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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

〈구르미 그린 달빛〉 윤이수 작가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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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에는 ‘효명세자’ ‘홍경래’ 등 역사가 잊은 인물들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다. “죽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잊히는 것”이라는 한 영화의 대사를 마음에 품고 산다는 윤이수 작가는 달을 그린 달 이야기가 아니라 구름(백성)이 그린 달(왕)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제공 : KBS
‘살아가지 않고 살아가리니’, 윤이수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 한마디다. 여인이지만 여인으로 살 수 없는 홍라온과 궁에서 태어났으나 왕이 될 수 없었던 효명세자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구르미 그린 달빛〉이 아니었다면 스물둘 짧은 생을 살다 간 ‘효명세자’가 이토록 아까운 사람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고 ‘홍경래의 난’이 이토록 많은 백성의 눈물이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윤이수 작가는 〈구르미 그린 달빛〉의 원작자다. 2013년 131회에 걸쳐 포털에 웹소설로 연재해 누적 조회 수 4000만, 평점 9.9의 기록을 남겼다. 주2회 연재라 일주일에 6일은 수험생처럼 살았다. 감기에 걸려도 졸음이 쏟아질까봐 약을 먹지 못했다.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조선의 왕궁을 거닐던 날들이었다.

“한 작품이 완결되면 이들을 잊어버리는 데 석 달은 걸리는 것 같아요. 연재를 하면 그동안은 같이 사는 거니까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죽으면 며칠을 앓아요.”

효명세자, 역사가 잊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최고 꽃미남이었다던 헌종, 사실 그의 아버지는 더욱 미남이었다. 그가 바로 효명세자다. 예악에 능한 천재이자 민생을 파탄에 이르게 한 세도정치를 종식시키려 애썼다는 성군.

“역사에 가정이라는 건 무의미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만약에 문종(세종의 아들, 30년간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다)이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만약에 효명세자가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그리고 지금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싶은 순간들요.”


홍운탁월, 구름으로 달을 그리다


홍운탁월(洪雲托月). 달을 그리지 않고 구름으로 물들여 달을 드러내는 동양화의 기법이다. 달을 달이라 말하지 않고도 달을 보여주는 방법. 그가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두 사람이 정말 사소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더라도, 그 사소함이 사랑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켜켜이 쌓인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실록을 보면 왕이 뜻밖의 행동을 하거나,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를 상상해보는 거죠. 저는 사람이 움직이는 가장 큰 힘 중에 하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가 사랑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유죠.”

‘인생을 바꾸는 사랑 이야기’는 다름 아닌 윤이수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잘한 일을 꼽자면 첫째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일이고, 둘째는 아이를 낳은 일이라고 했다. 남편과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우연히 만났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마음 씀씀이에 반했다. 무협소설가인 그가 쓰는 글을 읽으며 사랑에 빠졌다는 윤이수 작가는 ‘남편은 작가로서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일지 늘 놀라운 마음으로 글을 읽어요. 서로의 작품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 함께 있으면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그 우연한 만남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체험한 윤이수 작가는 우연하고 사소한 일에 공을 들인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연대기로 구성해보고, 이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쌓아간다.

“첫 장면에 많은 공을 들이죠. 〈구르미 그린 달빛〉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전혀 뜻밖의 곳에서 다른 목적으로 마주치길 바랐어요. 그랬을 때 서로의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 장면을 쓸 때 스무 번은 고쳐 썼던 것 같아요.”

운종가에서 남장을 한 채 ‘삼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라온과, 왕세자가 아닌 양반 행세를 하며 나타난 이영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작가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라고 말한다. 그 이후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인물의 몫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인물이 알아서 하는 것 같아요. “이걸 내가 썼나?” 싶을 때도 있어요. 사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악인이에요. 주인공의 타당성도 악인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 탄탄한가에 달려 있어요. 그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 방점을 찍으려고 달려가는 거예요. 악인이 대단하다면, 그와 맞서는 주인공은 더욱 대단해지는 거고요.”


결국은 사랑인 것을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세자가 내시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 발칙한 이야기는 인물들의 대화와 만남을 따라가다 보면 수긍이 된다. 구중궁궐에서 태어나 궁이 답답하고 궁 밖이 궁금한 세자는 라온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읽는다. 하늘을 지붕 삼아 땅을 집 삼아 떠돌며 살아온 라온이 그 이름처럼 밝은(‘라온’은 순 우리말로 ‘즐거운’이란 뜻이다) 이유는 그의 곁에서 그를 보살펴준 어른들 덕이다.

“라온이 무슨 말을 시작할 때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이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건 한 아이가 자랄 때 좋은 어른이 끼친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저 어릴 적에도 동네에 그런 할머니가 계셨어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할머니 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추억이 저에게는 재산이에요.”

윤이수 작가는 강원도 평창에서 자랐다. 단오에는 단오제를 했고, 마을 잔치가 있던 날에는 온 마을 한가운데에 떡방아가 놓였었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쥐불놀이며 지신밟기 등을 했고, 어른들은 내 집 아이, 네 집 아이 구분 없이 밥을 먹이고 간식을 나눠 주었다.

“저는 어린 시절을 다 그렇게 보냈는 줄 알았는데, 저만 그렇게 자랐더라고요.(웃음) 크고 나서 알았어요. 저의 유년 시절이 특별했다는 걸요.”

윤이수 작가의 인물들이 어른들과 깊은 유대를 맺으며 그들의 보살핌 속에 자라는 것,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쌓고 지혜를 나누어 가는 모습은 바로 그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에 탈고한 《해시의 신루》에서는 세종이 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왕에게도 곤룡포를 벗고 잠방이 차림으로 개떡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했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궁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가엾은 존재예요. 왕세자 교육을 찾아보면 놀라워요. 세 살부터 선생님을 모셔다가 교육을 시켜요. 한번 시작하면 새벽 4시까지 이어져요. 왕은 숨을 쉴 때도 명분이 있어야 하죠.”

역사 속에 박제되어 있던 이들이 그의 작품에서 생기를 얻어 움직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들도 한 인간이었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왕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 세도정치를 폈던 안동김씨 일가는 당시 11세로 왕이 된 순조와 그의 아들인 효명세자를 겁박할 때 늘 “민생이 어려운데” “나라가 이리 소란스러운데”를 붙인다. 작가의 말처럼, 효명이 좀 더 살아 안동김씨의 전횡을 정리하고, 백성이 귀한 나라를 만들었다면 후기의 조선이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제 작품을 보면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글을 쓰기 전엔 자료를 철저히 찾아봅니다. 그 취재의 뼈대 위에 이야기를 올리려고 해요. 제 이야기를 읽는 분들이, 그 시대를 궁금해하고 당시의 역사를 찾아보게 된다면 그게 그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가 되리라고 믿어요.”

그것이 바로, 그가 쓰려고 했던 ‘살아가지 않고도 살아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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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가을이슬   ( 2016-10-27 ) 찬성 : 28 반대 : 19
구르미 드라마를 보며, 난생 처음 드라마에 폭 빠졌습니다. 그리고 역사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구요...현재 개인적으로는 수필로 등단했습니다.
 예전에는 순수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능력이 안되 소설쓰기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했고, 사실성을 넘어 존재하는 진실을 그려내기 위해선 허구라는 틀이 오히려 자유롭겠다는 생각을 이 드라마를 통해 하게 되면서, 역사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시의 신루" 구입했구요, 조만간 읽기 시작할 예정입니다.
 저는 웹소설 형태보다는, 순수소설과 장르소설의 중간 형태를 지향해요.
 윤이수 님의 기사를 접하고 너무 기뻐 댓글 남깁니다.
 그리고 고향이 평창이시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강릉이 고향ㅈ이예요. 지금 사는 곳은 수도권이지만...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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