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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근원적 낙원을 찾아서

솔로 앨범 〈Radical Paradise〉 낸 싱어송라이터 강이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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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음악에도 색이 있다. 선율을 따라 흐르는 음은 여러 빛깔의 파장을 거쳐 하나의 색채로 다가온다.
싱어송라이터 강이채(28). 한자로 다를 이(異)에 채색 채(彩) 자를 쓰는 이름 그대로 그의 음악은 남들과 다른 진귀한 빛깔을 지녔다.

사진제공 : 프라이빗커브
최근 첫 솔로 앨범 〈래디컬 파라다이스(Radical Paradise)〉를 발표한 강이채를 상암동에서 만났다. 민트색 단발머리에 청재킷을 입고 나온 그는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모다. 무대 위에서는 열정적인 바이올린 연주로 관중을 장악해 온 그이지만 말마다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 순박함이 느껴졌다. 자신을 ‘선머슴’에 비유하며 소탈하게 웃었지만 음악을 이야기할 때의 눈빛은 날카롭고 선명했다.

재즈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강이채가 대중에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베이시스트 권오경과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이채언루트에서다.

“연주만 했지 노래는 처음 불러봤어요. 노랫말이 담긴 곡을 종종 써서 보컬리스트에게 주곤 했는데, 어느 날 가수 선우정아가 제 목소리로 녹음한 데모를 듣더니 ‘원작자의 의도를 아는 목소리는 힘이 다르다’며 저에게 노래를 불러볼 것을 권유하더라고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했으며 이채언루트의 몽환적 음악과 잘 어울렸다. 그들이 작업한 EP 앨범 〈메이드라인(Madeline)〉은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음반 부문 후보로 오르며 인디신의 유망주로도 꼽혔다. 1년 반 동안 활동하며 주 1, 2회씩 공연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새로운 음악에의 갈증은 그녀의 독립을 부추겼다. “듀오를 하며 일렉 사운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뮤지션 강이채의 성장통

지난 11월 5일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연 강이채.
앨범 〈래디컬 파라다이스〉는 내면의 갈등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고민 등 이십 대를 지나는 강이채의 성장통이 담겨 있다. 전 곡을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하며 그동안 내밀하게 품어온 음악적 갈망을 자유로이 표출했다. 전자악기인 신시사이저 위에 바이올린과 보컬을 적절하게 토핑한 맛깔스러운 ‘크로스오버’다.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팝,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이면서도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앨범의 제목이자 타이틀곡인 〈래디컬 파라다이스〉는 삶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곡이다.

“무엇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 쉽게 잊고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떠올리며 그리워할 때가 있어요. 내 안의 낙원은 그리울 때 잠시 찾는 게 아닌 그 어떤 날에도 항상 지키고 키워가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뮤지션 강이채를 이야기할 때 바이올린은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재즈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며 보컬리스트 선우정아, 반도네온 연주가 고상지 등 실력파 뮤지션과 협업을 해왔다. 그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계기는 클래식 기타를 치던 엄마의 권유에서다. 여섯 살 때 시작해 예술고를 다닐 때까지 줄곧 클래식 음악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까만 긴 생머리에 바이올린 끼고 다니던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에게 신세계가 찾아온 것은 중학교 때 유튜브를 통해 재즈기타 연주자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의 〈마이너 스윙〉을 접하면서부터다. 처음 접한 ‘유럽 집시 재즈’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망을 자극했다. 팝과 재즈에 눈을 뜨면서 클래식 음악과의 괴리감을 느꼈다. 클래식과 재즈는 리듬과 분위기 모두 달랐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고심 끝에 클래식을 전공하길 바라는 부모를 설득해 버클리 음대에 진학했다.


버클리 음대 전액 장학생


까만 눈동자에 비친 미국은 활력과 기회의 공간이었다. 한국에서의 스파르타식 음악교육에 비하면 자유로운 영감이 충만했다.

“감성이 폭발하는 게 이런 건가 싶었어요. 나무 하나 하나가, 하늘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죠. 처음 학교에 갔을 때 경직된 모습에 교수님이 긴장을 풀어주며 얘기하더군요. 음악을 배우러 왔으면 음악에 대해 궁금한 점은 당당하게 묻고, 틀렸다 싶은 것은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한 버클리 음대에서의 생활은 순탄했다. 언제든지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과의 즉흥연주를 주고받으며 감성을 키웠고, 학교 재즈 오케스트라 악장으로도 활동하는 등 분주하면서도 값진 날들을 보냈다. 재즈뮤지션 론 카터(Ron Carter) 콘서트에서 솔로이스트로 연주, 재즈바이올리니스트 마크 오코너(Mark O'Connor)와 협연, 영화 음악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Alan Silvestri)와 콘서트를 하는 등 거장들과 활발한 교류도 이어갔다.

소위 잘나가던 그에게도 방황의 시기는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유롭게 즐겼던 음악과 생업의 갈림길에 섰다. 금전적으로 힘들었고 음악 작업 또한 쉽지 않았다.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안정한 날들이 반복됐다. 그 와중에 어릴 적 친구가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쓴 곡이 이번 앨범에 수록된 〈GYP(집)〉이다. 그는 “오랫동안 묵혀온 감정인데 이번 앨범에 풀어낼 수 있어서 시원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꿈을 찾아 방랑한 지 6년 만인 2014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여름, 의식이라도 치르듯 머리카락을 민트색으로 염색했다.

뮤지션 강이채의 음악적 에너지는 무엇일까. 그는 ‘신선함’이라고 답했다.

“예전에 연습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적이 있어요. 곡을 쓰거나 편곡 작업, 커버 곡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렸죠. 하루가 다르게 조회 수가 올라갔고, 동료나 교수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공연하지 않아도 이렇게 전달이 되는구나, 그동안 혼자 연습했는데 다들 보고 호응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상 속 범상치 않은 그녀의 독특한 바이올린 연주법이 눈과 귀를 홀렸다.

“활로 줄을 찌그러뜨리며 노이즈를 만들어서 비트를 심고 코드를 연주하며 화성을 입혀요. 동시에 멜로디를 연주하죠. 쉽지 않은 연주법이라 바이올리니스트들한테 호응을 얻었어요.”

이십 대를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는 “어떤 음악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며 “유명해지는 것보다는 음악적 성취감이 더 앞선다”고 말했다. 자신의 음악에는 욕심이 많지만 취미도 없다면서 ‘쉬는 게 어려웠다’고 웃는다.

그는 지난 11월 초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언더스테이지에서 첫 콘서트를 연 데 이어 오는 12월 25일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연다. 강이채로 활동하며 함께 할 밴드를 보여주는 신고식 자리이기도 하다. 단독 공연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칠 법도 한데 그는 “공연을 자주 해야 성장할 수 있다”며 “한 달도 너무 길다”고 말한다.

“항상 욕심이 많았어요. 음악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집착이 생기다 보니 힘들었어요. 그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주위 사람들도 다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제 앨범에 담긴 위로 곡 ‘Everything Will Be Alright’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곡이에요. 자기 위치에서 안 이뤘다, 못 이뤘다 해서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행복하다면 뭘 이루지 않아도 좋은 거 아닌가요?”
  •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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