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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풍경’이 말하는 것들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안주철 〈밥 먹는 풍경〉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 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

〈밥 먹는 풍경〉(안주철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창비, 2015)


이 시는 모종의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간들, 즉 ‘때’에 관한 시다. ‘때’는 시간이 분절되는 점들, 혹은 계기적 기점의 시간을 가리킨다. 이 ‘때’의 배경은 동네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구멍가게다. 이 구멍가게는 ‘엄마’와 ‘나’의 2인극이 펼쳐지는 무대다.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안의 별들이 은하수의 중심에서 2만7000억 광년 떨어져 있고, 이 은하수 전체가 지름이 1억 광년이 넘는 처녀자리 초은하단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 무대는 우주의 아득한 변방 끄트머리쯤에 위치해 있다.

삶의 물질적 실감이 주르륵 펼쳐지는 이 무대에 작동하는 힘은 가난이 만든 중력이다. 손님이 욕할 때,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에 흘러내릴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리지를 때”,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란 무엇인가. 가게는 밥을 버는 삶의 현장이고, 그곳에서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상대하는 순간들은 비천한 노동이 삶을 모욕하고 모독하는 때다.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며 사람들을 상대하는 노동의 비천함은 자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정체성을 망가뜨린다. 시인은 그 사례들을 길게 열거하면서, “이런 때”, 즉 가난의 모욕과 모독을 견디고 있을 때 “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라고 매조지한다.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이 비루한 노동을 견뎌낸 결과다. 아울러 이것은 공짜 밥은 없다는 엄혹한 진실의 외시(外示)다.

식구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다. 식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유대감을 더 두텁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모여 앉아 밥을 먹지 않으면 / 밥상은 한쪽으로 기울어 스르르 미끄러진다”(〈마루〉). 식구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가게는 끝내 지켜야만 하는 노동의 현장이다. 그걸 없애자는 생각은 올바른 게 아니다. 〈밥 먹는 풍경〉이 말하는 시적 전언은 밥벌이의 고단함에 대한 것이다.

그 고단함은 가난에서 비롯된다. 가난이란 이 세계에서 우리가 겪는 부조리 중에서 가장 흔하고 하찮은 부조리다. 가난은 버려지고, 허물어지고, 희박해지고, 사라지고, 말라붙은 삶이다. 돈을 많이 벌고, 집 한 채를 사고, 아프리카에 가서 모래를 만져보는 일들이 “다음 생에 할 일들”이라면, 돈이 없어 지지리 궁상을 떨며 겪어내야 하는 가난은 “이번 생”의 일에 속한다. 시인은 가난이라는 바다를 탐색하는 심해 잠수부와 같이 날마다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그 노동은, 날마다 가게 문을 열고 닫는 일은 몸으로 겪고 감정으로 지탱해야만 하는 나날의 노동이다. 이 노동에 의해 지탱되는 세계란 그 자체가 곧 가난이다. 가난이라는 세계와 그것을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주체는 한 덩어리로 엉킨다.

〈밥 먹는 풍경〉에서 ‘밥’은 한 끼의 식사만이 아니라 생명 부양에 필요한 모든 생물학적 필요의 표상이다. 사람이 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밥이 입으로 들어오려면 밥을 위한 벌이가 있어야 하고, 그 벌이를 위해 몸을 부려야 한다. 입으로 들어오는 단 한 숟가락의 밥에도 공짜는 없다. 그게 밥에 내재된 보편성이고, 예외가 없는 진실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밥을 먹지도 말라고 버젓이 말하는 종교 경전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자도 더운 밥이건 찬밥이건 먹어야 생명을 건사할 수 있다는 게 생물학적 엄연함이라면 일하지 않는 자의 입에도 마땅히 밥이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밥 먹는 풍경과 밥을 버는 풍경은 하나로 겹쳐진다. 그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시적 화자는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이놈의 가게를 팔아버리라고” 소리치지만, 아들의 저항에 엄마는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으로 대응한다. ‘나’는 이렇게 비루하게 사는 게 삶이 아니라고 외치지만 ‘엄마’는 ‘나’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잠자코 밥을 먹는 일로 그 대답을 대신한다. 입에 밥이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생명을 부양하는 행위이고 그보다 더 숭고한 것을 찾기란 어렵다. 그 삶의 숭고함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바로 ‘밥 먹는 풍경’이다. 밥을 어떻게 구하고 그 밥을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은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난은 아주 오래된 인간 조건 중의 하나다. 가난을 사회적 질병이라고 말한다면, 그 질병 때문에 꿈을 지우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가난은 사회적 가능성과 기회의 박탈이다. 차라리 가난은 그것들의 부재와 결핍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난으로 인해 비굴에 무릎을 끓고, 가난에 의해 모독당한 삶을 받아들인다. 가난은 언제나 힘이 세다. 가난은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앗아간다. 가난의 외양은 대체로 굴욕이거나 비참이다. 이 젊은 시인의 시에서 가난의 세목(細目)이나 가난의 외양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는 부모의 가난을 물려받고, 이미 충분히 가난한 살림에 적응한다. 그에게 가난은 늘 되풀이되는 생활의 척박함이다. 그것은 특별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다. 가난은 가난한 이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관례다. 하지만 〈밥 먹는 풍경〉은 가난에 관한 시가 아니라 삶의 올바름에 관한 시다. 어떻게 가난 속에서 삶의 올바름과 품격, 삶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젊은 시인은 우리에게 그것을 묻는다.


안주철(1975~ )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고, 2002년 창비시인 시인상을 받으며 등단한다. 시적 화자인 ‘나’를 둘러싼 것은 가난의 풍경이다. 가난이 “기울어지는 집 전체”(〈마루〉)라는 은유를 받을 때 그것은 한 점의 모호함도 없이 명료하다. 그 명료함은 가난의 실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밤새 폐지를 줍는 아버지와 그 흩어진 폐지를 묶고 거기에 물을 뿌리는 어머니(〈꽃〉), 백수가 될 때마다 “아내의 등골을 매일 한 숟갈씩 떠먹”(〈꿈을 지우다〉)고, 그보다 더 자주 우는 아내에게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다음 생에 할 일들〉)라고 말하는 ‘나’로 이루어진 가족이 그 가난의 풍경 속에 서 있다. ‘나’의 가족은 최저 수준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협력 노동을 한다. 그것은 양계장을 돌보는 일이거나 폐지를 줍는 일이거나 구멍가게를 꾸리는 일이다. 이 시집에서 가장 눈물 겨운 한 구절을 고르자면, “명료한 내가 / 생활 속에 한 방울 맺혀 있다”(〈희미하게 남아 있다〉)일 것이다. 이 구절에는 가난을 운명화하고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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