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최다 웹드라마 제작한 박선재 감독

‘스낵 컬처’ 이끄는 웹드라마 선구자

글 : 오주현 기자  / 사진 : 김선아 

스낵 컬처(snack culture).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간식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트렌드를 일컫는 말이다. 스낵 컬처가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10대의 61.8%가 모바일을 주 시청기기로 이용했고, 2012년 5000만 시간이던 모바일 동영상 이용 시간이 2014년에는 2억6000만 시간으로 급등했다. 모바일 시대, 스낵 컬처 현상을 만들고 있는 박선재 감독을 만났다.

사진제공 : 네이버캐스트
박선재 감독은 2013년 2월, 네이버 TV캐스트 웹드라마 전용관에 국내 최초 웹드라마 〈러브 인 메모리〉를 선보이며 웹드라마 시대를 열었다. 이후 〈아직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낯선 하루〉 등 다양한 웹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선재 감독은 김종학 프로덕션 출신으로 연출과 극본을 겸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최근 그가 선보인 웹드라마는 〈수사관 앨리스〉다. 걸그룹 에이핑크의 김남주와 연기파 배우 조동혁이 주연을 맡았는데 160만 뷰(view)를 기록하며 좋은 평을 받았다. 〈수사관 앨리스〉는 ‘식약처 수사관’이 소재다. 한 번도 드라마화된 적 없는 새로운 소재이지만 ‘음식으로 장난치는 사람을 과감히 응징한다’는 주제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냈다.

“개인적으로 뜻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웹드라마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작품은 멜로였습니다. 그동안 저 역시 멜로, 로맨틱 코미디 위주로 작품을 해왔지요. 처음으로 웹드라마에 코믹 수사물을 도입시켜보았습니다. 도전이었지만 좋은 결과가 나와서 만족스럽습니다.”

웹드라마는 소재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제작 환경, 예산 등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웹드라마는 소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한계가 적다. 또한 한번 웹상에 업로드되면 전 세계에서 시청할 수 있고, 지난 작품도 쉽게 찾아서 볼 수 있다.


모바일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콘텐츠

〈수사관 앨리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보편화되었다. 이에 맞춰 기업들은 SNS 엔진을 만들고 디지털 마케팅팀 등 SNS를 공략하기 위해 많은 팀과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대기업의 자본이 투입되면서 구색은 갖춰졌음에도 플랫폼을 채울 콘텐츠가 부족했다.

TV 방송의 한계가 웹드라마의 발생을 촉진했다. 많은 제약이 따르는 지상파를 넘어 케이블 시장이 형성되었고 종편 시장도 만들어졌다. 케이블과 종편 시장도 포화되기 시작하자 업계 관계자들은 그 후의 시장은 무엇이 대세가 될지 고민했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방영 후에도 실시간 소통할 수 없는 TV를 통한 콘텐츠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시장의 이런 수요에 대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SNS였다. 웹드라마가 등장하면서 후속작이 대거 쏟아졌다.

〈러브 인 메모리〉
“한때는 TV 드라마가 가지는 힘이 매우 컸습니다. SBS에서 〈모래시계〉를 선보이면서 서울방송인 SBS를 전국방송으로 만들어낼 정도였죠. 하지만 시대는 새로운 플랫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케이블 TV가 출범할 때 케이블 TV를 타깃으로 하는 김종학프로덕션의 채널 K에 입사해 케이블 최초 16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경험이 웹드라마를 만들때 도움이 됐죠.”

웹드라마의 첫 촬영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사람들은 ‘웹드라마’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고 누구도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조감독, 조명, 음향, 배우 모두 국내 최초 웹드라마를 만들겠다고 모였는데 눈은 많이 오고 다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게다가 조감독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첫 촬영으로 잡아놨더라고요. ‘멘붕’ 일보 직전이었죠. 이런 와중에 제가 ‘저도 처음이니까 상의하면서 촬영합시다’라고 했다가는 배가 산으로 갈 것 같았어요(웃음).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신이 도와줬다’고 생각할 정도로 캐스팅, 촬영 모두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촬영팀, 배우 모두가 ‘우리가 시작이니만큼 잘 찍어야 우리 뒤로 웹드라마가 이어진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와 드라마의 중간, 웹드라마

〈아는 사람〉
박선재 감독은 군 제대 후 사귀던 여자친구와 가슴 아프게 이별한 후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그 길로 ‘영상작가교육원’에 등록해 시나리오 작성법을 공부했다.

“어느 날 교육원의 대표작가가 제가 쓴 대본을 보고는 ‘이걸 글이라고 썼느냐!’고 호통을 치면서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상처를 받고 크게 좌절했죠. 그런데 다음 날 대표작가가 다시 불러서 사무실에 가보니 웬 더벅머리 감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MBC 베스트극장 시대를 연 선우완 감독이었다. 선우 감독은 전날 우연히 영상작가교육원에 들렀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대본을 보았고, 대본이 마음에 들었던 선우완 감독 덕분에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당시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나리오는 영화를 하기에는 짧고, 드라마를 찍기에는 주제가 적합하지 않아 극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작품은 그로부터 17년 후 국내 최초 웹드라마 〈러브 인 메모리〉로 재탄생했다.

〈러브 인 메모리〉 주인공 조윤희는 웹드라마를 “영화와 드라마의 중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웹드라마는 예쁜 색감, 양질의 촬영과 편집, 음악적 완성도가 필요한 영화적 미장센과 좋은 스토리와 배우의 연기로 계속 몰입감을 주어야 하는 드라마적 특징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TV보다 작은 화면에서 송출되는 것이어서 시청자의 눈길을 계속해서 잡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10~15분 안에 끝나는 스낵 컬처의 특징에 맞춰 시청자가 다음 회를 궁금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웹드라마의 주 시청자층이 10~20대 젊은층인 만큼 지속해서 시청자를 이끌어가기가 힘들거든요. 보통 1회 시청 수가 가장 많고 뒤로 갈수록 유입이 빠지기도 해요. 위기, 긴장 등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드라마 작법 요소를 잘 배치해놓아야 합니다.”


웹드라마 시장은 검증된 시장이 아닌, 검증되지 않은, 그래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무한도전의 장’이다. 지금은 여러 차례 성공 사례가 보이자 지상파 방송사, 케이블 방송사, 포털, 플랫폼사 등 많은 회사가 웹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사람들은 TV 앞에서 이른바 ‘본방을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직접 찾아서 본다. 이 선택권의 범주는 ‘익숙함’이다. 지금은 지상파, 케이블이 익숙해서 더 많이 찾아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웹이 익숙해질 것이다. 웹드라마의 수익구조가 불분명함에도 많은 회사가 뛰어드는 이유다. 현재 웹드라마의 수익은 동영상 앞뒤에 붙는 광고, PPL, 제작지원을 받아 형성된다.

“시장이 커지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러나 거대자본이 시장을 잠식할까 봐 걱정입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장이라는 매력은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웹드라마 시장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었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 존중되고 상생하는 시장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박선재 감독은 2016년 1월 〈투모로우 보이〉라는 새로운 웹드라마를 선보인다. 꽃미남 소년 가장과 부유한 집의 여자 주인공이 만드는 로맨스가 주제이지만 현실적인 사회문제 등도 담을 예정이다.

“막 만들어진 시장이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후배들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1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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