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티 랩스타(PRETTY Rapstar) 최삼

누군가는 언더그라운드를 지켜야죠

때로는 가난이, 사랑이/ 죽음보다 더 큰 죄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는/ 골백번을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사람으로는, 사람으로는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 〈위재량의 노래〉(feat 최삼) 중


음악전문 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면서 힙합이 성큼 다가왔다. 래퍼의 인기와 장르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언급되던 래퍼 최삼은 장고 끝에 출연을 고사했다. ‘이것이 힙합의 전부인가?’라는 고민, 누군가는 언더그라운드를 지켜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다.

사진 : 사운드홀릭 제공
최삼은 지난 10월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위재량의 시(詩) 〈이곳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위재량은 30년 경력의 청소 공무원이다. 살면서 떠오르는 심상을 시로 남기는데,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보니 발표할 곳이 없다. 최삼은 생각했다. 래퍼들도 떠오르는 심상을 가사로 쓴다. 그리고 세상에 낸다. 등단하지 않았다고 해서 알려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위재량의 노래’는 나지막한 콘트라베이스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선율 위로 최삼이 그의 시를 읊조린다. ‘이곳은 숱한 사람들이/ 남몰래 베갯머리 흥건히 적시기도 하고/ 더러는 신명나게 덩실덩실 춤도 추면서…’ 노래를 듣다 생각했다. 이것이 힙합인가?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힙합이란, 음악채널이 노출하는 래퍼들과 그들의 배틀이 전부가 아닌가. ‘쎈 언니들의 쎈 경쟁’만 보여주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힙합이라는 한 장르를 소개하는 데는 다소 불친절한 입문서일 수도 있겠다.

“힙합계 안에서도 의견이 갈려요. (프로그램이 많아져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옛날보다 돈 벌기도 쉽고, 훨씬 편하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도 있어요. 근데 저는 돈이 우선이 아니거든요. 힙합 잘 모르는 분들이 ‘힙합은 디스잖아, 서로 욕해도 되잖아’ 하는 것도 싫고요. 아무래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다 보니까 힙합 자체를 평가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힙합은 약자를 위한 음악

이런 고민은 MC 메타와 함께 만든 곡 ‘쇼미더힙합’에 드러났다. ‘힙합은 없는데 힙합이 팔리는’ ‘약자를 위한 음악이 약자를 공격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힙합은 1970년대 뉴욕의 브롱스에서 시작된 거리문화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음악, 패션, 그림 등을 공유했다. ‘Hiphop’은 ‘튀다, 생기 있다’는 뜻으로 약자이자 소외층이던 이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담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었다. 자기 앞의 벽을 통통 치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라임’ ‘플로’다.

“즐거우려고 하는 음악인데, 왜 서로를 상처 주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최고야’ ‘내가 제일이야’라는 자신감은 좋지만, 다른 이들을 짓밟으면서 만든 자신감은 아니라고 봐요.”

약자를 위한 음악, 힙합은 어린 최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또래들이 듣던 대중가요에는 사랑과 이별, 달콤한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내가 왜 태어났고, 왜 사는 것이며, 왜 여기 있는가를 고민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계속 머리로만 생각하니까 혼자만의 세계가 ‘안드로메다까지’ 갔다. 그러다 힙합을 만났다. 누가 써준 가사가 아니라 자기가 쓴 가사를 스스로 부른다는 게 좋았다. 그의 나이 열아홉, 아직 힙합은 남자들의 세계였다.

“제가 힙합을 시작할 때만 해도 데모테이프를 낼 수 있는 데가 힙합 커뮤니티밖에 없었어요. 힙합은 남자가 생산하고 여자가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죠. 힙합이 알려지긴 했지만 전체 문화가 부흥한 건 아니었어요. 여자 래퍼에 대한 관심이 덜했죠.”

“기본이 없다”는 혹평을 들으면 더 독하게 연습했다. 대학 시절부터 힙합 전공자 중 여자는 최삼 하나였다. 누구보다 기본기에 충실했고, 연습실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도 그였지만, 연습밖에는 길이 없었다.


“도대체 기본이 뭔가 싶더라고요. 사람은 칭찬 10개를 들어도 욕 한 번 들으면 그것만 생각나잖아요. 저 자신이 실망스럽더라고요. 1년 정도 잠수를 타면서 연습만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 잔 마시고 하루 종일 랩만 하는 거예요. 하다가 걸리는 부분은 가사를 바꾸고요. 소리를 낼 때 불편한 경우가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하면 편하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잠도 안 자고 매일 그렇게 지냈어요.”

그의 본명은 최지혜다. 음악을 하면서 이름을 ‘최삼’으로 바꾸었다. 고향인 대구의 지역번호 ‘053’에서 따왔다. 대구에 살 때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다. 음악만 들었고, 음악만 만들었다. 그의 랩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홍대란 곳에 오게 됐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도, 홍대도 낯설었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 “랩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최고로 행복”했다. 자신을 찾는 무대라면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힙합을 듣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랩은 초등학교 때부터 했고요. 집에 아버지가 듣던 CD가 있었어요. 그때 처음 알았죠. ‘왁~’ 이렇게 쏟아내는 음악이 있구나 싶어서요. 베이스가 웅웅 울리고 비트가 쿵쿵 울리는 게 좋았어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울 일이 많았거든요. 우는 건 ‘헉헉’거리면서 울 수 있는데, 그러고 나면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픈 거예요. 계속 울 수가 없어서 랩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뱉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시원해지더라고요. 그러다 궁금해졌어요. 이 랩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하는 건지.”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던 최삼의 음악은 대중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갔다. 이윽고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말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여성 래퍼가 되었다. 이 소식은 음악채널 담당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던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러브콜이 왔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힙합이라는 문화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예요. 제가 방송에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 걸 버틸 자신도 없고요. 남들이 좋다고 해도 저한테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니까요. 또 하나는 저는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사람인데, 저마저 방송에 나가면 언더그라운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역시 방송에 나가야 하나’ 싶을 것 같았어요.”


‘가진 건 없지만 내가 최고야’란 느낌으로

방송을 접고 공연을 했다. 사운드 홀릭에서 주최하는 〈투데이 익스프레스〉는 아티스트 한 명의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언더그라운드 공연이다. 11월 7일 최삼의 공연은 전석이 매진되면서 성황리에 마쳤다. 최삼은 인터뷰 중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한 일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었다. 결국 ‘자기 이야기를 적는’ 힙합을 하면서 그는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 언제 행복한지, 언제 불행한지.

“지금은 멋있어서 (힙합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처음에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할 데가 없어 답답한 아이들이 힙합을 통해서 막 토해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짱이고, 내가 최고야’ 이게 주류예요. 예전에는 ‘내가 가진 건 없지만 내가 최고야’ 이런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돈이 많고, 내가 여자가 많고, 내가 제일 잘나가니까 내가 최고야’가 된 것 같아요.”

약자를 위한 음악이 기득권을 갖게 되면서 약자를 ‘조롱하는’ 음악이 된 것이 그는 영 불편한 모양이다. 최삼이 가사 속에서 사나워질 때는 약자에 대한 디스가 난무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다. 그럼 그는 마음을 다해 그들을 디스한다. 힙합의 정신을 지키려고, 랩이 살아 있는 무대를 지키려고.

“강아지들도 보면 덩치가 작은 개들이 더 사납게 짖어요. 자기를 지켜야 하니까요.”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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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 2015-11-25 )    수정   삭제 찬성 : 64 반대 : 52
최지애에요 기자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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