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원했던 삶을 사는 어른은 얼마나 될까

고레에다 히로카즈(54) 감독은 아버지가 된 후, 아버지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어느 날 어머니를 모신 불단에 향을 피우다가 아버지를 화장하고 유골함을 받아 든 순간이 떠올랐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과연 아버지는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인생을 사셨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게 됐다. ‘아버지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첫 문장을 공책에 적어 내려갔다.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제공 : 티케스트
부재와 죽음으로 삶을 위로하는 능력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 〈태풍이 지나가고〉(7월 27일 개봉)는 되고 싶은 게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8월 7일 누적 관객 5만 명을 돌파하면서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있다.

오래전 문학상을 받은 뒤 작가를 꿈꿨던 료타(아베 히로시)는 사설탐정 사무소에서 불륜 뒷조사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월급을 경마와 파친코로 날리는 통에 이혼한 아내 교코(마키 요코)와 아들 싱고(요시자와 다이요)에게 양육비도 못 준다. 조사를 의뢰한 손님을 등쳐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틈만 나면 어머니의 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값나가는 유품을 뒤진다. 료타가 싱고에게 ‘미즈노’ 글로브도 사 줄 돈이 없어서 쩔쩔 매는 동안, 교코는 현실 조건을 고려해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스물네 번째 태풍이 온 날, 세 사람은 료타의 어머니 요시코(기키 기린)의 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어린이인 싱고를 제외하면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가는 어른은 없다. 현실에 안주한 것으로 보이는 요시코도 연립주택을 벗어나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어한다.

“저도 되고 싶은 어른이 되지 못했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죠. 그렇다고 그게 불행하단 건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죠.” 고레에다 감독은 초등학교 때 프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중·고등학교 때는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어머니 때문에 교사를 꿈꿨다. “지금 이 일이 매우 즐겁고, 이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만, 어렸을 때 꿈꿨던, 인생의 답을 알고 있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데뷔작 〈환상의 빛〉으로 1995년 베니스영화제 촬영상(황금오셀리오니상)을 받았고, 세 번째 작품 〈디스턴스〉(2001)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다음 작품인 〈아무도 모른다〉(2004)의 주연 야기라 유야는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그는 인간의 관계와 소통을 건조하지만 차갑지 않게 그려내고, 부재(不在)와 죽음으로 삶을 위무(慰撫)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의 영화들은 관객을 와락 안아주기보다는 그들의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는 편에 가깝다.

“아무래도 영화에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되다 보면 감정적으로 그려내기가 쉽습니다. 그럼 보는 사람 입장에서 감정 과잉을 불러일으키게 되죠. 그래서 슬픈 감정에서 출발한 영화일수록 반대로 웃을 수 있는 요소를 많이 넣는다거나 냉정하게 묘사를 하려고 항상 의식하고 있어요. 감독으로서 캐릭터에게 감정을 일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만든 캐릭터라 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을 하는 형태인 거죠.”

이 영화에도 고레에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머니가 그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강요했던 것은 료타처럼 도박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아버지 때문이었다. 료타가 아들을 데리고 복권을 샀다가 전처에게 타박을 듣는 것도 고레에다 감독이 겪었던 일이다. 그는 당시 “나는 복권이 당첨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떨렸는데, 어머니는 ‘당신이 도박하는데 아들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고 했다. 영화에서 복권을 두고 교코는 ‘도박’이라고 하지만, 료타는 ‘미래’라고 한다. 요시코는 이런 아들을 보면서 “왜 남자는 현재를 사랑할 수 없을까”라고 묻는다. 이 대사는 고레에다 감독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어머니가 한 말이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남자들은 어딘가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것 같지 않는 것 같아요. 이들은 현재를 견딜 수 없어서 과거에 묶여 있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꿈꾸죠. .”

그는 “예전에 에세이에 아버지가 빚을 진 이야기를 썼는데, 당시 누나가 나를 시부야 역에 있는 다방으로 불렀다. 그 글을 내밀면서 ‘우리의 추억은 너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의 것이야’라고 무섭게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난 ‘아, 정말 좋은 말이다. 나중에 대사에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때 고레에다 감독의 누나가 그에게 했던 말은 결국 이번 영화에서 료타의 누나가 료타에게 하게 된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를 포함해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가족 드라마다. 그는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낸 아이가 야구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듯, 어렸을 때 어머니와 TV 홈드라마를 많이 본 나는 이런 가족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 〈걸어도 걸어도〉를 찍었을 때 어머니 역을 맡은 기키 기린이 나에게 ‘사람에 관한 영화를 계속 찍으려면 가족을 이뤄봐야 한다’고 했다. 확실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가 생긴 이후에 내 영화도 달라졌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동안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가족 드라마는 이번 작품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당분간은 이 이상의 작품을 만들기 힘들 것 같다. 나와 아베 히로시가 함께 60대가 됐을 때 조금 다른 관점에서 가족에 대해 다시 바라보고 싶다. 당분간은 이 이상의 작품을 만들기 힘들 것 같다. 조금 더 감독으로서 성장한 이후에 다시 한 번 가족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40대에 아베 히로시, 기키 기린과 〈걸어도 걸어도〉를 만들었듯, 50대가 되자 세 사람이 다시 뭉쳐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쉰넷, 아베가 쉰둘이다.

“50대에 들어서서 인생의 골(goal)이 보인다고 느끼기 시작한 때, ‘이 세계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때에 초조해집니다. 이때 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도 있죠. 저는 몸부림을 치는 사람이에요. 물론, 제 몸부림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죠.”


다음 작품은 사회문제 다룬 법정 영화


다음 작품은 가족 드라마 대신 사회문제를 다루는 법정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사회가 떠안고 있는 미해결의 문제들, 예컨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이야기로 사회성 짙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본 전후 역사에 대해서 다시 짚어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 감독으로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내게 큰 영향을 줬다. 어떤 형태가 됐든 내 작품에 그 사건은 반영될 것이고 작품에 변화를 이끌 수밖에 없다. 단순히 후쿠시마를 배경으로 하거나 사고를 소재로 쓴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지금의 일본은 관용을 잃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이 상황이 더 안 좋은 쪽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일본 사회 내면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회적인 약자들이 더욱 약한 사람들에게 창을 겨누고 있고 그것이 허용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은 우리의 책임이겠죠. 이런 현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와 그 원인이 된 사회적 요인을 파악해 가는 것, 영화감독으로서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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