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직장인의 그림일기

약치기 그림 그리는 양치기 작가 양경수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 글씨 더 크게 보기
  • 글씨 더 작게 보기
힘들기도 힘든, 지치기도 지친 직장인들에게 한 줄기 사이다 같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 ‘양치기 작가의 약치기 그림’으로 알려진 양경수 작가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간관계의 균형감각을 갖춘 작가는 한 장의 그림으로 ‘사회생활’의 불합리에 불주먹을 날린다.
그림 속 인물들은 한없이 진지하다. 온화한 표정으로 말쑥한 정장을 입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속으로 울고 있다. 정글 같은 사회에서 울면 지는 거다. 울고 싶지만 울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차라리 웃는 것이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웃는 얼굴 뒤에 가려진 직장인의 독백을 방백으로 바꾼 책이다. 우리보다 먼저 경제위기와 저성장 시대를 겪은 일본에서 나왔다. 1985년생 작가 히노 에이타로는 “사람은 결코 일하기 위해 살지 않으며, 회사의 가치관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도 이 책이 화제가 됐다. 출간 2주 만에 4쇄를 찍었다. 책보다 더 화제가 된 건 책에 그려진 삽화다. 당초 일본판 일러스트가 있었지만, 국내에서 번역되면서 한국 작가가 그린 그림이 추가됐다. 이 그림은 단숨에 SNS를 타고 확산됐다. 출근길과 퇴근길, 숱한 직장인들이 리트윗·공유·전송 버튼을 눌렀다. 불합리한 노동 현실에 한국 특유의 정서까지 담은 이 그림은 직장인의 그림일기나 다름없다.


마음속에 있으나 하지 못하는 말들

직장 상사가 “내가 딸 같아서 그러니, 고민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그림에는 웃으며 “아들만 둘이시잖아요”라고 말하는 직원이 그려져 있다. “어지럽고 일도 안 잡히고 현실도피 하고 싶고 불안하다”는 환자에게 의사는 “상사병”을 진단해준다. 직장 상사가 주는 병이다.

그림을 그린 양경수 작가는 모든 일에는 중의성이 있다고 한다. 독하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일수록 자신이 그런 시집살이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상사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직장인의 청춘’이 날아가고 있다면, 그 옆으로는 ‘상사의 청춘’이 날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경종을 울리려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에요. 다만 힘든 현실을 ‘힐링’으로 소비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힘들면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걸 말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제 작품을 ‘약치기’ 그림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에는 ‘약을 판다, 약을 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병든 세상에 약을 친다’는 의미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약치기 그림을 그리는 양경수 작가는 본인을 소개할 때 ‘양치기 작가’라고도 한다. 양치기 작가가 그린 약치기 그림인 셈인데, 이 양치기(梁治己)에는 ‘나 자신을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

“힙합에 펀치라인이라는 게 있어요. 중의적인 표현으로 동음이의어를 사용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찾아서 균형감 있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칼퇴근이 아니라 정시퇴근, 열정페이가 아니라 페이열정이라고 쓰면 같은 상황이라도 의미가 달라진다. 그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같은 삶을 사네”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같은 옷에 같은 포즈로 ‘난 달라’를 외치고 있다. 현재 일어나는 사회상을 균형 있게 보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가운데에 선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다.

약치기 그림이 먼저 세상에 알려졌지만 그는 꾸준히 불교미술을 그려왔다. 특히 불교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그의 그림은 2015년 불교박람회 우수콘텐츠 상을 받기도 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불교식 선문답은 작가인 그에게 자양분이 되었다.

“부모님 두 분이 불교미술 쪽 일을 하셨어요. 어릴 때는 그게 싫어서 도망쳤죠. 대학도 서양화과로 갔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이쪽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보면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그의 그림에서는 부처가 선글라스를 쓰고 디제잉을 한다. 만약 부처가 현대의 젊은이에게 찾아왔다면 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클럽에서 설법을 했으리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나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


“제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건 아마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일 거예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친구가 되죠. 앞으로는 직장인의 애환을 직업군별로 그려보려고 해요. 택배기사 분이나 간호원 분들 일하는 걸 보면 노동의 강도가 엄청나요. 업계 종사자들만 아는 이야기들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그의 메모장에는 메모가 그득하다. 휴대폰에도 소재만 담아두는 공간이 있다. 작업실에는 모니터만 네 대다. 각각 쓰는 용도가 다르다. 사진만 찾아보는 컴퓨터도 있다. 한국과 아시아, 영미권은 물론 제3세계 자료까지 찾아보려고 한다.

“한 장의 사진에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그림도 긴 말 하지 않고 정곡을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런 함축적이고 의미 있는 표현을 만들어내는 게 제 작업이죠.”

부처가 제자와 나눈 대화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보며 “스승님, 저기 흔들리는 것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람이 흔들리는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부처는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고 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저는 좌판에서 노점상을 하기도 했고,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해본 적도 있어요. 엄밀히 직장 생활은 해보지 않았죠. 그런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들 속에 있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지도 몰라요.”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취업 준비생은 회사에 내면화된 충성심을 갖게 된다. 막상 직장인이 되면 취준생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학생일 때 미리 잠을 충분히 자두라”는 말이다. 실제로 24세의 한 컨설턴트는 취업하자마자 회사 선배에게 “첫 월급을 받으면 잠깐만 자도 버틸 수 있게 좋은 침대부터 사”라는 충고를 들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마음은 없어요. 후배들에게도 ‘힘내’라는 말은 잘 하지 않아요. 다들 힘드니까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힘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거죠.”

자고 일어나 보니 벼락 스타가 되어 있는 기적이 양경수 작가에게 일어났다. 그는 들뜨지 않을 셈이다. 그보다 그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갈 생각이다. 아이들을 위한 밥차를 디자인하거나,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일 등이다. 한동안 유명세로 양치기 작가로서만 활동했지만 곧 양경수 작가로서 하고 있는 작품 활동도 병행할 예정이다. 전시 공간 아트스페이스 담다에서는 9월 30일까지 양경수 작가의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네덜란드 국립 세계문화 박물관에서는 〈더 붓다〉 전시에서 내년 2월까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양경수 작가의 〈양치기 작가의 약치기 그림〉.
  • 2016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