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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소녀 루스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나 페루 간다”고 하니,

“누구 패루 페루 가냐.” “페루가 한두 시간 걸리나?” “병신아, 페루가 남민데 무슨 두시간밖에 안 걸려. 그나저나 마추픽추 와파 터짐?” 따위의 답변만 돌아온다. 제도권 아래 주입식 교육을 피해가려다 교육까지 피해간 멍청한 놈들.

“캔아이유즈유어 핫스팟? 테더링 테더링 플리즈.”

성문 기본 영어를 독파했다면 이 정도는 기본이다.

페루다. 잉카 문명의 수도 ‘쿠스코’, 굽힐 수 없는 자존심 ‘마추픽추’, 학설로서는 어폐가 많은-하여 전설로서나 이해가 가능한 ‘나스카’, 태양이 지는 드넓은 사막 ‘이카’. 작년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이 미지의 땅은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친숙한 곳이 되었고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추픽추, 나스카 등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직접 눈으로 보니 ‘웅장하다’ 혹은 ‘신비롭다’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무례한 광경이다. 결국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더라는 것이고, 그래서 난 이 글에서 그런 것들을 ‘형언’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정말 마추픽추에서 “테더링 테더링”거린 이야기나 하려고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분홍색 가방을 멘 어린 소녀가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한국인 무리에게 다가온다. 한눈에 봐도 조악해 보이는 인형과 라마 열쇠고리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사달라고 한다. 인형은 하나에 5솔(약 1800원)이고 열쇠고리는 하나에 1솔(약 350원)이란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러더니 뒤돌아 자기 가방을 보여준다. ‘Ruth’. 아, ‘두쭈’라고 한 줄 알고 원주민 이름은 좀 특이하구나 했는데, 루스였구나. 내 이름을 묻는다. “난 정민” 하니 인형을 가리키며 “이건 정민이고” 인형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아기 인형을 가리키며, “이건 정민의 아기야”라고 한다. ‘능숙하다. 안 사고는 못 배기겠다. 뼛속까지 장사치다. 봉이 김선달인 줄’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5솔에 사란다. “솔이 없어”라고 하니 다시 한 번 “이건 정민이고, 이건 정민의 아기야”라고 한다. “난 아기가 없ㅇ… 아니 내가 솔이 없다니까” 하니 루스가 말한다.

“아임 쏘리, 원 솔 프레젠트 포 미. (미안해요. 그럼 1솔만 내게 선물로 주세요.)”

그제서야 루스의 눈을 본다. 착한 아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그저 1솔이 필요한 것뿐이다. 당장 1솔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에게 1솔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그 돈을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미안할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눈이다. 그래! 솔직히 불쌍했다. 얼마라도 쥐여줘야 속 편할 것 같았다. 솔이 없으니 달러 몇 장 쥐여주고 그 조악한 인형 하나를 샀다. 루스는 “고마워요!”라고 하더니 어떤 남자에게 가서 그 돈을 준다. 조직의 우두머리 정도 돼 보이는 남자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수많은 루스 중 오늘 에이스는 너다 루스’ 하는 마음으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운다. 그런데 어느새 “정민, 이거요” 하며 루스가 다가와 라마인형 열쇠고리를 뭉텅이로 내민다. ‘선물’이란다. 아니다, 너무 많다. 가장 예쁜 거 하나만 주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한테 팔아서 고기 사먹어라 하며 하얀색 라마를 골라 곧장 가방에 걸었다. 그럼 하나 더 가지라며 회색 라마를 준다. 그리고 그렇게 루스와 헤어졌다. (쿠스코에 있는 며칠간 루스가 있는지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아이의 행복지수를 내 나름대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실례고 무례다. 하지만 100만원짜리 목도리를 파는 가게 앞에서 100원짜리 인형을 파는 아이가 과연 그렇게 행복할까 싶기도 하다. 산속에 파묻혀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원주민 아이라면 모를까, 국가에서 나오는 가루분유를 되팔아 그 돈으로 예닐곱 식구들이 밥을 먹어야 하는 가족의 아이들은 좀 덜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수도 리마에선 아이가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제2의 도시라는 쿠스코에선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관광객을 조른다. (사실 페루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페루 GDP의 대부분은 상위 10%의 소득에 가깝다고 하고, 리마 시내만 조금 돌아다녀봐도 빈부의 격차가 눈에 훤히 들어온다.)

스무 살 때 마추픽추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며칠밤 컴퓨터를 붙잡고 자료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결국 돈이 없어서 못 간다는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10년 뒤 기회가 되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살짝 ‘들여다보니’ 마추픽추는 그들의 일부일 뿐,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그 안에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300년이 넘는 식민통치 아래 생성된 그들의 정서, 그리고 그들만의 가톨릭,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그들의 기술, 반면 문자를 만들지 않아 그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잉카. 마치 잉카 하면 고대 문명 같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잉카는 고작 500년 전에 존재하던 문명이다. 놀랍지 않은가. 아니면 만다.) 훗날 좀 더 공부한 뒤에 페루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그렇게 여차저차 2주간의 페루 여정이 끝났다.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만 들어도 그 여행의 반은 성공인데, ‘꼭 다시 오겠다’는 마음으로 인천행 비행기를 탄다. 아직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과 알고 싶은 미지의 영역 등이 설움으로 받친다. 뭘 또 그 정도냐 한다면 직접 가보시라. 앞서 말한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의 정서까지도 이상한 것이 많다. 2주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이 “거 참 희한하네”였다. 그렇다. 참 희한한 나라다.

마추픽추를 보니 어떻더라, 이카 사막에서 탄 썰매는 어떻더라 하는 감상평을 기대한 독자들에겐 죄송하다. 그 감상평은 11월 22일 시작하는 채널 CGV 〈나도 영화감독이다 2〉에서 확인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신비로운 나라에 가서 신비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거의 아무 말이 없는 본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왔는데 나온 게 아닌, 그간 볼 수 없던 신비로운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려 페루에서 같이 고생한 박성웅, 류현경, 고아성 선배님과 스태프들께 수고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고, 류보원 실장과 염민지 대리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그리고 루스! 너한테 산 인형에 ‘루스’라는 이름을 붙여줬어. 기억할게. 행복해.

박정민은 영화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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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 2016-02-21 ) 찬성 : 13 반대 : 11
나영감2 잘 봤어요 조조조연출
   하얀포스   ( 2015-11-28 ) 찬성 : 34 반대 : 26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응답하라1988 연기도 잘 봤어요~~!!
   정민수니   ( 2015-11-26 ) 찬성 : 23 반대 : 16
형. 언. 할수없는 페루~
 
   미나리   ( 2015-11-22 ) 찬성 : 37 반대 : 43
12월호가 벌써올라오다니ㅜㅜㅜㅜ
 나영감 첫방에 맞춰 일부러 올린건가요..
 1월호를 엄청나게기다려야하는거네요.힝ㅠㅠ
 
 어쨌든 오늘 나영감2 본방첫방!!!!잘봤습니다
 
 10년전 막연한동경으로 찾아봤던 그곳을 가게 되었다니
 부럽기도하고 존경스러워요 다음주 나영감2 기대할게요
 스탭보다더스탭같은 배우님 ㅋㅋㅋ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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