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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에는 ‘문학’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다

제15회 한국문학번역신인상 수상자 다카이 오사무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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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15회 한국문학번역신인상 일본어 부문에서 예심을 거쳐 최종 심사에 오른 것은 20편이었다. 심사위원의 평에 따르면 “현저하게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없으나 예년에 비해 태작이 많았고, 비교적 높은 점수를 얻은 작품 중에서도 최종적으로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것은 극히 적었다”고 한다. 일본어 부문에서 수상작이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손보미 작가의 《임시교사》를 번역한 다카이 오사무(高井修·53)씨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대다수 응모작이 범한 ‘규범적 번역’을 거부하면서도 가장 뛰어난 성취를 거둔 수상작”이라는 평이었다.
영화 〈쉬리〉를 통해 한국 문화에 빠지다

다카이씨는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오사카 토박이다. 대학에선 종교학을 전공했고 한국 또는 한국어와는 관계없는 직장을 다녔다. 운이 나쁘게도 첫 번째, 두 번째 직장 모두 건강 문제로 오래 다니지 못했다. 이후에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오사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긴키(近畿)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바다 건너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편의 영화 때문이다. 개봉 당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강제규 감독의 〈쉬리〉였다.

“2000년 연말이었어요. 중고 DVD 가게에 갔다가 우연히 〈쉬리〉를 보게 됐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열 번 이상 봤어요. 다른 한국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가게에 일본어 자막이 들어간 한국 영화가 세 편 정도밖에 없었어요.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여러 모로 수소문해보니 오사카에 〈서울서림〉이라고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점에 비디오 대여 코너가 있더군요. 가보니까 한국 영화 비디오는 많이 있었는데 일본어 자막이 없었어요. 그래도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빌려 보다가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죠.”

일본어 자막이 달려 있지 않은 영화를 열 번씩 보면서 한국 영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

“〈쉬리〉는 보통의 오락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그때까지 갖고 있던 한국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린 영화였어요. 한국에서 이렇게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가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고 할까요. 〈지구를 지켜라〉나 〈플란다스의 개〉 등의 영화도 좋아하는데 한국 영화는 일본 영화와 비교할 때 시나리오가 좋아요.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다는 점, 그리고 이제는 일본에서 사라진 ‘영화배우’가 아직 남아 있어서 배우들에게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2004년 영화 잡지 《씨네21》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고정수’라는 필명으로 한국 영화 관련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한글로 썼다. ‘고정수’라는 필명은 그의 이름 다카이 오사무(高井修)를 한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블로그를 방문했고 당시 《씨네21》의 편집장이었던 남동철씨도 편집장 레터에서 제 블로그를 언급해줬어요. 백은하 기자가 〈매거진t〉라는 온라인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칼럼을 써달라고 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5월부터 2년 동안 〈나는 오사카의 TV오타쿠〉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고 이후에는 《씨네21》의 일본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일본 영화계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독학으로 익힌 한국어로 신인번역상 받기까지

다카이 오사무씨가 번역한 조영일씨의 《세계문학의 구조》 일본어판 표지.
20대 때 복막염을 앓아 직장을 그만둔 뒤에는 비디오 대여점, 문구류 제조회사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해 왔다.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을 받기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택배회사에서 택배물을 분류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어는 주로 NHK의 라디오 강좌를 들으며 공부했어요. 물론 그냥 라디오 강좌를 듣기만 해선 실력이 늘지 않으니까 단어 카드나 학습 노트를 만들어 반복 학습을 했어요. 영어나 독일어 같은 언어에 비해 외워야 할 문법 규칙이 적고 일본어와 문법이나 한자 등에 공통분모가 많아서 배우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소설을 비롯해 다양한 책을 읽으며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실은 그는 지독한 책벌레다. 대학생 때는 보통 1주일에 4권, 1년에 200권 정도를 읽었다. 한국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서량이 확 줄었다. 지금은 한 달에 열 권 정도 읽는다고.

“한국어의 매력은 다른 외국어에 비해 감정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어순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느낌이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어는 ‘이런 나의 느낌’이라고 하지만 일본어는 ‘私のこのような感じ(나의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거든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블로그에 일본 감독이나 영화에 대한 글을 올렸다. 블로그를 찾는 많은 한국인이 그의 응원단이 돼주었다. 한국문학번역신인상에 응모하게 된 것도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한국인 친구 덕분이었다.

“박경애씨가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이라는 게 있으니 응모해 보라며 책을 보내주셨어요. 그게 3년 전인데 그때는 조금 해보다 그만뒀어요. 번역가가 될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경애씨가 다음 해에 또 책을 보내주셨어요. 경애씨의 성의에 보답하고자 번역해서 응모했는데 떨어졌어요. 올해도 다시 도전해 보라며 또 책을 보내주시는 바람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카이씨는 번역 원고를 보내면서도 자신이 상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번역가가 될 생각도 없었고 실력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모범적인 번역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도전적인 번역을 할 수 있었죠.”

실제로 한국문학번역신인상의 심사를 담당한 심사위원은 그의 번역에 대해 “스스로가 이해한 원작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고, 자신이 의도하고 목표한 바를 뒷받침해줄 만한 세련된 언어능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단연 군계일학이다. 원작이 ‘득을 보는’ 지혜로우면서도 능숙한 번역 기술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4년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했을 때 한국 친구들한테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어요. 그때 습작으로 번역해본 것이 결실을 맺게 된 것도 있어요.”

한국인 비평가인 조영일씨가 쓴 《세계문학의 구조》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등을 번역해서 저자인 조영일씨에게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번역한 글 중 일부가 일본의 문학비평잡지 《문학계》와 《겐론》에 소개됐다. 이것이 좋은 반응을 얻어 조영일씨의 《세계문학의 구조》 일본어판의 번역을 맡았다. 《세계문학의 구조》는 지난해 12월 이와나미쇼텐에서 출간됐으며 유수의 평론가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국문학 번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제는 일본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문자 문학’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학을 한다는 것이 사회적인 일의 참여라는 믿음이 있고 실제로 작가들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것 같아요.”

최근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그는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NHK 라디오 강좌를 들으며 한국 책을 읽는다. 오후 3시까지 번역 연습을 하고 이후에는 한국 드라마를 본다.

“김훈 작가의 책을 번역해 보고 싶어요. 주인공의 내면이 드러나지 않고 근대문학같지 않아 신기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 많아요. 일본에는 없는 스타일이에요. 소설 《공무도하》는 이미 번역을 마친 상태예요.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김은덕·백종민씨 부부가 쓴 《한 달에 한 도시》도 일차 번역을 끝냈어요. 출판 제의가 와주면 좋겠습니다.”
  •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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