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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 녹아내리는 보물들

시간의 흐름을 담는 사진작가 구성연

침몰한 보물선에서라도 건진 것일까?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의 갖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다. 12월 19일까지 서울 예화랑에서 열리는 구성연 작가의 개인전. 1층 전시실을 빙 둘러 보물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나의 끈적거리는 보물들’이란 제목을 붙였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화려한 장식품들이 조금씩 녹아내리면서 형체가 허물어지고 있다. 사실은 끓인 설탕물을 틀에 부어 굳히면서 모양을 만든 후 촬영한 사진이라 한다. 설탕물은 서서히 녹아 바닥까지 흘러내렸다. 시간의 흐름을 모두 사진에 담은 작가는 눈을 현혹시키는 금은보화가 사실은 끈적끈적한 설탕물이었다는 사실을 노출시킨다.
작가는 “설탕을 녹여 만든 이 장식품들은 조명 아래 황금처럼 번쩍거리지만 애초에 그랬듯이 아무 기능도 없이 사진만을 남기고 녹아 없어진다”고 말한다. 참 절묘한 은유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니 화려한 꽃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세상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진짜 꽃은 아니다. 사탕으로 꽃 모양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붙여 촬영한 사진들이다. 달콤한 향내를 풍기는 색색의 사탕 꽃들은 꽃보다 더 꽃의 본질에 충실해 꽃의 이데아를 보는 듯하다.


우리 민화를 모티프로 작업

“꽃과 사탕은 정말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똑같이 향기롭고 달콤하고 형형색색이죠. 결국 녹아 없어지는 사탕처럼 아무리 화려한 꽃도 언젠가는 시들고 맙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네덜란드의 17세기 꽃그림을 떠올렸다. 형형색색 꽃들이 만개한 모습을 담은 그 정물화는 결국 시드는 꽃처럼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는 그러나 서양 정물화가 아니라 우리 민화를 모티프로 작업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전통 민화, 그중에서도 모란도를 매우 좋아해요. 모란은 부귀를 상징해 옛사람들이 혼례나 잔치 때 모란도 병풍을 놓고, 신혼방에 아담한 모란도를 걸었잖아요? 영구불변 강한 존재가 아니라 지금은 아름답지만 곧 소멸해버릴 존재에 의탁해 기원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사랑에 대해 고민할 때 만든 작품인데, 꽃에 자신의 사랑을 의탁하는 마음이 참 소박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죠.”

sugar_06, 150ⅹ225cm, light jet c-print, 2015
결국 시드는 꽃처럼, 녹아버리는 사탕처럼 인생도 사랑도 유한하다. 사실은 허망하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누리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09년 처음 사탕 작품을 선보인 후 6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그의 사탕작품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졌다.

“2009년에는 일곱 점만 가지고 전시를 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계속 사탕작업을 했지요. 설탕작업은 몇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나왔습니다. 돌아보니 처음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방법을 계속 시도했더라고요. 뽑기 아저씨를 찾아가 묻기도 했지만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만든 설탕 장식품의 맛은 뽑기와 똑같아요. 재료가 같으니까요. 여기저기에서 모은 장식품을 실리콘으로 본뜬 후 그 틀 안에 끓인 설탕물을 부어서 만들었습니다.”

설탕물을 얼마나 오래 끓이느냐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졌다. 오래 끓여 농축시키면 색이 짙어져 황금 같은 효과를 더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황금과 보석, 상아로 만들어 궁전이나 사원, 귀족의 집을 장식했던 진귀한 물건들. 이를 본뜬 놋쇠와 강화석고 장식품은 한때 중산층 가정에서 인기를 끌다 유행이 지나자 벼룩시장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설탕을 이용해 다시 이 싸구려 장식품을 본떴다. 그러면서 보물의 원래 이미지를 최대한 되살려낸 그의 장식품은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린다.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살육도 마다하지 않았던 인간의 욕망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듯이. 보물의 원래 주인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눈을 사로잡는 그의 작품들은 이렇게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구성연을 사진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사진작가는 보통 어떤 대상을 포착해 어떤 관점으로 담아내느냐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구성연은 원래 있던 대상을 촬영하지 않는다. 촬영할 대상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자신이 만든 세상을 카메라에 담는 셈이다.

“구현하고 싶은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는데 현실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으니, 별 수 있나요? 직접 만드는 수밖에. 만약 사탕이 꽃처럼 피어 있는 꽃밭이 있었다면 찾아가서 촬영했겠죠.”


카메라 수리공 되려 사진공부 시작

사탕 시리즈 R.01+02, 60ⅹ120cm, light jet c-print, 2013
구성연 작가는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서울예대 사진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공부를 계속하려던 그가 사진작가가 된 것은 우연한 이끌림 때문이었다.

“1993년, 유럽여행을 가면서 카메라를 빌렸습니다. 그런데 처음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고장이 난 거예요. 잔뜩 겁을 먹고 수리센터를 찾았는데, 간단히 해결됐어요. 뭔가 물건을 수리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언니에게 ‘카메라 수리공이 되고 싶다’고 했더니, 사진학원에서 배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사진학원을 거쳐 대학 사진과에 입학하면서도 ‘언젠가는 카메라 수리를 가르쳐주겠지’ 생각했다 한다. 엉뚱한 진로설정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게 재미있다. 대학 졸업 후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을 배우고 싶었지만, 나이가 많은데다 여자라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 결국 불교대사전 편찬 작업 등 옛 전공을 살려 일하면서 사진작업을 병행했다.

“학생 때 이것저것 촬영해보면서 내가 뭘 못하는지 가려낼 수 있었어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은 너무 힘들더라고요. 풍경사진은 체력이 달리고. 그래서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업부터 시작했죠.”

그의 작품들은 당시 그가 어떤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 궤적을 보여준다. 2000년의 나비 연작. 먹음직스러운 찐빵, 찹쌀떡, 밥, 달걀노른자 위에 나비가 앉아 있다.

모래 시리즈_물고기, 150ⅹ120cm, c-print, 2004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 누구나 예쁘다고 감탄하잖아요? 그런데 나비가 내 음식에 날아와 앉으면 어떻게 되나요? 더러운 벌레로 느끼지 않나요? 그 존재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나와의 관계 때문에 대상의 의미가 확 달라지는 지점이 극적이라고 느꼈습니다.”

2001년 유리 연작에서는 소시지, 두부, 오이, 호박 등 말랑말랑한 음식물들이 날카로운 유리를 꽂고 있다.

“상처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였어요. 사람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잖아요? 특히 연애 때 심해지죠. 그런데 사람마다 상처를 이용하는 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칼에 찔린 사람이 그 칼을 계속 꽂고 돌아다니면 어떨까요? 보는 이에게 위협이 되지 않겠어요? 상처는 ‘나 이렇게 상처 받았잖아?’라며 상대방을 구속하는 용도로도 쓰이죠.”

유리를 꽂고 있는 말랑말랑한 음식은 인간 몸의 상징이었다 한다. 2004년 모래 연작은 한 무더기 모래에 물을 적셔 형상을 만든 후 촬영한 작품이다. 습기가 말라 형체가 무너지면 다시 물을 적셔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다. 모래 한 무더기로 거북, 뱀, 물고기, 장미, 시계가 연이어 만들어졌다. 솜씨 좋게 만들어낸 형상은 어김없이 한 무더기 모래로 돌아갔고, 그 과정은 사진으로만 남았다. 2005년 화분 연작은 식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역전시킨다. 숨 막히는 도시생활에서 한 자락 여유와 자연을 느끼고 싶어 들여놓은 화분. 그런데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식물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도리어 인간의 생활공간을 침범하고 압박한다. 언제나 우리 통제 아래 있으리라 믿었던 실내식물의 반격이다.

팝콘 시리즈 p.01, 150ⅹ120cm, light jet c-print, 2006
2005~2007년 팝콘 연작은 나뭇가지에 팝콘을 붙여 촬영한 사진으로, 고아한 느낌이 전통 회화의 ‘매화도’를 연상시킨다. 팝콘으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게 놀랍다.

“매화 그림도 좋아해요. ‘나도 저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붓을 들고 얼마나 연습해야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요? 문인화는 그냥 기술만 익힌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오랜 심신수양에서 우러나는 그림이니까요. 그래서 내 방식대로 표현해보자고 생각했지요.”

삶의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그 생각을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구성연 작가. 그 때문인지 그의 작품이 던지는 여운이 길다. 보는 이에게 여러 가지 상념을 일으킨다. 철학 작업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학부에서 무슨 전공을 했는지가 한 개인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겠느냐며 부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영향 받은 게 많아요. 그런 성향이 있었기에 전공으로 택했을 테고, 대학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접하고 관계 맺은 게 지금의 나를 형성했을 테니까요.”

다음 작품에서는 작가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기다려진다.
  • 201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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