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최하는 전시마다 화제, 대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손명민

“전시는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예요”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개관해 패션·일러스트레이션·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열고 있는 대림미술관은 서촌의 핫 플레이스다. 〈트로이카: 소리, 빛, 시간·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 등 이색적이고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로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까지 전시한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에는 35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12월 말까지 열리는 〈헨릭 빕스코브 전〉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은 아티스트임에도 주말에 입장권을 끊으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전시회 뒤에는 작가의 예술혼과 대중을 연결하려고 애쓰는 손명민 큐레이터가 있었다. 특색 있는 전시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일반인에게 소개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사진제공 : 대림미술관
큐레이터는 ‘지휘자’

손명민은 영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하면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대림미술관 큐레이터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런던과 멕시코를 오가며 건축과 제품 디자인 활동을 했다. 어떤 공간과 제품을 만들지 구상하고 이를 디자인하여 결과물로 제작하는 일을 해오던 그는 큐레이터처럼 다른 이의 예술작업을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과 동경이 생겼다.

“건축학 공부가 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데 도움이 돼요. 건축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소프트웨어적인 제안도 하는 분야죠. 큐레이터 업무도 마찬가지거든요. 일이 팀을 이루어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업무 대부분이 매니지먼트, 즉 경영이에요. 주로 팀이 주체가 되어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건축과 상반된 일은 아니에요. 다만 ‘미술’이라는 다른 관심사가 생겼을 뿐,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아요.”

The Mint Institute AW 2008 Collection
해마다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해 사진, 일러스트 디자인, 패션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한다. 관객이 만나는 전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전시를 기획하고, 이를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이끌어가는 총체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전시를 기획하기 위한 리서치부터 소개할 콘텐츠, 작가 등을 고민하죠. 시의성을 가진 주제가 있는지, 어떤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 등 계속해서 깊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요. 전시 방향이 정해지고 본격적인 전시 준비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큐레이터는 지휘자가 돼요. 전시 예산, 전시와 관련된 작가와의 계약을 비롯한 사무 작업도 진행하죠. 작품의 운송 일정, 전시 공간 디자인을 비롯해 바쁜 일정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작가와 예술적인 유대감과 교감을 형성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큐레이터는 전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는 ‘멀티태스커(multi-tasker)’라고도 할 수 있죠.”

The Stiff Neck Chamber AW 2013 Collection
하나의 전시를 구상하여 대중의 눈앞에 내놓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작가마다 상이하다.

“〈트로이카 전〉의 경우에는 전시로서 대중에게 소개하고자 처음 논의했던 시점으로부터 4년 만에 전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준비하는 데까지 1년이 넘게 걸렸고, 설치까지 하면 한 달 보름 정도 소요되었어요. 이번 〈헨릭 빕스코브 전〉의 경우 2년 여 준비기간이 걸렸어요.”

큐레이터는 아티스트의 작품과 예술세계, 그리고 관객을 이어주는 매개자다. 작가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조력자인 한편, 국내 관객들도 고려하여 전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전시를 기획하는 원칙과 기준은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할 때 관람객의 주요 타깃층을 설정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오히려 ‘콘텐츠’라는 요소에 중점을 두고, 이를 어떻게 스토리텔링할지를 연구합니다. 전시를 선정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직관을 중요시하는 편이에요. 장기적인 리서치를 해오면서 팀원들이 다 같이 토론하고 최종적으로 전시를 선정할 때 느낄 수 있는 직감이라고 할까요. 전시를 기획하면서 좋은 콘텐츠라는 믿음, 가슴으로 와 닿는 감동,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순간이 있을 때 전시를 잘 준비할 수 있고, 관객들도 좋은 전시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포스터(왼쪽)와 〈헨릭 빕스코브〉 전시회 포스터.
대림미술관에서 12월 말까지 전시하는 〈헨릭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는 역동성이 살아 있다. 입구부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패턴, 여성의 가슴 모양을 한 조형물, 검은 플라밍고의 목을 길게 늘어뜨린 구조물이 눈에 띈다.

“헨릭은 패션쇼를 준비하면서도 공간 연출에 많이 관여해서 신경을 쓰는 아티스트예요. 그의 공간 활용도를 대림미술관에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많이 연구했어요. 큰 규모의 런웨이를 대림미술관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으로 옮겨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거든요. 패션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굉장히 순간적이죠. 역동적인 패션쇼와 그의 오브제들을 대림미술관이라는 정적인 공간으로 옮기면서 어떻게 하면 ‘패션쇼’가 주는 현장감과 생동감을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패션·사진·설치·영상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서 활동해온 헨릭 빕스코브는 아직 국내 관객에게는 익숙지 않은 이름이다. 국내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그의 예술관을 소개한다는 것이 실험적인 시도라고 느껴졌다.


“헨릭과는 2년여 함께 작업을 해오면서 신뢰를 쌓았어요. 국내에는 인지도가 낮아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 〈헨릭 빕스코브 전〉을 기획하게 됐어요. 전시의 스펙트럼을 넓힐수록 관객들의 시야도 넓어지니까요. 아무리 낯설게 느껴지는 콘텐츠라도 저희만의 언어로 쉽게 풀어서 보여드리면 관객의 이해도도 좀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대림미술관은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모토로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전시를 비롯해 파티, 워크숍, 콘서트, 명사 초청 프로그램 등 미술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다. 2012년 개관한 대림미술관 한남동 전시장 ‘구슬모아 당구장’에서는 적극적인 의미의 지역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지역 주민이나 학생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12월 5일에는 한남동 독서당로에 또 하나의 전시 공간 D뮤지엄이 문을 연다. 대림미술관이 개최하는 대부분의 전시회에서는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관객들은 전시의 주인공이 되어 예술적 공감을 느끼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예술 문화작품은 인생의 영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전시를 준비하면서 영감을 받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아직까지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도 한번 봐야지’ 하는 것처럼 ‘이 전시도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즐겨찾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열린 마음으로 전시를 받아들인다면 순수예술 등의 전시를 포함해 미술관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더 많은 대중을 초대할 수 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친숙한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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