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장애 이겨내고 다시 노래하는 ‘더 크로스’ 김혁건

“전신 마비라고 노래를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글 : 이채희 인턴기자(연세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2000년대 중반, 중・고교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룹이 있었다. ‘Don't cry’ ‘당신을 위하여’ 등의 곡으로 대표되는 그룹 ‘더 크로스’ 이야기다. 당시 노래 좀 한다는 학생들은 이들의 노래를 부르며 가창력을 뽐내곤 했다.
더 크로스의 보컬 김혁건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05년, 돌연 팀을 떠나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김혁건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휠체어를 타고 보조 장치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듣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교통사고가 남긴 극한의 고통

2005년, 김혁건은 옷에 체인을 매달고 가죽 점퍼를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탔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 ‘록(Rock) 스피릿’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 대중음악의 흐름은 록이 아니라 R&B였다. 소속사는 더 크로스도 그 흐름에 따르기를 원했다.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록을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 김혁건은 결국 더 크로스를 떠났다. 이후 2009년 군대에 갈 때까지 그의 활동 무대는 언더그라운드였다.

“차에 기타랑 엠프만 넣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어요. 수입은 좀 떨어졌지만 하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할 수 있었죠.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더 크로스의 멤버 이시하가 김혁건과 다시 노래하고 싶어 했고, 소속사 역시 김혁건의 복귀를 원했다. 그는 2011년에 전역한 후 다시 더 크로스에 합류한다.

‘또르르’라는 노래의 녹음까지 마치고 의욕적으로 컴백을 준비하던 2012년, 김혁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큰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차와 정면 충돌한 후 몸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목이 부러졌다. 그 사고로 경추에 손상을 입은 그는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다.

“목이 부러지는 순간 온몸의 감각이 없어지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숨도 안 쉬어졌고요. 부모님이 병원에 오실 때까지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요.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씀을 드리고는 곧 바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이후는 기억이 드문드문해요.”

병원 생활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뒤통수와 허벅지가 썩어 살을 긁어내는 수술을 1년쯤 받았다. 살이 썩어가면서 합병증이 생겨 투석도 받았다. 90kg이 넘던 건장한 몸은 55kg으로 앙상해졌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은 참을 만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야말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극한의 고통을 가져왔다.

“중도 장애인들은 누구나 똑같아요. 다치고 나서 1~2년 동안은 사회생활을 중단한 채 몸이 낫기만을 기다려요. 잘 회복되지 않으면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도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우울증 약을 먹었어요. 몸이 아픈 건 둘째 치고, 가장 괴로운 건 마음이 아픈 겁니다.”


희망과 용기를 준 고마운 사람들

김혁건이 더 크로스를 떠나 ‘락 밴드 크로스’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모습.
사고를 당한 후 김혁건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노래를 한마디 이상 부르기가 어려웠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이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무너져가던 때였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제가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복부 압력 장치를 만들어 오셨어요. 이 기계를 저에게 가져다주시려고 전국에 있는 철공소는 다 돌아다니셨대요. 어머니는 저의 손과 발이 되어 병간호를 해주셨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질 때도 부모님께서는 저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봐주셨어요.”

그의 소속사 사장과 더 크로스의 멤버이자 친구인 이시하도 큰 힘이 됐다.

“요양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을 때 소속사 사장님과 시하가 찾아왔어요. 사장님이 노래를 다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시하는 저를 위해 곡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겠다고 했고요.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한 글자도 부르기 어렵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두 사람이 ‘그럼 한 글자씩 따로 떼서라도 녹음하자’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참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2015년 1월, 김혁건은 이시하와 함께 더 크로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새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사고 후 정신적으로 힘들던 시기에 적어놓은 글귀로 작사한 노래다. 2014년 연말에는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이야기 콘서트 〈Don’t cry〉도 개최했다. 그룹 더 크로스와 김혁건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뮤지컬 배우들이 연기하고, 그 사이에 김혁건이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된 공연이었다.

김혁건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복부 압력 장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수동 장치는 다른 누군가가 조종을 해줘야만 작동했다. 노래를 하면서 호흡할 때와 기계가 배를 눌러줄 때의 타이밍이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김혁건의 사연을 들은 서울대학교 로봇융합연구센터장 방영봉 교수는 그를 위해 자동 복부 압력 장치를 만들어주었다.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김혁건에게 방 교수는 또 한 명의 은인이었다.


“받은 만큼 보답해야죠”

김혁건씨의 가수 활동 재개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김혁건씨에게 표창장을 수여했고, ‘따뜻한 세상 캠페인’을 펼치는 국내 한 기업은 감사패를 전달했다.
김혁건은 2014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서 김동규, 폴 포츠 등과 함께 노래했고, KBS 〈강연 100℃〉에도 출연해서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강연을 선물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방송들이었다.

“제가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출연했어요. 방송이 나간 후 제 SNS 계정으로 시청자들의 감사 쪽지가 많이 왔습니다. 손가락이 잘려서 경찰을 그만뒀다가 제 노래를 듣고 큰 힘을 얻었다는 분의 쪽지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힘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혁건은 사고 이후 장애인들의 생활 환경에도 관심이 생겼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편하게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중랑천 고수부지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장애인을 위한 음악 교실도 열었다.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국립재활원 등의 기관에서 주최하는 장애인 관련 행사 현장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많아졌다.

“다치기 전 음악학원을 할 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적이 있어요. 3층에 있는 학원까지 올라오기 힘들 텐데 다니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다치고 난 후 그 일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음악교실도 열고 버스킹 공연도 했어요.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2014년 11월, 김혁건은 본인이 직접 작사・작곡한 ‘넌 할 수 있어’라는 제목의 앨범을 냈다. 내일을 향한 희망이 있다면 오늘의 절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노래다.

“슬픈 노래는 이제 안 불러요. 요즘 슬픈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노래를 부르는 저도 행복하고 듣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밝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 201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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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김애   ( 2016-11-15 ) 찬성 : 40 반대 : 55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처해있을때 떠올리게되는밝은등대같은 희망이아이콘 이십니다.
 씩씩하게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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