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한강 《채식주의자》 인기 주도 김승복 쿠온출판사 대표

일본에 한국문학 알리는 한류 전도사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일본 출판계에서 순수문학의 경우 1만 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로 본다. 얼마 전 맨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 일본어판이 4쇄를 찍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1만 부 돌파가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다. 《채식주의자》 일본어판은 지난 2011년 쿠온출판사에서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의 첫 책으로 나왔다. 맨부커상 심사위원보다 먼저 《채식주의자》를 알아본 사람은 김승복(48) 쿠온출판사 대표. 올가을에는 대하소설 《토지》 일본어판 1, 2권이 나올 예정이다.

사진제공 :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는 전라남도 영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진학을 위해 선택한 서울은 새로운 세계, 재미있는 곳이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시를 배웠다. 2년 동안 치열하게 읽고 썼다. 시가 읽히는 순간의 감동을 맛봤다. 넓고 깊은 시의 세계에서 유영하다 내린 결론은 “쓰는 사람이 아닌, 읽는 사람으로 남겠다”였다.

예술대학 특성상 해외 유학을 가는 선배들이 많았다. 유학을 떠났다 돌아온 선배들의 경험담이 호기심에 불을 댕겼다. 가장 끌린 곳은 영국이었다.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에게 영국으로 유학 가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는 거예요. 이유를 물어보니 너무 멀어서래요. 그럼 가까우면 되잖아? 그래서 일본에 오게 됐어요.”

니혼대 예술학부 문예과에서 평론을 전공했다.

“평론은 남이 쓴 걸 읽고 쓰는 거잖아요. 창작하지 않아도 되죠. 지금도 쓴다는 것은 금기 같아요. 내가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인터넷 비즈니스를 공부하는 교육기관에 다녔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얼리어답터는 아닌데 유행에 민감해요. 새로운 걸 보면 궁금해서 못 참아요. 나만 모르게 세상이 바뀌는데 궁금하잖아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것 같아요.”

비싼 학비를 내고 부유층이 사는 롯폰기까지 배우러 다닌 보람이 있었다. 졸업 즈음 인터넷 열풍이 거세졌고 덕분에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광고회사에 정직원으로 들어가게 됐다.


두 번의 금융위기로 바뀐 삶

최근 4쇄를 찍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일본어판. 아트디렉터 요리후지 분페이의 세련된 장정 디자인이 화제를 모았다.
원래 대학을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언제든 돌아오라던 부모님이 “오지 마라. 와봤자 취직도 못 한다”며 극구 만류했다. 결국 귀국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하던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인터넷 광고를 주로 제작하던 회사에서 한국 섹션을 맡았다. 한국은 IT강국 이미지가 강했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공부한 사람, IT강국에서 온 한국인.

“이 일의 적임자는 승복씨뿐이에요.”

정직원이 되고 2년 동안 즐겁게 일했다. 기획부터 영업까지 일인다역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회사에서 한국 섹션을 접게 되자 거래처를 돌며 인사를 다녔다.

“승복씨, 우리가 이번에 일본 정부에서 큰 프로젝트를 따 왔는데 그만두면 어떡해요? 그러지 말고 승복씨가 맡아서 한번 해봐요.”

독립하기도 전에 일거리가 들어왔다. 입사 2년 만에 디자이너 한 명과 함께 일하던 자리에서 사내 독립했다.

“외환위기로 일본에 남게 됐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출판사를 차리게 된 계기가 됐죠.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홈페이지에 뭔가를 한다는 분위기가 사라졌어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이 많았으니까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책 만들고 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직원들에게 ‘나는 출판사를 할 거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남을 사람은 남아라’고 했어요. 딱 한 명 남았어요.”


2007년, ‘좋은 것은 오래 간다’는 의미를 갖고 쿠온(CUON)출판사를 차렸다. 처음부터 책을 내는 건 쉽지 않았다. 관련 경험도 전무했다.

“니혼대 동창 중에 출판계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의 소설가와 시인을 추천했어요. 이렇게 좋은 작가, 작품이 많으니 한번 내봐라. 우리가 중개해주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출판된 경우가 없었어요. 왜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안 내냐고 따지듯 물었더니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좋으면 네가 해라. 그걸 몰랐어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2011년, 출판사를 차리고 4년 만에 쿠온출판사의 브랜드가 될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가 나왔다. 당초 계획은 24권. 첫 책이 바로 맨부커상 수상작인 한강의 《채식주의자》다. 유명 아트디렉터 요리후지 분페이가 장정 디자인을 맡았다. 이 책은 ‘디자이너가 뽑은 올해의 책’에도 선정된 바 있다.

“《채식주의자》 표지 디자인이 양파였는데 굉장히 임팩트가 있었어요. 내용도 훌륭했지만 장정의 단정함, 세련됨, 간결함이 파격적이었어요. 장정이 보여주는 세계관이 한국문학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는 서평이 있을 정도였죠. 일본 사회에서 출판사로서 첫 목소리를 내는 거니까 최고의 책, 최선의 책을 만들고자 했어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필두로, 김연수, 김중혁, 박민규, 박성원, 은희경, 정세랑 등의 작품과 신경림의 시가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로 소개됐다.

“시리즈를 기획할 때 한국문학이라는 정체성은 빼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문학이어서가 아닌 보편적 문학으로 독자의 손에 들리길 바랐어요.”

노마 히데키 메이지가쿠인 대학 객원교수와 함께 엮은 《한국의 지(知)를 읽다》는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부문 등에서 두각을 나타낸 책에 수여하는 파피루스상을 받았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원로 시인 다니카와 타로와 신경림의 만남을 주선하고 이들의 대화를 기록한 대담집도 펴냈다. 또 한・일 두 나라의 젊은 작가와 아티스트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하는 ‘한・일 차세대 문화인 대담’을 기획했다. 대담 내용은 내년 초에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9월 《토지》 일본어판 1,2권 출간

쿠온출판사가 운영하는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 ‘책거리 CHEKCCORI’는 한국과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사랑방이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내고,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지난 10년 동안 쿠온출판사가 해온 일이다. 일 년에 한 번씩 공들여 개최하는 ‘K-BOOK진흥회’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의 책 50권》이라는 가이드북을 만들어 일본 출판 관계자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만든다. 2015년 여름에는 고서점가로 유명한 간다 진보초에 한국 서적 전문 북카페 ‘책거리 CHEKCCORI’를 냈다. 한국의 문학과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북카페 ‘책거리’는 한국 관련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일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과 한국어,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는 작은 광장이다. 수시로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 등 ‘좋아하는 사람(것)’과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이런 모임과 행사가 1년 사이에 100여 차례나 열렸다.

“‘책거리’에서는 한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은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요. 독서모임 같은 거죠. 제가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해요. 요즘엔 ‘《열하일기》를 읽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저자인 고미숙 선생님께 책거리할 때 도쿄에 한번 놀러오시라 했더니 진짜 오신대요. 책 덕분에 재미있는 인연이 많이 생겨요.”

일본 사회에서 출판업을 시작한 지 10년. 쿠온출판사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를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이다. 번역 작업을 마치고 출간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는 한국이라는 국적을 뺀 문학이었죠. 소설적 완성도가 높은, 쿠온을 대표할 만한 브랜드로가 제 역할을 해줬으니 이번에는 가장 한국적이고 강렬한 걸 해보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품, 한국적인 것, 바로 《토지》죠.”

《토지》 일본어판은 일 년에 두 권씩 10년에 걸쳐 나올 예정이다. 올가을 1, 2권이 나오면 독서단과 함께 박경리문학관이 있는 통영으로 ‘토지 투어’도 다녀올 예정이다. 《채식주의자》의 선전에 힘입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출간된다.

“나는 노크하는 사람이에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문을 호기심으로 두드려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똑똑 노크하죠. 한・일 양국을 오가며 많은 사람에게 문을 두드렸고, 그러자 문이 열렸어요. 얼마 전에는 일본 출판사로부터 책을 쓰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일본 독자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특이할 것 같다고요. 나밖에 쓸 수 없는 책이 되겠죠. 책거리 직원들과 함께 《오늘의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그 사람의 책과 사회, 문화를 보여주는 책도 쓸 예정이에요.”

쿠온출판사 대표, 한・일 문화교류 기획자, 북카페 사장, 독서모임 리더, 작가…. 김 대표의 일인다역은 계속된다.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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