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펴낸 정여울 작가

삶을 개척하는 지혜를 배우는 공부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정여울 작가는 인문학자면서 문학평론가다. 독자와의 만남을 좋아해 학교, 기업 등에서 인문학 강연을 하고, 다채로운 주제를 문학, 철학 등과 접목해 누구나 읽기 쉬운 인문학 칼럼을 여러 매체에 연재하고 있다. 국악방송 라디오에서 책 프로그램 DJ로도 활동하는 그가 지난 4월 《공부할 권리》(민음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책에서 “현실의 문제를 깨닫고 미래의 삶을 개척하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적 석학이 쓴 명저부터 《안티고네》, 《일리아드》와 같은 고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를 통해 깨달은 것을 새로운 인생 공부법으로 제시한다.

사진제공 : 민음사
인생을 바꾸는 공부

공부라고 하면 흔히 외우고 쓰는 시험, 논문 등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정여울 작가는 공예, 인테리어 등 자신의 손재주를 활용해 만드는 DIY도 큰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DIY가 Do it yourself의 머리글자잖아요. 내가 스스로 찾아 흥미를 느끼며 할 수 있는 것, 이런 것을 통해 내 삶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고,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바로 공부라고 생각해요. 공부란 의미를 확장하고 싶었어요. 어떤 분야라도 좋아요. 나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 가장 나다운 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한데 이 모든 것은 공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서울대에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의아해해요. 공부가 지겹지 않으냐며 책 제목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공부할 의무가 아니라 왜 권리냐면서요(웃음).”

그에게 공부는 인문학과 글쓰기였다. 공부가 그저 문제 풀이의 기술이라고 느꼈던 학창 시절엔 그도 공부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인생 공부라고 느낀 건 심리학, 철학, 인문학 등 아무도 시키지 않은 것을 스스로 찾아 하면서부터다.

“문학, 철학, 역사, 인문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제 자신의 무지함을 느꼈지만 그것마저 좋았어요. 그동안 무엇을 모르며 아는 척하면서 살아왔는지도 깨달았고요(웃음). 그때 ‘진짜 배움’이 시작된 것 같았어요. 공부를 할수록 궁금한 게 많아져 몇 달, 몇 년 동안 공부할 거리가 생겨 좋았죠. 병적인 것 같지만 재밌었어요. 혼자 공부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제가 느낀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공부할 권리는 그의 가슴에서 우러나온 제목이었다. 공부가 권리라고 생각한 순간 삶이 달라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 말하는 걸 상당히 싫어했어요. 말을 걸어도 짧은 단답형으로 답했지요. 말하는 게 두려웠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강의나 인터뷰 등 말할 기회가 많아지더군요. 저도 제가 쓴 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겼고, 글쓰기 덕분에 말하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문자 중독은 행복한 중독

그는 책에서 마르크스, 윤동주 등 사회학자, 시인을 적절히 예로 들어 문제의식 혹은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신데렐라를 ‘잿더미에 파묻혀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진짜 운명을 되찾는 이야기’라고 재해석하기도 했다. 책을 보는 관점이 새롭고 재미있다.

“똑같은 책도 다르게 보는 관점이 제 힘인 것 같아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얘기할 때, 뉴스・드라마・영화 등을 볼 때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실생활에서 누구나 궁금할 만한 소재를 가져와 문학작품의 감수성에 접목하는 거죠.”

그는 책을 읽을 때 고전과 신간을 번갈아 보면서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찾아 아이디어를 얻는다. 예를 들면 《데미안》과 《호밀 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비슷한 주제의 책이나 영화를 교차해 읽는다.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으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읽다보면 또 궁금증이 생겨 다른 책을 찾게 돼 완독에 대한 갈증이 있지요(웃음). 떠오른 생각들은 수시로 메모를 해둬요. 모아둔 메모가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글의 결론이 되기도 해요. 또 뉴스나 드라마를 볼 때 그 인물의 감정을 제 감정에 비춰보기도 하고요.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라 (Put yourself in other person’s shoe)’는 외국 속담이 있는데 비록 내게 크거나 작더라도 그 신발을 신어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공감하려는 노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는 좋은 책을 만날 때 과거의 자신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진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 밀터 에릭슨이 저술한 《심리치유 수업》을 통해 그는 이 책을 10년 전에 읽었다면 그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해답을 갖고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줘요. 자신감이 근간이 되면 못할 게 없어요. 자신감은 오만함이 아니라 내 안의 힘을 믿는 거니까요. 저는 20대까지만 하더라도 과연 내가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나 여행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죠.”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유학이나 자유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막상 여행길에 오르니 생각보다 위험한 것도 무서운 것도 없었다. 그는 자유여행을 하며 평소 좋아하는 작가가 살았던 곳, 작품을 썼던 곳, 작품의 장소가 된 곳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됐다. 괴테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헤르만 헤세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에 영감을 준 장소 등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면서 수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받았다.

“여행을 통해 다른 것도 할 수 있고, 다른 삶도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여행이야말로 저를 바꾸게 한 인생의 큰 공부였죠.”


아름다운 우리말의 매력


그는 대중과 간절히 소통하는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글, 나만이 개척하고 싶은 주제의 글 사이에서 어떤 것을 쓸까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작가가 되는 과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으로 글을 쓰면 강박 때문에 오히려 글을 쓰기 어렵더군요. 또 그렇게 쓰고 나면 스스로 창피한 느낌도 들고요. 《씨네필 다이어리》는 제가 하고 싶은 얘길 열심히 쓴 책이에요. 영화와 철학을 연결해 평론으로 풀어냈죠. 주위에선 영화와 철학이 어떤 관련이 있냐고도 했지만 꾸준히 많이 팔렸어요(웃음). 관련 짓기 어려운 소재를 결합해 인문학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 즐거웠어요. 사람과 문학을 연결해주는 일, 거기서 나오는 담론이 사람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줄 때 그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길 썼는데 공감해주고 좋아해주면 더없이 좋고요.”

인문학을 접목한 여행 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세계문학 기행 《헤세로 가는 길》, 따뜻한 감성 에세이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잘 있지 말아요》, 문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인문서 《소설 읽는 시간》 《마음의 서재》 등 다양한 형식의 책을 써온 그는 요즘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다.

“언어학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연구해 보고 싶었죠.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아름다운 우리말에 철학적인 의미를 결합한 글을 쓰고 있어요.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 우리말이 가진 힘을 계속 실험해 보고 싶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문학 기행도 쓰고, 우리의 삶에 화두를 던져줄 수 있는 옛 인물들에 대한 평전도 써보고 싶어요. 평소에 논문을 자주 읽는데 내용은 어렵지만 좋은 논문이 많아요. 저는 그 논문을 대중에게 조금 더 쉬운 글로 바꿔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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