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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실에서 웃은 소녀는 어떻게 되었나

장석주의 시와 시인을 찾아서 - 김민정 〈김정미도 아닌데 ‘시방’ 이건 너무하잖아요*〉

사진제공 : 김민정
1항, 2항, 3항 그렇게 10항까지 써나간 수학 선생님이 점 딱 찍고 ‘시방’이라 발음하는데 웃겼어요. 왜? 여고생이니까. 고향이 충청도라는 거? 몰랐어요. 허리 디스크 수술이요? 제가 왜 무시를 해요, 마누라도 아닌데. 다시는 ‘시방’ 때문에 웃지 않겠습니다, 칠판 앞에 서서 반성문을 읽어나가는데 뭐시냐 또 웃기지 뭐예요. 풋 하고 터지는 웃음에 다닥다닥 잰걸음으로 바삐 오시는 선생님, 부디 서둘지 마세요 했거늘 저만치 앞서 밀려나간 슬리퍼를 어쩌면 좋아요. 좀 빨기라도 하시지 얻어맞아 부어오른 볼때기에 발 냄새가 밸까 타월로 문지르니 그게 볼터치라 했고, 내 화장의 역사는 그로부터 비롯하게 된 거랍니다.

김민정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문학과지성사, 2009


김민정 시의 중심 화자는 ‘소녀들’이다. 소녀들은 순진하고, 남성 중심주의에 눌리거나 찢긴 경험이 없다. 여자 이전의 여자, 아버지의 지붕 밑에서 양육되는 존재들. 아직 빼앗고 짓누르는 권력을 모르는 소녀들의 생은 약동한다. 시에 펼쳐진 ‘소녀 감성’은 발랄과 천진, 솔직함 그 자체다. 세상과 부딪치면서 그녀들은 ‘처음 느끼’는데, 그 실체는 세상의 비루함이다. 이때 ‘세상’은 수학 선생, 도덕 선생, 음악 선생이고, 모욕을 주는 수녀 교장이며, 페니스를 권력과 동일시하는 ‘폭력’ 남편이나 오빠들이나 남자 친구이고, 실내화 앞코를 밟아 때를 묻히는 언니들이다. 시인은 그 기분 나쁜, 치사한, 비참한 ‘느낌들’을 채집하고 진설한다. 소녀는 “순결한 열일곱 살”에 죽어 “방부 처리”된다. 소녀의 교복 블라우스에는 “비비고 헹굴수록 선명해지는 얼룩”(〈그림과 그림자〉)이 있다.

이 얼룩은 피, 오염물질, 죄의 흔적이다. 얼룩은 생이 짓밟힐 것을 예고하고, 미래에 닥칠 나쁜 운명의 전조(前兆)를 드러낸다. 과연 소녀는 죽임을 당하는데, 죽음이야말로 생에 찍히는 가장 커다란 얼룩이 아닌가! 용케 살아남은 소녀들은 서른 살의 여자로 자라난다. 순진, 발랄, 풋풋함은 소녀의 덕목인데, 이것들은 짓밟히고, 깨지며, 흩어진다. “피에 젖은 채 돌돌 말린 수십 개의 생리대마다/아름답다, 빨간 리본이 묶여 있었다”(〈그녀의 동물은 질겨〉) 등등의 ‘소녀 유적’들은 불태워지거나 버려진다. 그와 함께 소녀들은 토벌당한다. 살아남은 것은 뻔뻔한 여자들, 아무렇지도 않게 생리를 하고 변비를 앓는 여자들이다.

〈김정미도 아닌데 ‘시방’ 이건 너무하잖아요〉는 여자고등학교의 ‘수학교실’을 비춘다. 소녀들은 수학 선생의 ‘시방’이라는 말에 까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소녀들은 반성문을 쓰고, 그 반성문을 읽다가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소녀들은 발랄한데, 그것은 비억압성의 발현이다. 소녀의 웃음에는 악의가 없지만, 수학 선생은 모욕받았다고 느끼고, 여학생을 징벌한다. 수학 선생은 슬리퍼를 벗어 여학생의 뺨이 부어오를 때까지 때린다. 이런 체험은 여학생에게만 있지 않다. 수많은 남학생들도 교사들에게 얻어맞는다. 권력의 비대칭 관계가 엄존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폭력은 흔하다. 체제 재생산의 억압이 드리워진 교실에서 힘의 비대칭이 폭력 사태를 빚고, 그런 장소가 권력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소녀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녀들은 아주 멀리서 온다. 소녀들은 “나와 동족들, 바로 나인 그 모든 자들, 그리고 나와 같은 자들, 추방당한 자들, 식민지 지배를 당한 자들, 화형당한 자들.”(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 》)의 후예들이다. 소녀들은 그 불태워 죽이고, 때려죽이고, 독약을 마시게 해서 죽인, 죽임의 역사에서 돌아온다. 지금도 소녀들은 여전히 권위, 억압, 권력을 뚫어야만 제 목소리를 낼 수가 있다. 소녀들이 발랄하지만 불안과 혼돈의 존재들인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시인에 따르면, 소녀들은 ‘펭귄, 끓는 죽, 빼빠, 비닐봉지, 초짜, 축농증, 투망, 벌집, 확성기, 두 달 기른 손톱’이다. 소녀는 파편화되어 흩어져 존재한다. 김민정은 그 소녀들의 생을 탐구한다. 그의 시를 “파격과 탈격, 파편과 우연”(《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 해설)으로 규정한 평론가 김인환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다시 ‘수학교실’로 돌아가자. 소녀들은 까르륵 웃는다. 웃음은 예기치 않은 실수, 정상에서 벗어난 기형들, 감각적 부조리에서 생겨난다. 얼어붙은 길바닥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때 웃음은 누군가는 실수를 하지만, 나는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 자기 자신의 우월성의 확인이다! 실수의 당사자는 웃을 수가 없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쓴다. “웃음은 자기 자신의 우월성을 의식할 때 생겨난다고. 유례없이 사악한 의식에서 생겨난다고! 자만심과 착란!” 웃음에 화를 내는 자들은 대개는 근본주의자들, 권력자들, 근엄한 자들이다. 그들은 웃는 자들을 미치광이라고 생각한다. 수학 선생은 왜 화를 냈을까? 수학 선생은 상황을 오인하고 생각을 비약하면서 소녀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판단한다. 실제는 누가 누구를 모욕했나. 모욕한 것은 소녀의 웃음을 폭력으로 징치한 수학 선생이 아닌가. 소녀가 의식했건 하지 못했건 간에 웃음은 권위/권력에 맞서는 일이다. 웃음은 체제 재생산의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교사들은 더 큰 권력의 대리인이자 수호자, 불가피하게 체제 재생산의 전위(前衛)들이다.

시인은 체제 재생산에 저항하고 도발하는 소녀를 그려낸다. “얻어맞아 부어오른 볼때기에 발 냄새가 밸까 타월로 문지르니 그게 볼터치라 했고, 내 화장의 역사는 그로부터 비롯하게 된” 것이라는 고백에는 미시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굴하지 않는 소녀의 발랄함이 드러난다. 이 발랄함은 “모두가 똥을 누고 살지마는/모두가 똥을 누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감자를 먹인다(〈그녀의 동물은 질겨〉). 김민정 시가 원한과 신파로 도망가지 않고 자신들에 적대적인 현실에 맞서는 건강한 동력은 발랄함이다. ‘수학교실’에서 수학 선생의 슬리퍼로 뺨이 벌개지게 맞은 소녀들은 변비로 고통받는 여자로 성장한다. 이들이 겪는 배설의 어려움, 불감증과 거식증은 곧 남성 지배 사회의 하수인들, ‘참견쟁이 명수들’과 적대하고 불화하는 여자로 사는 일의 어려움과 겹친다. 그 소녀들 중 누군가는 병적 억압들을 넘어서서 폭발하고, 솟구치며, 날아간다. 시인은 소녀들에게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들이 되라고 다그치면서, 세상이라는 ‘똥통’에서 벗어나려면 “발산하고 발광하는 근육”(〈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을 가져야만 한다고, 유쾌한 방식으로 일러준다.


김민정(1976~ )은 인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와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검은 나나의 꿈〉 외 9편의 시로 등단한다. 김민정은 시인이자 출판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편집자’다. 시인은 ‘세상’과 한 패거리로 미시권력을 휘두르며 소녀의 뺨을 때리고, 모욕하고, 코딱지를 먹이는, 남근주의의 위선을 가차없이 까발린다. 그 까발림의 한 항목이 “넘어진 나를 일으켜준다더니 그 손으로 나를 자빠뜨렸다”라는 폭로다. 시인은 ‘소녀들’과 ‘세상’ 사이에 엄존하는 적대와 비호감, 불화와 어긋남으로 얼룩지는 모멸감을 독자에게 일러바친다. 그 일러바침 목록에는 ‘시라는 이름의 시답지 않음’과, ‘시는 그래, 그렇게나 기똥찬 것’도 포함된다. 시인은 놀랄 만큼 개방적인데, 화두와 화투, 젖과 좆, 페니스와 페이스, 미혼과 마흔, 오빠와 오바, 화장(化粧)과 화장(火葬), 끝과 끗 같은 말놀음(fun) 속에 우스꽝스럽고 그로테스크한 경험들을 풀어낸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등이 있다.

*‘이건 너무 하잖아요’, 1974년 김정미가 발표한 노래.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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