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문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 정지연 대표

처음 작품 파는 신진 작가와 초보 컬렉터 사이 다리 역할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서울시 종로구 이화장 1나길 3. 이화마을과 낙산공원 입구, 이화장 바로 옆에 있는 갤러리카페 ‘미나리하우스’로 들어서니 편안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언덕배기에 자리 잡아 멀리 인왕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 정감 있는 작은 정원에 마음이 시원해질 뿐 아니라 벽에 걸린 작품들이 감성을 자극한다.
이곳에서는 100만원 이하 심지어 10만원 안팎에도 살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아직 무명인 신진 작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들어서니 하얀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화장실 맞은편 방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는 김종미 작가의 그림이다.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맞은편 작가방의 문을 두드려보세요’라는 안내 글도 적혀 있다. 맥주를 마시며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아티스트 위드 비어’ 같은 행사도 종종 열린다.

이 공간을 만든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 정지연 대표를 만났다. 2011년 에이컴퍼니를 설립한 그는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로 젊은 작가와 일반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왔다. 컬렉터 층이 얕고 화랑과 컬렉터의 관심이 일부 유명 작가에게만 쏠린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젊은 작가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 에이컴퍼니가 하는 일이 더욱 돋보이고 의미 있게 보이는 이유다. 정지연 대표의 대학 시절 전공은 미술과 무관하다.


예술을 사랑한 공학도


“부모님 조언에 따라 선택한 컴퓨터공학은 전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전공 공부보다는 미술, 영화, 연극 관련 수업이 좋았고, 대학 시절 내내 전시나 공연을 부지런히 보러 다녔죠. 충남 대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오니 문화적인 면에서 신세계가 열린 듯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증권회사 홍보팀의 방송담당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루 세 번 생방송을 도맡아 대본도 쓰고 진행도 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그만뒀다. 남들은 번듯한 대기업을 왜 나오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대기업은 내 기질과 맞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진로를 모색하다 서른 살이던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야후코리아에서 증권방송을 진행했다.

“주식시장 전반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지만, 미술시장 정보도 간간이 소개했습니다. 전시를 보러 간 적은 많았지만, 몇 억씩 주고 작품을 산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미술시장이란 세계가 흥미로웠습니다.”

야후코리아가 증권방송을 폐지하자 그는 미술 관련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모색했다.

“처음에는 미술품 경매사로 일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고향인 대천의 머드화장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하기도 했죠. 그러다 한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미술시장 조사를 맡았습니다. 미술시장이 신사업으로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하는 게 제 역할이었죠.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지속가능한 사업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정말 제 사업처럼 뛰어다녔습니다.”

미나리하우스 내부.
그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작가들을 만났다. 작가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고, 그 블로그를 보고 연락해오는 컬렉터와 큐레이터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작가들을 자주 만나면서 그는 작가가 아니라 컬렉터가 주인공이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자신과 고독한 전쟁을 벌이는 작가는 어딘지 주눅 들고 위축되어 보였다.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주고 싶어 2008년 네이버 카페에 ‘아티스트팬클럽’을 개설했다.

“스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대중이 사랑해주기 때문 아닌가요? 연예인만 스타가 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아티스트팬클럽’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화랑도 컬렉터도 돌아보지 않는 신진 작가들에게 특히 주목했지요. 그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쌓아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달 한 작가씩 집중 조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들은 왜 작가가 되었는지, 어디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부터 작업실 월세, 물감 가격 등 현실적인 문제까지 파헤쳤죠.”

2010년에는 아티스트팬클럽을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고, 10명의 작가들로 ‘반짝쇼’를 벌였다.

“공모를 통해 10명의 작가를 정성껏 선정하고 갤러리를 하루만 빌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단체전을 열었습니다. 티켓을 100명에게 사전 판매했고, 떡과 맥주, 인디밴드 연주까지 어우러진 파티 분위기의 전시회였죠. 작가들은 돌아가면서 3분씩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고, 자원봉사자들이 일대일로 작가의 매니저가 되어 작가와 관람객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100명을 앞에 두고 내 작품을 설명한 일은 난생 처음’이라며 작가들은 감격했습니다.”


무명의 작가와 일반인을 연결하는 보람


2011년 에이컴퍼니를 설립한 그는 ‘무명의 작가와 일반 대중을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로 각종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고, 스타 사회적기업가상을 수상하고, 카이스트 창업투자지주에서 투자 유치를 하면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2013년 처음 문을 연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를 2015년 봄 좀 더 큰 장소로 옮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2012년부터는 매년 한 차례 ‘브리즈 아트페어’를 열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발한 신진 작가 50~60명의 작품을 3~4일간 전시하면서 500만원 이하에 판매하는 아트페어입니다.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두고 월급쟁이인 일반인도 구매할 수 있도록 10개월 무이자로 할부판매도 합니다. 이 행사 역시 맥주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파티 같은 분위기에, 작가들이 내내 그곳을 지키며 관람객과 만납니다. 이제까지 네 차례 아트페어를 열었고, 매번 수천 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300점 정도의 전시작품 중 30% 정도가 판매되었습니다. 미술 전문가들도 많이 찾아 신진 작가들이 미술계에 알려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죠. 올해도 9월에 개최할 예정입니다.”

첫 월급으로 나를 위한 작품을 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미술품은 태어나서 처음 사보는 거예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관람객에게 작가가 ‘저도 처음 팔아보는 거예요’라고 말해 모두가 박수 치며 축하하는 장면이 자주 벌어진다고 한다.

브리즈 아트페어는 신진 작가 작품을 전시하면서 판매도 하는 행사다.
“엄마에게 ‘내가 맡겨놓은 세뱃돈이 얼마죠?’라고 묻더니 엄마가 30만원이라고 하니 ‘그럼 30만원으로 작품을 사도 되죠?’라는 초등학생도 있었어요. 그다음 꼼꼼히 작품을 보고 다니더니 정말 좋은 작품을 고르더라고요. 그냥 작품을 볼 때와 집에 걸어둘 작품을 사기 위해 볼 때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두 살짜리 딸의 결혼 선물을 미리 사둔다며 작품을 구매하신 분도 있었어요. 딸이 결혼할 때까지 그 작가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겠다고요. 저희들로 인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게 무엇보다 큰 보람이죠.”

아트페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복원이나 저작권법 등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를 해주고, 작가끼리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미나리하우스에서는 멤버십 작가들의 작품을 정리해놓은 포트폴리오도 볼 수 있다.

“공모를 통해 멤버십 작가를 선정하고, 그 작가의 작품과 작품 가격을 명시한 포트폴리오를 만듭니다. 미술시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우선 가격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결혼이나 이사를 앞두고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아 포트폴리오를 넘겨보며 작품을 고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도 확신이 들지 않으면 3개월 렌털 후 구매 판단을 하시라고 권하죠.”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30대 초반까지 방황했다는 정지연 대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그의 첫인상은 강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몸에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는 스스로 내향적이라고 말했다. 정말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 그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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