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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 만드는 법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1.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듬뿍 두른다.
2. 밥솥의 밥을 프라이팬으로 옮겨 담는다.
3. 냉장고를 연다.
4. 햄, 당근, 양파, 참치 등을 꺼내 넣는다.
5. 다시 냉장고를 열어 더 넣을 것이 있나 확인한다.
6. 다시마를 넣는다. 다시다를 넣는다. 미원을 넣는다.
7. 미역을 넣는다. 땅콩을 넣는다.
8. 그냥 냉장고를 넣는다.

그렇게 완성된 볶음밥을 식탁에 놓고, 중3 소년 다섯 명이 둘러앉는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먹기로 한다. 혹은 집주인 아들내미가 먹는 걸로 한다. 퇴근한 엄마한테 맞아 죽든 볶음밥을 먹고 죽든, 죽는 건 매한가지다. 결국 집주인 아들내미가 먹는 걸로 한다. 그는 조금 더 아프지 않은 방법을 택한 것뿐이다.

그날 밤, 주인집 아들내미는 배가 아프다. 지병으로 앓던 과민성 대장염과는 다른 유의 통증이다. 눈앞에 돌아가신 조상님이 아른거린다. 과민성 대장염과는 다른 신음소리를 내지만, 그는 남자이기 때문에 참는다. 참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다. 의사는 그에게 급성 충수염, 즉 맹장 수술을 권한다. 아까 먹은 괴볶음밥 때문이겠느냐만은,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평소처럼 떡볶이나 처먹을 것이지, 볶음밥 생성을 주도한 곽말똥 그 새끼를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그리고 그는 이가 갈리는 와중에

‘오 그거 수술하면 방귀 뀌어야 밥 먹을 수 있는데.’

‘오 수술하면 내일 학교 안 감. 대박 사건.’

‘오 친구들이 병문안도 오겠다. 삐따기 13권 빌려오라고 해야지. 싱기방기.’

등의 생각을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니 간호사 누나가 이상한 주사를 놓는다. 잠깐 잠에 들었다 깨보니 수술이 끝나 있고, 그의 얼굴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다. 신기하다.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최대한 정우성처럼 마스크를 집어 던진다. 최대한 조인성처럼 숨을 고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고, 그는 “엄마, 나 방귀 뀌어야 밥 먹는 거 맞지?”라고 묻는다. 엄마는 속으로 ‘이 새끼 방귀 뀌어도 밥 안 줌’이라고 생각한다.

입원실로 이동한다. 생각보다 따분하다. 다른 환자도 있어서 떠들지도 못한다. 그날 밤, 그는 괜히 창밖을 보며 우수에 젖는다. 다음 날, 친구들이 하교 후 병문안을 온다. 곽말똥도 온다. 그의 손에는 삐따기 12권이 들려 있고, 12권은 봤다고 하니, 자기가 보려고 빌려 온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다.

“내가 XX 새벽에 배가 아픈거야. 아 XX 그래도 남잔데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아 근데 쪽팔리게 엄마가 119를 부른 거야. 한 5분 있었나? 119 아저씨들이 우리 집 문을 걷어차면서 들어오는데, 나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잖아. 나를 들것에 싣더니 앰뷸런스에 태웠어. XX 삐뽀삐뽀 거리는데, 야 차들이 막 다 비켜주고 모세의 기적인 줄. XX, 근데 내가 병원에 딱 왔는데 의사가 나보고 XX 위험한 수술이라고! 근데 난 괜찮다고 했어! XX 어차피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XX 거 의사 양반 한번 해보쇼! 쫄지 말고! 라고 했더니 의사가 XX 울어. 그러더니 수술하자는거야. 수술방에 들어가서 누워 있는데 의사가 울면서 ‘메스!’ 하더라? 마취도 안 했어. 그냥 생살 짼 거야! 참았지! XX! (아랫배를 보여주며) 이거 보이냐? 아 XX 진짜 XX 남자 아니냐. 너네도 남잔데 맹장 떼야지? 곽말똥 나 퇴원하면 우리 집 와라. 볶음밥 해줄게 XXX야.”

곽말똥은 티를 내지 않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삐따기 12권은 감출 수 없다. 그 떨림에선 두려움과 존경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맹장 같은 거 달고 다니는 애들이랑은 상종하지 않을 테니 돌아가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나름의 열패감을 안고 병원을 나선다. 그는 그 다음 날 방귀를 뀐다. 그리고 밥을 먹는다. 볶음밥은 아직 무리다. 수술 후 상처는 꽤나 멋지다. 마치 칼에 찔린 것 같기도 해서 위험에 빠진 여성을 구하다 칼에 맞아 생긴 상처라고 거짓말을 치기도 딱 좋다. 학원에 가서 몇 번 거짓말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몇 명이 믿는다.

첫 입원은 그렇게 끝이 났고,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니, 맹장염에 걸린 그날 하루의 기억이 선명하다. 괴물 같았던 거친 볶음밥과 그걸 보고 있는 친구들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하루. 다행히 난 맹장 없이도 건강하게 살고 있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아직도 건강하게 맹장을 달고 살아간다.

그리고 웬만하면, 모르는 요리는 시도하지 말든가, 책을 보고 따라 하길 권한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 〈순정〉 〈오피스〉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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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웃겨   ( 2017-03-17 ) 찬성 : 1 반대 : 0
넘 웃겨요 ㅋㅋㅋㅋㅋㅋ 보면서 광대가 안 내려와서 혼 났네요ㅠㅠ
   우편물   ( 2016-08-31 ) 찬성 : 7 반대 : 5
마치 제 주위에 있는 친구가 겪은 일을 말로 전해 듣는 기분이었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환상   ( 2016-05-14 ) 찬성 : 5 반대 : 8
한 달 전에 파수꾼을 보고 며칠 전에 동주를 봤습니다.(물론 전 굳다운로더) 생각해보니 배우님이 출연했던 작품들을 꽤 많이 봤었더라구요. 진짜 연기 잘하시는 거 같아요. 팬이 돼 버려서 여기 글들도 며칠 동안 다 읽었어요. 파수꾼을 보고 베키의 일기를 봤는데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귀엽고 필력 있는 글을 쓰지?? 했었는데 여기 언희 다 보고 나니깐 배우님이 더 멋있고 더 좋아졌어요ㅠㅠ 앞으로 나올 언희도 기대할게요!! 그리고 무서운 이야기3도 꼭 보러갈게요ㅎㅎ
   고니   ( 2016-05-11 ) 찬성 : 2 반대 : 5
늘 재밌게 읽고 있어요! 덕분에 웃으면서 하루 시작해요
   찐찌뇽   ( 2016-04-30 ) 찬성 : 12 반대 : 5
ㅋㅋㅋㅋㅋㅋ 너무재밌어요 !!
      ( 2016-04-26 ) 찬성 : 9 반대 : 5
ㅋㅋㅋㅋㅋㅋㅋ애고 재밌게 보고갑니당 감사드려요:-)♡
   김숑키   ( 2016-04-26 ) 찬성 : 4 반대 : 6
글 정말 재밌게 잘쓰십니다!!
   ㅅㅇ   ( 2016-04-26 ) 찬성 : 4 반대 : 5
저는 요리 진짜 못하고 그래서 주는대로 먹는데 저 비빔밥은 무슨생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선을 넘은 음식ㅋㅋㅋㅋ
   ㅇㅇ   ( 2016-04-25 ) 찬성 : 7 반대 : 3
진짜 글 잘 쓴다
   Jun   ( 2016-04-25 ) 찬성 : 5 반대 : 5
아싸 2등 ! ㅋㅋㅋ
 추억의 이름 삐따기가 있는걸 보고 아 역시 같은 나이(....)를 느꼈어요 ㅋㅋ
 배우님 글보고 오늘 하루의 피곤이 다 가시네요! ^_^ 늘 건강하세요!
   다잘될겁니다   ( 2016-04-24 ) 찬성 : 21 반대 : 12
기다렸어요! 앗싸 첫 댓글 헤헿
 박배우님 항상 건강하세여! 영화 개봉하는것도 차례대로 보러갈거고 안투라지도 기대하고 있습니당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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