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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

화가 홍지윤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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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삶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을 그리고 싶어서일까?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온통 총천연색 꽃 그림들이다. 홍지윤 작가의 상징과도 같은, 한눈에 그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꽃들이다. 작업실이 자리한 서울 원효로 골목에서부터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와 원불교 교당이 나란히 서 있는 골목 맞은편 나무 담장 위로 그의 꽃그림과 빨간 연통이 먼저 눈에 띄었다. 식당으로 쓰였던 건물의 연통을 치우는 대신 빨간색으로 칠했다 한다. 작업실 탁자와 조명등 그리고 소품까지 그의 작품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용되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작업실만이 아니다. 전시나 갖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그는 건물 내부나 외부를 자신의 색깔로 꽉 채운다. 길이 2미터가 넘는 화폭에 호방한 필치로 그린 거대한 꽃 한 송이가 공간을 압도하기도 한다.


대비되는 요소들을 융합해 새로움을 창조

〈Standing on the hollyhock field〉, acrylic on canvas, 640x220cm, 2014
작품을 먼저 보고 “얼마나 에너지가 넘칠까?” 생각하면서 기가 센 작가를 만나리라고 지레짐작했다. 작가는 그런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하면서 “저 스스로는 되게 얌전하다고 생각해요. 자주 위축되고 상처도 잘 받죠. 그래서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거의 매일 혼자 지냅니다. 제 안에 지류가 많은 것 같아요. 수녀와 마녀가 함께 살고 있죠. 실제로 수녀님들이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다녔어요”라고 말한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는 자신의 작품에 ‘아시안 퓨전’이란 이름을 붙였다. 동양과 서양, 수묵과 채색 등 서로 대비되는 요소를 융합하되 그 근저에는 우랄알타이어족을 관통하는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거리낌 없이 서로 통하는 원융무애 정신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그렸다고 한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며 수묵담채로 그리는 정통 동양화와 달리 그의 작품은 요란한 형광색으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다. 정통 동양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이단이 없다. 그런데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서-화(詩-書-畵)를 하나로 융합하는 동양화의 특징, 한 획 한 획에서 돌이킬 수 없는 묵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 시를 먼저 쓴다. 이제까지 쓴 시가 900여 편에 이른다고 한다. 그에게는 시가 일종의 스케치인 셈이다. 그의 서체로 쓴 시가 그림 옆에 자리 잡고, 때론 글씨가 그림을 대신하기도 한다. 글씨와 그림의 근원은 하나라는 동양화의 서화동원(書畵同源) 정신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실에는 먹과 아크릴물감, 서양화 붓과 동양화 모필이 뒤섞여 있었다. 이런 식으로 동양과 서양이 거리낌 없이 만난다. 굵은 동양화 모필에 아크릴물감을 듬뿍 묻혀 한 획 한 획 호방하게 휘두른다. 이렇게 상반되는 요소를 섞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대해 그는 “어떤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빛나는 熱精 Brilliant Passion〉,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광화문 미디어 파사드 영상작품 이미지.
“2000년 연세대가 개설한 교육기관인 ‘디지털헐리우드’에서 3D 애니메이션을 배운 게 제 작품의 폭을 넓히는 데 분기점이 된 것 같아요. 재활치료를 받던 어머니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홍익대 동양화과 연구조교로 출근하던 길에 플래카드를 보고 무작정 등록했죠.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시기에 ‘디지털’ ‘헐리우드’라는 말이 붙으니 뭔가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어요. 그 전에는 이메일도 못 보낼 정도로 디지털과 관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전까지 그는 전통화론과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주로 수묵추상을 그렸다.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송수남 선생이 그림 이전에 공부가 필요하다며 책을 많이 읽게 했고, 대학에서 전통화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디지털헐리우드에서 공부한 후 그는 동양의 오랜 전통인 수묵화와 최신 기술인 3D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수묵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장자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새 붕(鵬)이 그가 수묵으로 그린 강과 산 위를 날아 어딘가로 향하는 16분짜리 작품에서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풀어 놓았다. “2002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만든 작품으로, 새를 통해 어머니와 나를 하나로 만들면서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너무 슬퍼서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고 일만 했어요. 패션디자이너였던 어머니는 철두철미하고 부지런하셨는데 저보고는 ‘너는 대충 살아라. 춤추면서 살아라’고 하셨죠. 그런데 어느새 저도 엄마와 똑같이 살고 있더라고요. 엄마는 큰딸인 저를 자신의 분신처럼 키우셨습니다. 그 덕에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보그》 같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패션 잡지, 예쁜 천들을 보면서 컸습니다.”

주로 먹으로 작업하던 그는 2007년 〈음유, 낭만,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면서 넘실대는 화려한 색감으로 공간을 채웠다. 한지에 검은색 먹을 칠하고, 그 위에 노란색 아크릴물감으로 커다란 국화를 그려 넣으면서 “ … 노을 지는 서쪽 하늘 들국화가 서럽다”라고 시를 써 넣었다. 그림과 글씨, 동양과 서양의 매체가 만나고, 아름다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음과 양, 밝음과 어두움,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하나라는 게 동양정신의 핵심 아니런가.


그림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산책 散策 Promenade each〉, acrylic &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210 x150cm, 2009
“신흥사에서 열린 어머니 49재 때 올려다본 천장의 단청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꽃의 도상은 정말 완벽했죠. 그때부터 제 작품에 색과 꽃이 등장했고, 2007년 작품부터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2006년 뮌헨 문화부 초청으로 1년 동안 독일에서 지내며 작업했어요. 브라질 친구들과 어울리며 천국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너무 슬퍼하니까 엄마가 이곳으로 보내줬나 보다’ 생각하면서 슬픔을 많이 삭일 수 있었죠. 그 후 작품이 너무 달라져 ‘그동안은 사기였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실은 제 안에 양쪽 모습이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천 점씩 수묵 작업을 했기에 필묵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다른 작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퍼포먼스, 설치, 오브제, 사진, 미디어아트, 디자인 작업 등 영역을 계속 넓혀 왔죠.”

동양화를 공부했지만 그는 재료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밝은 색감을 쓰고 싶은데, 동양화에서 쓰는 수묵담채나 분채는 채도가 낮아요. ‘굳이 동양화 물감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크릴물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주변에 나를 맞추려 하기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주변도 편안해하는 것 같아요. 그림은 온갖 체제와 사회관계에 억눌려 있던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이 제겐 휴식 같아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나를 관찰하고 나를 만나는 게 재미있고 좋아요.”

그는 요즘 빨강, 주황, 노랑, 파랑, 초록의 색동 혹은 무지개 빛깔로 꽃과 새를 그린다. 여러 겹의 꽃잎이 모여 한 송이 꽃이 되고, 여러 장의 깃털이 모여 한 마리 새가 되듯 인간도 삶도 사랑도 예술도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독일, 중국, 홍콩 등지에서 20여 차례 개인전을 열어온 그는 여러 군데에서 열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준비하고 있었다. 9월 22일부터 창원조각비엔날레, 9월 23일부터 베이징디자인위크, 9월 26일부터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는 〈DNA of Coreanity〉 전시, 10월 1일부터 서울아트스테이션프로젝트, 10월 25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여하면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미디어 파사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고, 11월 1일부터 홍콩에서 〈아주 가벼운 꽃〉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제 안에 있는 무거움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무거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각자의 삶에 주어진 과제니까요. 무거움이란 추가 있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무거움을 알기에 점점 더 가볍고 어린아이같이 천진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아이들한테서 영감도 많이 받지요.”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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