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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맞댄 채 온기를 나누는 집들

‘달동네’ 그리는 화가 정영주

옹기종기 정답게 어깨를 맞대고 있는 나지막한 집들. 정영주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집들은 누가 높은지, 누가 큰지 위용을 다투지 않는다. 다닥다닥 붙어 마을을 이룬 고만고만한 집들이 산등성이까지 아스라이 이어진다. 빛이 사그라지는 해 질 녘일까, 아니면 뿌옇게 동터오는 새벽녘일까. 집집마다 노랗게 불을 밝히고 있다.
그 빛이 작품 전체에 밝고 따스한 기운을 심어놓는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는 판자촌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정서에만 호소하는 작품은 아니다. 외국인들도 그의 작품 앞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그림이 특정 지역의 풍경을 묘사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그리워하는 마음속 풍경을 담았기 때문이다.
빌딩 숲에 가려진 판잣집을 주인공으로

화랑에서 작가를 만났을 때 “사실은 사람을 그린 것 같다”고 하자 “알아봐주는 분이 있다니 신기하다”며 반색한다. 그가 집들이 모여 있는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만 보고 직진해온 삶이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을 때였다. 홍익대 회화과 졸업 후 프랑스 유학, 다시 미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지만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알아봐주지 않았다.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의 모든 가치를 그림에 두었죠. 그림을 인정받지 못하자 제 존재 가치조차 없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때 바람이나 쐬려고 올라간 남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해 질 무렵이었죠. 빌딩 사이에 파묻혀 있는 판잣집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그곳이 이제는 사라져야 할 존재로 취급되잖아요? 초라해진 제 모습 같았습니다. 빌딩 숲에 가려진 판잣집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게 가치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집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해왔던 추상 작업에서 구상 작업으로 전환한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초야, 97X145cm,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채색, 2015
“제 그림을 보고 ‘어디를 그렸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살던 동네 같다’는 분들도 있고요. 사실은 제가 꿈꾸는 세상, 판자촌 파라다이스를 그렸습니다. 자세히 보면 지붕이나 창문이나 집의 표현이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아요. 누구는 ‘외국에서 이런 마을을 봤다’고 하기도 하죠. 점점이 불빛만 아스라한 원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집집마다 피어오른 밥 냄새가 어둑해지는 골목을 채울 것만 같다. 아버지는 과일 한 봉지 사 들고 집으로 향하고, “밥 먹어라”라는 엄마의 외침에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향하는 시간. 고단한 하루를 뒤로하고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그는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도회적이고 깔끔해 보이는 그의 인상 때문에 “작가와 그림이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림이 너랑 똑같다”고 말한다. 서울 신림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부산으로 이사,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의 유년기 기억을 지배하는 시절은 경북 예천 큰아버지 댁에서 보낸 때다.

“예닐곱 살 때 부모님이 저를 큰아버지 댁에 보냈습니다. 정씨들이 사는 부락으로, 기와집과 초가가 모여 있는 곳이었죠. 집에서 소와 닭을 키웠고,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방에는 메주가 달려 있고, 콩나물도 키웠습니다. 제가 직접 소에게 여물을 주었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호롱불을 켜고,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었습니다. 막걸리를 들고 밤참 배달을 했던 기억도 나요. 처음에는 부모님이 나를 버린 줄 알고 계속 울어댔지만, 슬슬 적응하면서 선머슴처럼 뛰어 다녔죠. 세상에 대해 막 눈뜰 시기에 경험한 일이라 그런지 지금도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나요.”


한지의 주름으로 집의 연륜 표현

일요일 오후, 53X72.7cm,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채색, 2012
유년기 때 형성된 정서가 그의 내면 깊이 자리 잡아 작품을 통해 표출되는 게 아닐까? 프랑스 유학 시절에도 그는 첨단 매체를 좇기보다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는 작업으로 인정받았다. 어릴 적부터 프랑스 유학을 꿈꿨던 그는 대학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바로 프랑스로 향했다. 식비, 방값을 아끼며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그는 행복하게 추억한다.

“낮에는 파리 골목골목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고, 밤에는 작품에 몰두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만끽했죠. 성과도 좋았습니다. 학교 전시회에서 우연히 제 작품을 본 한 CEO가 개인전을 열어주었는데, 첫 전시부터 작품이 거의 다 팔렸습니다.”

프랑스에서 6년간 생활한 후 그는 뉴욕으로 향했다. 더 큰 물에서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미국과는 정서가 맞지 않았다.

“유럽은 자연 친화적이고 사람 냄새가 났어요. 손때 묻은 과거를 그대로 지니고 사는 모습이 좋았죠. 하지만 뉴욕 맨해튼 거리에 서니 빌딩이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비인간적인 자본에 공격당하고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죠. ‘여긴 나랑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외환위기까지 겹쳐 뉴욕에 간 지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시-사라지는 풍경, 112x163cm, 캔버스 위에 한지, 아크릴 채색, 2012
1999년 귀국하면서 그는 외국에서도 인정받았으니 한국도 당연히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리라 기대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은 팝아트 그리고 설치와 영상 등 새로운 소재나 매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외국에서는 그게 이미 새롭지 않은 데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했기에 제 작품 세계를 지킬 수 있었던 거죠. ‘지금 한국에서는 내 작품이 먹히지 않겠다. 한동안 작품 발표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부산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묵묵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집을 그리면서도 그는 추상 작업 때 썼던 한지를 그대로 활용한다. 한지를 구겼다 펴서 캔버스에 붙이면서 지붕과 기와, 벽 등 집의 형태를 만든다. 그 위에 묽은 아크릴물감을 물들이듯 서너 번 이상 되풀이해서 칠한다. 작가는 “사람이 늙어가면서 주름살이 생기듯 한지의 주름으로 집의 연륜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지 위에 채색하면 빛을 빨아들이면서 차분하고 깊이 있는 색감을 드러낸다. 주름진 한지와 가라앉은 색감이 오래되고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힘든 작업의 연속이지만 마지막에 빛을 표현할 때면 마음이 밝고 따뜻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다”라고 말한다.

“사람 없는 어두운 골목에 빛을 그려 넣으면 그림이 밝아지면서 생동감이 생깁니다. 생명을 주고 희망을 심는 듯한 기분이 들죠.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 그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게 하며,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2009년 개인전을 연 이래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모두 각광받고 있다. 개인전뿐 아니라 각종 전시회에 초대받고,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의 아트 페어에 참가해 호응을 얻었다. 2015년에만 30회 넘는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 때마다 작품이 대부분 판매되다 보니 그의 수중에 남은 작품이 거의 없다고 한다. 오는 10월에는 선화랑에서 3년 만에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올 한 해는 다른 전시에는 되도록 참여하지 않으면서 개인전 준비에 몰두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더 밝고 따뜻해지고 있다.

“원래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뾰족한 사람이었는데, 나이가 들자 경계심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좀 넉넉해지나 봐요. 따뜻한 온기를 더욱 그리워하게 되고요. 그런 변화가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30여 점을 선보일 개인전에서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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