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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의 배후를 노래하다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송재학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사진제공 : 송재학
1센티미터 두께의 손가락을 통과하는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국경선이 있는 손바닥은
역광을 움켜쥐었다만
실핏줄이 있는 종려 이파리는 어찌 얼비치는 걸까

구석구석 드러난 명암이기에
손가락은 눈이 없어도 표정이 있지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
환해서 비릿한 슬픔

손바닥의 넓이를 곰곰이 따지자면
넝쿨식물이 자랄 수 없을까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송재학 시집, 《검은색》 문학과지성사, 2015


송재학 시인의 색채를 향한 호기심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자연과 문명세계는 실로 다양한 색깔들의 향연을 보여준다. 자연의 질감, 빛, 색은 우리의 감각과 더불어 “느낌-느껴짐의 불꽃”(모리스 메를로-퐁티)으로 타오른다. 햇빛이 쏟아지는 봄날 개나리꽃은 노랑으로 범벅되고, 만개한 벚꽃은 우아한 흰빛의 덩어리로 세상을 환하게 물들일 때 우리 마음도 노랑과 흰빛으로 함께 물든다. 새벽의 푸른빛, 일몰의 주황빛, 세상을 덮는 한밤의 검정은 세상을 바꾼다. 이 색깔들에 마음이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시인은 이미 전 시집들에서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검은색에 대한 편애를 드러낸 바 있다. 이를테면 “검은빛은 죽음이 아니다, 비애가 아니다 검은빛은 환하다”(〈주전〉, 《푸른빛과 싸우다》), “검은색이 엄마이고 검은색이 따뜻하다”(〈왜 젖꼭지는 까매지는가〉, 《날짜들》) 등과 같은 구절들은 인상적이다. 검은색에 덧씌워진 인식, 즉 검은색이 죽음이나 비애로 환원되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그 자취를 따라가는데, 그 사유는 집요해서 마침내 “내가 원했던 검은색이다”(〈검은 창고〉, 《검은색》)에 이른다.

음양학에서 검은색은 음색(陰色)이다. 양이 높고 따뜻하다면, 음은 낮고 춥다. 오행 중에서는 현무에 해당한다. 계절은 겨울이고, 방위는 북쪽이며, 흙의 기운을 품는다. 색채의 위상학에서 검은색은 낮고 무겁다. 낮고 무거워서 위로 솟구치지 않는다. 아래로 하강하며 가라앉는다. 검은색은 밤의 어둠, 까마귀, 오골계, 옻칠, 숯, 먹, 밤의 물빛 따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계열과 분포는 놀랍도록 넓다. 검색(黔色), 날색(涅色), 담색(黮色), 담색(黕色), 로색(玈色), 맘색(鋄色), 묵색(墨色), 미색(黴色), 오색(烏色), 유색(黝色), 이색(黟色), 이색(鯬色), 조색(早色), 참색(黲色), 추색(緅色), 치색(緇色), 칠색(漆色), 현색(玄色), 흑색(黑色)이 다 검은색에 속한다. 이들 검정은 동공을 거쳐 마음 안쪽에 도달하는 순간 무의 심연으로 바뀐다. 검은색을 사유할 때 이것은 몸과 생각마저 물들인다.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에서 햇빛은 손바닥의 두께를 투과한다. 손바닥은 햇빛을 투과해내면서 다양한 명암과 표정을 짓는다. 투과하는 햇빛은 손바닥의 두께가 만드는 불투명성에 대한 빛의 승리다. 햇빛이 투과할 때 손바닥은 “불투명한 분홍 창” “실핏줄이 있는 종려 이파리” “분홍 스테인드글라스”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검은색이 빛의 부재에서 발군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햇빛은 빛의 과잉에서 파열한다. 검은색이 응집이라면 빛은 파열이고 분산이다. 검은색이 심연의 불투광성이라면, 빛은 가벼이 흩어지면서 투과성으로 번져나간다. 이 대조는 뚜렷하다. 검은색은 심연이고, 표면은 빛으로 물든다.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는 송재학의 시 중에서 비교적 쉬운 시다. 시인은 햇빛에 손바닥을 비춰보며 놀이를 스냅사진 찍듯 세세하게 묘사한다. 시인은 손바닥을 움켜쥐고 펼치며 역광에 비춰보는데, 이 놀이는 이윤과 생산성을 목적하지 않는 점에서 천진한 놀이다. 손바닥에 국경선이 있다든지, 손가락은 눈이 없지만 표정이 있다든지, 손바닥의 넓이를 따져 거기에 넝쿨식물이 자랄 수 있는지, 손바닥에 새겨진 인동초 지문 따위에 대해 상상을 펼친다. 상상의 명료함에 반해 시적 전언은 애매하다. 사실 송재학의 시들 대부분이 애매하다. 도대체 뭘 얘기하려고 하는 거지? 하지만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는 소소한 것들을 묘사하고 이미지를 변주하는 놀이를 즐긴다. 이 시는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이미지를 만드는 놀이인 것이다.

손바닥은 역광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통과시킨다. 손바닥은 투명한 게 아니지만 빛을 투과한다. 손바닥이 살아 있음을 집약하는 표상이라면 이 시가 묘사하는 순간은 살아 있음과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보고다. 햇빛이 손가락을 물들이고 손바닥을 투과하는 순간을 차갑게 묘사하는데, 유일하게 주관적 감정이 노출되는 시구는 “햇빛이 고인 손톱마다/환해서 비릿한 슬픔”이라는 구절뿐이다. 시인은 슬픔이 환해서 비릿하다고 쓴다. 손의 슬픔은 곧 살아 있음의 슬픔이다. 슬픔이 환한 것은 이것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산 것들은 이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비릿하다. 이 비릿함은 살아 있음의 비루함을 감각의 범주에서 풀어내 명증화한 것이다. 숨결 가진 것들은 비릿함을 품는데, 바로 산 것의 냄새요 맛이다.

손바닥은 햇빛을 투과해낸다. 이 투과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괴로운 것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실핏줄이 있는 종려 이파리”라는 수려한 이미지를 얻은 이 신체의 일부는 “환해서 비릿한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몸은 세계 바깥에 있지 않고 직물같이 세계 안으로 짜여 들어가는 것. 그래서 몸과 세계는 하나고, 차라리 세계는 우리 몸의 연장(延長)이다. 이목구비가 없는 것들, “때로 몸이고 생각”인 것들, 세계-몸은 어둠[검은색]이고, 이것은 배후다. 빛의 배후는 큰 존재이고, 검은색은 빛의 후광이다. 시인은 햇빛이 아니라 바로 이 검은색의 탐색자다. 시인은 검은색의 사유를 밀고나간 끝에 자신을 검은색의 아들이자 사제이고, 그 변호인이라고 자부한다. 검은색은 오랫동안 시인의 미학적 사유의 기초였다. 검은색이 가리키는 것은 실재의 부재다. 거꾸로 모든 것은 부재의 실재다. 그래서 시인이 손의 슬픔, 생명의 슬픔, 아름다움의 덧없음에서 반향된 슬픔에 대해 쓸 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생명의 덧없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슬픔을 마중한다!


송재학(1955~ )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치과의사로 일했다. 낮에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책들을 읽고 시를 썼다. 지금까지 이중생활을 너끈히 견뎌내는 중이다.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고 시단에 나왔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임상의학적 관찰에 바탕을 두는 차가운 객관주의에 주관적 상상력을 덧대는 시들을 써냈다. 그의 시들이 자아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최근 도달한 지점은 ‘검은색’이다. 검은색은 이목구비가 없는 것들의 몸이고 생각이다. 검은색은 다만 검지 않고 그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낸다.

그것은 “검고 깜깜하거나 거무죽죽하며 거무스름하면서 꺼뭇껏뭇한 얼룩”(〈검은 창고〉)이다. 그간 시집 《얼음시집》 《푸른빛과 싸우다》 《진흙 얼굴》 《내간체를 얻다》 《날짜들》 등과 같은 인상적인 시집들을 펴냈다.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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