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음악 연주하는 리코더 연주자 염은초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소리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학창 시절 모두가 불어봤지만 아무도 완성하지 못한 악기, 바로 리코더다.
탬버린이나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처럼 우리 곁에 찾아왔다가 어느 새 희미한 유년의 그림자로 남은 리코더.
사실 리코더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리코더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연주에 도전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는 리코더 연주자 염은초를 만났다.
8월 13일 염은초는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콘서트를 연다. ‘염은초의 스쿨 클래식’, 교과서에 있는 명곡을 리코더로 불어보는 시간이다. 염은초 역시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처음 리코더를 만났다.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리코더에 입문했지만 지금도 리코더 곁에 남은 건 그뿐이다. 그의 발을 붙잡은 이유는 하나의 강렬한 장면 때문이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 리코더를 가르쳐 주셨는데 너무 예쁘셨어요. 흰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에 나무로 만든 리코더를 부시는 모습이 꼭 천사 같았어요.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라면 선명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로요.”

지금은 대중악기가 되었지만 실제로 리코더는 르네상스와 바로크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호각 플루트다. 현재 ‘플루트’라 불리는 금관 플루트는 당시 가로 플루트, 리코더는 세로 플루트라 불렸다. 가로 플루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세로 플루트의 입지가 좁아졌지만 1919년부터 다시 대중적인 악기가 됐다.

“중학교에 올라갔는데 리코더를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리코더 연주자가 되고 싶었는데, 리코더만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정이 없더라고요. 입학한 지 20일 만에 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홈스쿨링이 시작됐다. 필수로 배워야 할 교과목은 개인 교습을 받았다. 그 외의 시간은 리코더를 불면서 지냈다. 염은초의 집은 경기도 용인이다. 산과 들로 둘러싸여 있고 층간 소음 걱정이 없어 언제든 악기를 불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들의 소리가 삼중주처럼 들렸다.


실패해도 괜찮아

염은초와 동행하는 리코더들. 작을수록 높은 소리가 난다.
“당시 가장 좋은 선생님은 부모님이셨어요. 아버지가 밤에 퇴근해서 들어오시면 연주를 들려드렸어요. 아버지는 나른하게 앉아서 제 연주를 들으시다가 어떤 부분이 좋다, 어떤 부분이 아쉽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연습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어떤 전문가가 해주는 이야기보다 더 와 닿았거든요.”

염은초는 10살 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예비학교에 들어갔다. 조진희, 박아라미 교수에게 사사했다. 14살에는 뉴질랜드 켄터베리 대학 예비학교에 입학해 리코더 예비학교 과정을 수료했다. 16살이 되던 2008년에는 스위스 취리히 음대에 입학해 19세에 학사를 졸업했다. 2012년에는 독일 니더작센 국제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하기도 했고, 2014년에는 런던 칼 젠킨스 클래시컬 뮤직 어워드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처음에 뉴질랜드로 떠날 때는 떨렸어요.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해주셨어요. ‘실패해도 괜찮다’고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이미 의미 있는 일이고.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제자들에게 리코더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요.”

최연소 타이틀과 화려한 콩쿠르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염은초의 저력은 사실 ‘실패해도 괜찮음’에 있었다. 어떤 콩쿠르는 떨어질 게 뻔했지만 도전했다. 그 도전의 여정 자체가 의미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록이 남지 않더라도, 그에게는 그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다.

“슬럼프가 온 적이 있었어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소리가 더 맑고 고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그 소리를 못 찾겠는 거예요. 연습할수록 소리는 더 탁해지고, 둔해지니 답답할 노릇이었죠. 그때 제가 선택한 건 정면승부였어요. 그때 악기를 내려놓았다면 다시 불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그냥 묵묵히 불었어요. 제가 원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요. 그러다보니 어느 날 그 소리가 다시 돌아왔어요. 전보다 더 깊어졌죠. 맑은 데다 깊어지기까지 한 거예요.”

염은초는 연습벌레다. 본인이 완벽하다고 느끼기 전까진 절대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다른 누구가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이다. 연습 시간을 확보하느라 많은 친구를 사귀지도 못 했고, 연애를 하기도 어려웠지만 그 무엇보다 리코더와 깊은 우정을, 그리고 깊은 사랑을 나눴다.

“제가 가진 리코더가 수십 가지인데요, 제가 애정을 쏟은 악기랑 그러지 않은 악기가 티가 나요. 똑같이 관리를 해도, 제가 마음을 준 악기는 점점 더 좋은 소리가 나요. 보통 리코더가 정말 좋은 악기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주기가 7년이에요. 7년이 지나도 계속 좋은 소리가 나면 잘 길들여진 거죠. 그건 ‘비싸냐, 안 비싸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리코더 중 하나가 처음 리코더를 시작할 때 산 악기예요. 장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에요. 그런데 제가 너무 아끼다보니, 지금은 어떤 장인이 만든 악기보다 더 고운 소리가 나요.”

리코더는 악기의 길이와 소리의 높이에 따라 베이스, 테너, 알토, 데스칸트, 소프라니노로 나뉜다. 작을수록 더 높은 소리를 낸다. 염은초는 공연의 성격에 따라 다른 리코더를 분다. 한 번의 공연으로 직관적으로 리코더의 마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리코더를 분다. 휴식과 쉼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연에서는 알토 리코더를 분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달래는 시간에는 알토를 분다.


문화 소외지역 찾아 공연


리코더 소리는 새소리를 닮았다. 그리고 그 리코더를 연주하는 염은초는 한 마리의 새 같다.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손가락은 춤을 추듯 악기 위를 노닌다. 듣는 이들을 미소짓게 만드는 소리다. 얼마 전에는 금호아시아나재단과 함께 ‘찾아가는 음악회’를 다녀왔다. 도서 산간지역에 살며 음악연주나 문화공연에 소외된 이들을 연주자가 직접 찾아가는 공연이다. 6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경상남도 사천여자중학교와 대구의 동신초등학교를 다녀왔다.

“그 어떤 좋은 뮤직홀에서 했던 공연보다 더 감동적인 공연이었어요. 아이들의 반응이 ‘진짜’였거든요. 어떤 공연보다 더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어요. 제 연주를 들으면서 그렇게 ‘떼창’을 불렀던 경험도 처음이었고요. 힘을 주러 내려갔다가 더 힘을 얻어서 돌아왔어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그런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것은 염은초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터닝 메카드〉 주제곡과 〈태양의 후예〉 OST를 연습해 갔다. 클래식만 연주하던 그에게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막상 아이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니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은초롱’이었다.

태어난 아이의 눈이 너무 초롱초롱해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뒷글자를 빼고 ‘은초’가 되었지만, 왜 그런 이름을 지어주셨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린 염은초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보았던 리코더 부는 천사를, 어느 초등학교 교실의 아이들도 만난 것 같다.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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