accuton)의 유닛이 들어간다.

“2000년에 명함 한 장 들고 무작정 독일로 찾아갔어요. 그때는 아큐톤의 유닛이 세계 최고가 아니었지만, 제 스피커와 결합하면 엄청나게 좋은 소리가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금속으로 스피커를 만든다고 하니까 ‘그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을 왜 하느냐?’고 의아해하더군요. 연거푸 찾아가서 설득했고, 2004년 기술협약을 맺은 후 제 스피커를 위한 유닛을 개발해주고 있습니다. 그곳을 통해 제 이름이 세계 오디오계에 알려졌죠. 그 회사 매출에서 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갈 때마다 정말 눈물 날 정도로 환대를 받습니다. 제가 최고의 소리를 구현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거지요.”

그는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그곳에서 꼭 공연을 보고 온다. 실제 공연에서 듣는 소리와 그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반의 소리를 일치시키기 위해서다. 요즘은 녹음 수준이 워낙 높아져서 오디오 기기만 잘 갖추면 현장과 거의 다름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미대를 나왔지만 소리 튜닝까지 맡고 있는 그에게 모든 감각이 예민하냐고 물었다.

“원래 미술이라는 게 예민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 미각, 촉각, 육감까지 발달되어 있어야 하죠.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도 될까 말까한 일이니까요. 대신 성격도 그만큼 까다로워져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피곤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도 공연도 혼자 보러 갑니다. 그래야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했던 말머리 조각을 모티프로 삼은 스피커.
그는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벼리기 위해 몸을 학대하기도 한다.

“튜닝작업을 할 때는 밥을 먹지 않습니다. 며칠씩 맥주로만 배를 채우면서 일하지요. 굶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지잖아요? 그만큼 소리에도 예민해져요. 작업하는 동안 몸무게가 4~5kg씩 빠집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비우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언제나 동틀 때쯤 일어나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면서 멍하니 앉아 있죠. 몇 년 전 성북동으로 이사했는데, 동트기 전부터 새소리가 들립니다. 잣을 준비해두고 새를 불러들이면 박새, 곤줄박이, 지빠귀 등이 날아들어요. 지빠귀는 암수가 같이 다니는 게 너무 아름답습니다. 걔네들 먹이를 주면서 눈도 귀도 마음도 맑게 씻어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디자이너라기보다 고독한 예술가 혹은 구도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소리를 청각뿐 아니라 시각, 촉각, 육감으로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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