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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문득 기억나는 두 여자아이가 있다.


〉영숙이

초등학교 시절, 영숙이(가명)는 내 친구의 동생이었다. 동시에 내 동생의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 집에 자주 방문했고, 나와 동생 그리고 영숙이는 그 좁은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곤 했다. 그날도 영숙이는 각종 지형지물을 이용한 고도의 은폐엄폐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고, 나는 지문, 모발, 타액, 각질 등을 채취하며 그녀를 찾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여타의 다른 날과는 달리 성적이 저조했다. 이유인즉슨, 엄마가 두고 간 학원비 7만 원에서 만 원을 삥땅 쳐 애독하던 게임 잡지를 샀고, 이 모든 것을 엄마의 실수로 돌리려는 내 작전이 과연 먹힐까 하는 잡념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영숙이에게 숨꼭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자존심이 상했다. 하얗게 불태우고, 영숙이가 갔다. 학원에 갈 시간이 다 됐고, 학원비를 챙기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봉투가 사라졌다. 망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원비 봉투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엄마는 수화기 건너에서 내게 돌려차기를 날렸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엄마라고 생각했다. 덜덜 떨며 학원에 갔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학원 문을 나섰다. 그날따라 매일 같이 집에 가던 만철이(가명)도 들를 곳이 있다며 나를 혼자 보냈다. 외로웠다.

‘원고 정재영, 피고 박정민, 7만 원에 무너진 모자지간.’

‘법정에 선 13살 소년, 과연 뭐가 될 것인가.’

‘절도 소년 박모 씨 동생. “그 새끼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 입장 표명.’ 등의 헤드라인들을 떠올리니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놀이터 등등에서 서성이다가 순간, 만 원을 훔친 것보단 7만 원을 잃어버린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갔고, 집 앞에는 영숙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영숙이와 만철이와 그 둘의 부모님이 있었다. 영숙이와 만철이는 남매지간이었고, 영숙이가 우리 집에서 6만 원을 훔쳤고, 오빠를 사랑하는 영숙이는 만철이에게 오락실을 가라며 그 돈을 주었고, 만철이는 나를 먼저 보내고 치사하게 오락실에 혼자 갔고, 평소 일찍 집에 들어오던 만철이가 늦자 그의 부모님이 오락실에서 그를 검거했고, 만철이에게 꽤 많은 돈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추궁을 했고, 영숙이가 준 것이라 했고, 영숙이는 훔친 것이라 실토했고, 그렇게 그 부모님이 그 둘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 애가 이 집에서 돈을 훔쳤더라고요. 어머님.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너무 혼내지 마시고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님, 여기 6만 원.”

“네?”

“6만 원.”

“왜 6만 원이죠?”

“애가 6만 원을 훔쳐서 6만 원이죠.”

“그 봉투엔 7만 원이 들어 있었는데요.”

그 순간, 영숙이는 끝까지 거짓말을 치는 아이가 되었고, 한 대 더 맞았고, 엄마는 만 원을 더 받아냈고, 나를 쳐다보는 영숙이의 눈에선 독기 어린 눈물이 흘렀다. 그날 이후 영숙이는 더 이상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고, 내 동생과도 놀지 않았다고 한다. 영숙이에게 정말 미안했다.


〉별이

군 시절, 이등병이었던 나는 며칠에 한 번 꼴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 나야.”

“응 정민아, 별이(가명)라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었어. 여자앤데 전화 좀 달래.”

“안 돼 무슨 소리야. 나한테 효린이(가명)밖에 없는 거 몰라?”

“연예인이래.”

“번호가 뭐라고?”

엄마의 말을 요약해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날 좋아하던 여자아이가 졸업 앨범을 뒤져 집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연예인이라고 했다. 효린이를 배신하고 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땐 스무 살이었다. 어렸다.) 별이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나 별인데 기억나냐고 물었고, 나는 활동명이냐고 되물었고, 본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나”라고 말했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처음 들어보는 연예인 별이와 나는 1주일 정도 매일 통화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된 효린이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목소리가 왜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별이가 누구냐는 말이 돌아왔다. 눈앞이 캄캄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대답했다. 어리석은 대답이었다. 효린이도 초등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동창인 동일이(가명)에게 내가 별이와 연락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별이가 동일이에게도 꼬리를 쳐서 동일이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나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다. 순간 아득했다. ‘어떻게 별이가 나한테 그럴 수 있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과 ‘별이가 누군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이었다. 부대 선임에게 일련의 사건을 털어놓았고, 그 선임은 내게 별이의 정체를 알아내주겠다고 하며 공중전화로 나를 데려갔다. 그 선임은 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별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중후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고객님, oo텔레콤입니다.”

“네. 그런데요.”

“저희가 지금 이벤트 행사를 하고 있는데요. 이벤트 당첨이 되셔서요. 몇 가지 인적사항만 확인을 하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

“여보세요?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강영숙이오.”

“강영숙이라는데?”

“강영숙!?”

영숙이었다. 7년 전 그날의 영숙이 눈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순간이었다. 영숙이가 7년 동안 갈아온 복수의 날에 나는 단박에 베어졌고, 그 이후 효린이와 화해를 하기까지 나는 부대 안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자업자득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동일이에게 호되게 욕을 먹고 홀연히 사라진 영숙이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때 내가 정말 미안했어 영숙아.

박정민은 영화 〈동주〉 〈순정〉 〈오피스〉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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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 2016-10-10 ) 찬성 : 4 반대 : 4
잘 읽었어요 ㅋㅋㅋㅋ 문체가 너무 재밌고 글도 재치있게 잘 쓰시네여ㅋㅋㅋㅋㅋ 숨꼭병신ㅋㅋ 너무 웃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편물   ( 2016-08-31 ) 찬성 : 3 반대 : 1
언희가 글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
   장연주   ( 2016-04-14 ) 찬성 : 5 반대 : 2
댓글남기려고 회원가입 햇어요....언희가 뭔가 하고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엇습니다!!!! 매달 챙겨봐야지ㅎㅎㅎㅎㅎㅎㅎ
   드린이   ( 2016-04-08 ) 찬성 : 4 반대 : 5
이 글은..할 수만 있다면.. 진짜 돈을 주고 사고싶네요...
 와아...♡ 문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항상 이런글 감사해요!!
   은은   ( 2016-04-03 ) 찬성 : 5 반대 : 6
ㅋㅋㅋㅋㅋㅋ오늘도 잘 읽고 가요 좋은글 항상 감사드려요!
   응원합니다!   ( 2016-04-01 ) 찬성 : 6 반대 : 3
영화 <파수꾼>때 부터, 꾸준히 응원하고 있는 팬 중 한 명입니다. <언희>도 꾸준히 보고 있구요(^^) 계속 좋은 연기와 글 보여주세요~
   동주있니   ( 2016-03-31 ) 찬성 : 6 반대 : 2
으앙 말도 잘해 글도 잘써 연기도 잘해 못하는 게 뭐에요
   박소현   ( 2016-03-27 ) 찬성 : 13 반대 : 5
글도 재치있게 잘 쓰시네요!
 정말 박정민이란 배우의 매력은 끝이 없는거 같아요! 최고
   그래알겠다   ( 2016-03-25 ) 찬성 : 8 반대 : 8
예상치 못한 서스펜스........
   혜미   ( 2016-03-24 ) 찬성 : 16 반대 : 9
영숙이 ㅋㅋㅋㅋㅋㅋ 소름..
      ( 2016-03-23 ) 찬성 : 12 반대 : 9
ㅋㅋㄱ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웃겨요 언제 올라오나 한참 기다렸네요 이번호도 감사합니당!
   호미   ( 2016-03-23 ) 찬성 : 10 반대 : 8
문단이 바뀔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한 글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좋아요, 글 말이에요. 박정민님의 글로 인해 웃고 위로 받고 눈물도 흘리며 하루를 또 살아냅니다.
 일상의 건투를 빌어요. 그래야 계속 글을 써 주실테니.
 아참!
 동주로 시작된 만남이 이곳까지 이어졌고, 난생 처음으로 팬클럽에도 가입해 보았습니다. 늘 응원할게요!
 
   ㅇㅇ   ( 2016-03-23 ) 찬성 : 11 반대 : 4
숨꼭병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항상 읽으면서 웃습니당
   요니   ( 2016-03-23 ) 찬성 : 7 반대 : 7
ㅋㅋ잘읽었습니다-!배우님 항상 응원해요♥
   크리스탈   ( 2016-03-23 ) 찬성 : 7 반대 : 9
아ㅋㅋㅋㅋ 넘 웃겼어요ㅋㅋ 혹시나 해서 들어왔는데 4월호가 뙇
   다잘될겁니다   ( 2016-03-23 ) 찬성 : 12 반대 : 18
본업에 충실하면서 글도 잘 쓰는 남자 멋져요
 이번 글은 제일 친숙하면서 재밌네요ㅋㅋㅋㅋㅋㅋ
 배우님 항상 응원합니다 사랑해요♡
   ㅅㄴ   ( 2016-03-23 ) 찬성 : 12 반대 : 7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ㅋㅋㅋㅋㅋ
   unhee   ( 2016-03-23 ) 찬성 : 9 반대 : 6
매주 기다리게 돼요. 안투라지도 화이팅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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