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교수

좋은 한국 작가를 찾아 세계시장에 알리고 싶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작가를 찾는 데 최근 세계 미술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시작된 한국의 추상회화인 단색화가 이제 와서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 미술계, 한국의 단색화에 주목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가 운영하는 미술전문 대학원인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Sotheby's institute of art) 김기범 교수가 지난 5월 말 우리나라 경매회사 K옥션 초청으로 방한, 세계 미술시장의 동향에 관해 강의했다. 그는 “고흐나 피카소, 모딜리아니 같은 작가의 작품이 기록을 경신하며 최고가로 팔려 화제가 되긴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영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시대미술”이라고 설명했다. 요즘은 젊은 작가들이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급부상하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30대 초반의 미국 작가 제이컵 카세이(Jacob Kassay)의 작품은 원래 화랑에서 800여만원 정도에 거래되었는데, 1년 만에 10배가 넘게 치솟더니 2억9000만원에 팔리기까지 했죠. 그러다 가격이 재조정돼 지금은 5000만원 정도에 매매됩니다.”

하지만 갑자기 작품 가격이 뛰어올랐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고 그는 지적한다. 오랫동안 이름을 남길 작가가 되려면 미술관의 역할도 중요한데, 가격이 너무 쉽게 올라버리면 미술관이 구매하기 힘들어지고 ‘시장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있다는 설명이다. 거품이 빠지면서 시장마저 버리면 작가가 기댈 기반은 없어진다. 작가를 제대로 키우고 싶은 화랑은 작품 가격이 순식간에 급등하지 않도록 조정하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편 일생 무명으로 살면서 끈질기게 작업하던 작가가 갑자기 주목받기도 한다.

“쿠바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1915년생 여성 작가 카르멘 에레라(Carmen Herrera)는 90세인 2004년에야 처음 작품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세계가 재조명되면서 지금은 작품당 2억5000만~3억5000만원에 판매되죠. 이렇게 묻혀 있던 작가들이 발굴되는 일도 많습니다. 요즘은 제3세계, 여성 작가 등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영역에서 저평가된 작가들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한국의 단색화도 세계 미술시장에서 존재가 미미하다 급부상한 사례입니다.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세계 경매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성을 지닌 한국적인 감성으로 주목받고 있죠. 한국계인 조앤 기(Joan Kee) 미시간대 미술사 교수가 단색화에 관한 책을 내면서 학문적으로 뒷받침했고, 뉴욕현대미술관(MOMA), 파리퐁피두센터 등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관심을 나타내면서 좋은 길을 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단색화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 다른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생 꿋꿋이 전위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온 1932년생 이승택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학 전공 변호사에서 미술 전문가로

김기범 교수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만든 화랑 ‘스키범 맥아더’
미술 전문가로 활동하는 김기범 교수의 이력은 다채롭다. 그는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계 투자은행에서 인수합병 담당자로 일했다. 그는 그곳에서 몇 년 일하면서 ‘금융계에서 일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인사동 화랑과 고미술품 가게들을 다니고 대학에서 미술사 수업에 끌렸던 그는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그는 자유기고가가 되어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에 문화 트렌드와 패션 관련 원고를 썼다.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 글을 쓰게 되었지만, 그 일로는 생활을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다.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2008년 뉴욕대 로스쿨로 진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예술법 관련 강좌를 들으면서 어릴 적부터 관심을 가졌던 문화와 제 전공인 경제, 법을 접목할 길을 찾은 듯했습니다. 미술관과 화랑이 즐비한 뉴욕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교육장이었죠.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안목을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2011년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의 교수가 된 그는 미술 관련 법, 미술시장의 역사와 운영 방법 등을 가르치면서 미술뿐 아니라 경제와 법 전문 지식을 활용하고 있다. 미술과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 경제와 법에 대한 전문 지식이 어우러져 그만의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2014년 그는 ‘NEWD Art Show’라는 아트페어를 공동 설립했다.

“3년간 소더비에서 가르치면서 미술시장에 대해 수없이 토론했고 동시대미술의 급성장을 지켜보면서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느낄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뉴욕의 부시윅에서도 그런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죠. 부시윅으로 미술평론가와 컬렉터들을 데려와 그곳의 예술정신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소더비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케이트와 의논했습니다.”

그는 작가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화랑이나 비영리 화랑 등 개성이 뚜렷한 화랑들을 묶어 2014년 처음 아트페어를 시작했고, 많은 관심을 얻었다.

“미국에는 작가들이 자기 집 거실이나 작업실 한쪽을 화랑으로 만들어 다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소규모 화랑이 많아요. 그런 곳 여덟 군데를 묶어 미술 전문가와 컬렉터들을 초청했죠. 이 아트페어를 통해 한 번도 작품을 팔아본 적 없는 작가들이 많이 소개됐고, 뉴욕타임스에 보도될 정도로 유명해진 작가들도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시장에 소개하는 일이 무엇보다 즐겁고 보람 있어요.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아트페어는 유명해졌지만 규모를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참가 화랑 수를 10여 군데로 계속 제한하면서 신진 작가 발굴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세계 미술품 투자 시장 전망은 ‘파란불’

아트페어 ‘NEWD Art Show’
‘NEWD Art Show’는 그가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아트페어를 통해 작가, 화랑, 컬렉터, 평론가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전화 몇 통만 하면 미술시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훤히 꿰뚫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죠.”

소더비의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가르치게 되면서 올해 초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한 그는 자신이 사는 맥아더공원 근처에 ‘스키범 맥아더’란 프로젝트 전시 공간을 만들었고,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 《ArtForum》과 《LA Weekly》에 보도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만 두 달씩 길게 전시하면서 집중 조명하는 게 특징입니다. 작품을 어떻게 전시하고 맥락 짓고 판매할지 작가와 계속 소통하면서 답을 찾자는 게 주된 목적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와 컬렉터 사이 가교 역할을 하고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는 그는 방한할 때마다 한국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한다.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시장에 소개하고 싶어서다.

“세계적으로 부유층의 미술품 투자는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함께 판화, 사진이나 소품 등 비교적 낮은 가격의 미술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미술시장도 성장하고 있지요. 2015년 온라인시장은 1년 전에 비해 7% 성장했습니다. 작가에게도 컬렉터에게도 기회가 많아지는 셈이지요. 이와 함께 화랑과 경매회사, 미술관, 큐레이터, 비평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젊은 작가들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소더비 교수, 변호사, 대안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미술 전문가, 세계적인 문화잡지 《뉴요커》 등에 글을 쓰는 작가로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아직은 내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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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밤섬   ( 2017-08-09 )    수정   삭제 찬성 : 28 반대 : 20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사람이
 세계 미술계를 움직일수 있음이
 보여서 숨은 인재 많이
 찾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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