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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년 만에 찾아온 행운

더빙극장의 ‘뻥끗 머신’ 권혁수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디오니소스가 연회에 지각한 오르페우스를 나무란다. 흥을 돋우기 위해 그리스신화 속 최고 악인(樂人)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한다. 한데 이 천상의 악기에서 쏟아져 나온 건 정신 사나운 전자기타 소리. 사람들은 일제히 웽웽거리는 전자음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든다. 만화 〈올림포스 가디언〉의 한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패러디한 이 코너 이름은 〈SNL 코리아 시즌8〉의 ‘더빙극장’. 히트한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속 명장면을 입만 뻥끗거리며 1인 다역(多役)으로 연기하는 1분짜리 패러디물이다. 페이스북 〈SNL 코리아〉 페이지에 올라온 클립 영상은 나흘 만에 조회 수 90만 건을 돌파했다. 4100명이 영상을 퍼 갔고 댓글만 7000개가 달렸다.


‘호박고구마’로 인기 몰이

‘더빙극장’의 인기를 견인한 ‘뻥끗 머신’ 배우 권혁수(30)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검정 반소매 티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났다. “엉망이라 놀라셨죠? 무얼 입고 사진 찍어야 할지 몰라 차 뒷좌석에 장롱을 싣고 왔어요.” 뒷좌석 손잡이엔 세탁소에서 막 다려 온 듯한 셔츠와 바지 십여 벌이 걸려 있었다. 아직 매니저가 없단다. 멋쩍게 웃던 그는 차 유리창을 거울 삼아 옷을 몇 벌 대보더니 “후딱 환복하고 오겠습니다. 비비크림도 좀 찍어 바르고”란 말을 남기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호박고구마’에서 ‘디오니소스’로 이직(移職)한 권혁수입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권씨는 2012년 〈SNL 코리아 시즌2〉로 데뷔했다. 배우 김민교·정상훈 등 선배들이 SNL을 통해 무명 생활을 청산하는 동안 단역으로 조용히 내공을 쌓은 권씨는 지난 6월 방영한 시즌7의 ‘더빙극장’ 코너에서 잠재력을 터뜨렸다. 특히 호박고구마를 ‘고구마호박’이라고 잘못 말해 며느리에게 구박당하는 나문희를 패러디한 ‘거침없이 하이킥’ 편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SNS를 안 해서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지 몰랐어요. 어느 날부터인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저를 ‘호박고구마’라고 부르는 걸 보고 조금씩 인기를 실감했죠. 직업란을 채울 일이 생기면 ‘배우’가 아니라 ‘호박고구마’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더빙극장’은 페이스북에서 ‘문학살롱’이란 시(詩) 페이지로 유명해져 SNL 작가로 영입된 이환천씨 아이디어다. “이 작가님이 친구들과 찍은 ‘더빙극장’ 데모 영상을 보여줬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기대에 차 대본을 기다리는데 제 앞으로 ‘하이킥’ 장면이 떨어져 눈앞이 캄캄했지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한창 인기를 끌 때 저는 군인이었거든요. 리모컨 주도권이 없는 일병 때라 본방을 한 번도 못 봤어요. 하이라이트 영상을 수십 번 돌려 보면서 나문희 선생님의 분노를 체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기 센 며느리한테 수모당하니까 울컥하더라고요.”

권씨를 개그맨으로 오해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SNL이 코미디를 베이스로 하는 방송이라 가끔 ‘개그맨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때가 있어요. 어려운 개그맨 공채 뚫고 데뷔한 사람도 아닌데 송구할 따름이죠. 사람들 웃기는 거, 너무 힘들어요. 저한테 개그 재능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SNL 대본이 웃긴 거예요.” 더빙극장 한 편 촬영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3시간 내외지만 권씨는 다른 출연진보다 배 이상 걸린다. 밤샘 작업을 할 때도 있다. “재능과 촬영 시간은 반비례해요. 세영이(이세영)나 상훈이 형(정상훈)은 대본으로 캐릭터를 100% 이해하고 촬영에 임해서 걸리는 시간이 짧죠. 재능이 달리는 저는 현장에 도착해 마구 질문을 던져요. 현장 연출진과 소통하면서 더 재밌는 그림을 만들다 보니 시청자 반응도 좋은 것 아닐까요?”


tvN 10 어워즈 ‘노력하는 예능인 상’

가상한 노력은 ‘노예상’으로 돌아왔다. 10월 9일 열린 tvN 개국 10주년 기념 ‘tvN 10 어워즈’에서 권씨는 ‘노력하는 예능인 상(賞)’ 일명 ‘노예상’을 수상했다. “어느 분부터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수상 소감 운을 뗀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마이크가 가슴 높이까지 내려갔다.

긴 수상 소감을 방지하기 위한 제작진의 특별 조치. 권씨는 내려가는 마이크에 맞춰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굽히고, 마지막엔 바닥에 드러누워 끝까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만큼 SNL은 그에게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학비가 없어서 대학만 8년 다니던 저를 ‘배우’로 변신시켜준 프로그램이 SNL입니다. 개그 캐릭터의 끝장을 보여드릴 때까지 SNL에 남고 싶어요.”

정극(正劇) 욕심은 없을까. 권씨는 “시기상조”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 전 ‘낙하산’이에요. 친구 따라 장진 감독님 생일파티 갔다가 우연하게 SNL에 합류했거든요. 연극 전공했으니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크죠. 하지만 호흡이 긴 정극은 온전히 그 작품에만 빠져 있어야 해요. 이제 막 사랑받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SNL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호박고구마와 디오니소스를 이을 다음 ‘직업’도 기대해주세요.”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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