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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명확하거나 모호한 “에그의 세계”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유계영 〈에그〉

깃발보다 가볍게 펄럭이는 깃발의 그림자
깃에 기대어 죽는 바람의 명장면

새는 뜻하지 않게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알아서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창밖의 무례한 아침처럼
그러니까 다가올 키스처럼
어떻게 두어도 자연스럽지 않은 혀의 위치처럼
새는 뜻하지 않게 시작된 것이다

새가 머무는 날
홀쭉한 빛줄기에 매달리는 어둠을 쪼며
짧게 나누어 자는 잠

그런 잠은 싫었던 거야
삼백육십오 일 유려한 발목의 처녀처럼
하나의 목숨으론 모자라
죽음은 탄생보다 부드러운 과정

새는 알을 남기고 간 것이다
나는 알을 처음 본 게 아니지만
곧 태어날 새는 어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알 속의 혀가 입술의 위치를 짚어 보는
그런 명장면

유계영 시집 《온갖 것들의 낮》, 민음사, 2016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제목에서 의문을 품었다. 왜 ‘알’이 아니라 ‘에그’일까? 왜 굳이 ‘알’ 대신에 ‘에그’라는 외국어를 썼을까? 어쨌든 시인은 제목으로 ‘에그’를 내세운다. ‘에그’는 의도성이 분명치는 않지만 ‘알’의 객관화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알’이라는 것에서 관습적인 낯익음을 거둬내고 낯설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시는 한 번에 그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다. 우리 존재의 위치는 매우 모호하다. 어떻게 두어도 자연스럽지 않은 우리 혀의 위치나, 입술의 위치를 짚어보는 알 속의 혀가 그렇듯이. 하지만 이 시가 담고 있는 함의는 의외로 단순한지도 모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시는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새를 키우게 된 이의 경험이 희미하게 엿보인다. 정작 시인이 쓰고 싶었던 건 새를 통해 엿본 탄생과 죽음의 명장면들이다. 이 시는 바람, 깃발, 깃발의 그림자의 관계에 관한 사유를 보여준다. 바람이 우주의 기운이라면 깃발은 그것에 영향을 받는 주체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사람이 사는 것은 “가볍게 펄럭이는” 움직임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움직임의 주체가 깃발이 아니라 깃발의 그림자라는 게 이채롭다.

새가 내게 온 일의 ‘뜻하지 않음’은 생명 탄생의 우연성과 조응한다. 어떤 생명의 탄생도 ‘뜻하지 않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새는 뜻하지 않게 내게 오는데, 그 뜻하지 않음은 “창밖의 무례한 아침”이나 “다가올 키스”같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우연에 속한다. 이 시에서 명쾌한 것은 새가 왔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나’는 ‘새’를 버리거나 죽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새’를 맞아들이고 거둬들였다는 점에서 생명에의 환대를 실천한 셈이다. 새가 와서 머무르는 동안 모이를 쪼고 “짧게 나누어 자는 잠”을 잤을 것이다. 그게 새의 생태니까 그 추측은 어렵지 않다. 그러다가 새는 알을 남기고 간다.

새와 ‘나’는 서로 계략을 꾸미고 기만을 하며 속이는 추악한 관계는 아니었을 테다. 그것은 생명으로서 매우 동등하거나 초연한 관계였을 것이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새와 그 새를 떠맡을 수밖에 없었던 ‘나’ 사이에는 범속한 일상들이 있다. 시의 문면은 그런 일상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일상은 있음과 없음의 사이에서 흐트러짐, 혹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의 흐트러짐 속의 질서를 세운다. 새도, 사람도, 그밖의 많은 생명들도 ‘사이’를 살다 가는 존재들이다. 그게 모든 생명의 숙명이다.

새는 알을 남기고 간다. 아마 ‘간다’는 새의 죽음을 암시하는 동사일 테다. 그것은 앞서 “죽음은 탄생보다 부드러운 과정”이라는 구절에 기대어 볼 때보다 확실해진다. 새는 죽었는데, 알을 남긴다. 알은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연쇄 과정의 고리다. 새가 알을 남긴 것은 “하나의 목숨으론 모자라”기 때문이다. 생명이 잉태하고 출현하는 찰나는 움직임 중에서 명장면이다. “온갖 것들의 낮”이 품은 분주한 움직임이란 실은 살아 있음의 분주함일 테다.

새는 알에서 부화하는데, 알은 하얀 피막을 뒤집어쓴 생명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의 원형질에 대한 정보 집적체다. 모든 알들은 한결같이 하얗다. 알은 백색의 피막을 세계와 저의 경계로 삼는다. 이것엔 어떤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하얀 새의 알만이 하얀 것이 아니라 파란 새의 알도, 검은 새의 알도, 나아가 악어의 알이나 뱀의 알도 모두 하얗다. 그 백 안에 현실적인 생명이 깃들어 있다. 그것이 저 세상과 이 세상의 경계로서의 피막인 알의 껍데기를 깨고 나왔을 때, 이제 더 이상 백이 아닌 동물 본연의 색을 띤다. 생명체로서 이 세상에 탄생한 동물은 이미 카오스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지도 모르겠다.”(하라 켄야, 《白》)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을 깨고 나와 생명으로 부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백이 아닌 동물 본연의 색”을 갖고 카오스를 향해 나아간다. 삶이란 카오스를 향해 걷는 일이다.

이 시가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시는 세계 속에서 저 너머 보기다. 유계영은 끊임없이 제 현존의 자리인 세계에 형상을 부여하고 그것을 묘사한다. “속에서 저 너머 보기”는 그다음 일. 유계영의 시는 대체적으로 세계의 있음에 대한 무심한 소묘다. 모호하면 모호한 대로, 명확하면 명확한 대로. 이를테면 “곧 태어날 새는 어미를 전혀 알지 못한다” 같은 구절의 명확함이 그렇다.

이 구절은 매우 사실관계가 명확한데, 그것이 처해진 세계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세계 전체는 그 알지 못함 속에 머물러 있다. 시인의 상상에 따르면, 세계는 미스터리, 신비, 모호함 그 자체이다. 우리는 ‘뜻하지 않음’으로 이 세계에 왔다가 저마다 ‘알’을 남기고 떠나간다.

우리의 태어남은 기이한 우연에 기인한다. 아울러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우리가 도착한 세계는 바로 “에그의 세계”다. 그것은 “내일은 내일 오겠지”(〈출구〉), “우리가 사랑하는 계절에는 / 아무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것”(〈아이스크림〉), “괜찮은 부모를 가졌다는 건 / 게으름에 대한 핑계가 부족해지는 일”(〈생일 카드 받겠지〉), “엄마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이 / 우리를 자라게 했어요”(〈일주일〉)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다. 우리는 이 “에그의 세계” 속에서 지난날을 기억하거나 망각하고, 재미를 위해서라면 오늘보다 먼 미래는 없다고 믿거나 믿지 않으며, 따분함과 슬픔을 구별하기 어렵도록 내일 만나거나 만나지 않으며 살아간다. 이 다양한 취향과 예감의 공동체 속에서 “오늘이 불편하면 내일을 기다리면 된다”고 믿으며 “주머니에 차고 온 술병을 무덤 위에 붓는”(〈활〉) 것이다.


유계영(1985~ )은 인천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10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는 세계의 기이한 낯섦에 대해 쓰는 시인이다. 그에 따르면, 0(없음)과 1(있음) 사이에서 “천사는 자신이 거대한 태아라는 사실”을 싫어하고, 괴물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뿐이다. 해는 두 발로 지며, 비는 바늘의 말투를 흉내 내려다 비가 되고, 말 없는 사람들은 돌을 던지러 강가로 몰려온다.(〈일요일에 분명하고 월요일에 사라지는 월요일〉) 세계는 우연과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머금고 부풀며, 우리는 그 안에서 착하게 사랑하거나 착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간다. 시인은 이 세계의 “온갖 것들의 낮”과 분주한 움직임들에 반항하며 종횡무진하는 존재다.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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