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자재로 ‘공사장’ 시리즈 만드는 작가 이찬주

“아저씨가 하는 일도 예술이에요”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합판·각목·철근·시멘트. 언뜻 평범해 보이는 재료들은 건설 현장에서 나온 폐자재다. 버려지는 쓰레기로 작품을 만드는 젊은 작가가 있다. 막노동 현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공사장’ 시리즈를 선보이는 이찬주 작가다. 그는 지난달 용인포은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청춘, 밤에 뜨는 열기구〉 전시에서 폐자재로 만든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에는 ‘노동의 현장이 곧 예술의 현장’이라는 이야기가 담겼다.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이른바 N포 세대의 세태도 반영돼 있다. 그의 작품이 소개된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좋아요’를 눌렀다. 절대 다수가 그와 같은 동세대 젊은이들이었다.

사진제공 : 이찬주
이찬주 작가를 만나러 가천대학교로 향했다. 늦은 저녁, 예술대학 한쪽에 자리 잡은 창고에 불이 켜졌다. 조소과 창고 건물이 그의 작업실이다.

가천대 대학원 조소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주중에는 실습조교로 근무한다.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조교 근무가 끝난 평일 저녁. 주말에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 많다.


학자금 대출, 월세, 휴대폰 요금… 우리는 ‘88만원’ 세대

그가 처음 ‘노가다 판’에 나간 것은 군 제대 후 2학년으로 복학했을 때였다. 쌍둥이 동생 둘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삼남매의 한 학기 등록금만 1500여만원.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용돈과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벌어야 했다.

“저는 그나마 첫째라 혜택을 봤어요. 1학년 때는 부모님이 등록금을 내주셨거든요. 쌍둥이 동생 둘은 처음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았어요. 우리 집이 못사는 편이 아닌데도 한 번에 1500만원은 무리죠. 요즘 대학생들은 대부분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로 시작해요.”

파주 집에서 성남시에 위치한 학교까지는 통학이 불가능한 거리. 같은 과 후배인 동생과 친구 몇 명이 어느 건물의 지하실을 빌렸다. 한쪽에 합판으로 가벽을 세워 방을 만들고 수도를 끌어다 세면대를 달았다. 작업실 겸 자취방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취하면서 집다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네요. 학생들 중에는 자취방 월세 아끼려고 학생회실을 전전하며 사는 친구들도 있어요.”

우리의 집은 없다_ 시멘트, 혼합재료
주중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한 달에 필요한 돈을 따져보니 월세, 학자금 대출 상환금, 휴대폰 요금, 식비… 시급 몇 천원짜리 카페 아르바이트로는 계산이 안 나왔다.

“계산해보니 80만원 정도 됐어요. 80만원으로는 빠듯했어요. 가끔은 라면 한 개로 하루를 나거나 친구한테 빌붙어야 할 정도로. 그러고 보니 정말 ‘88만원 세대’네요.”

선배 따라 인테리어 시공 현장에 나가 ‘시다 노릇’을 하고 일당 5만원, 6만원을 벌었다. 전공을 살려 조형물 설치 현장에도 나갔다. 일당은 현찰로 받았다.

모란시장 인근의 인력사무소에 나가봤다. 인력사무소가 문을 여는 시간은 새벽 4시. 그보다 일찍 줄 선 노가다 아저씨들. 그는 초보라서, 학생이라서 뒤로 밀리기도 했다.

“저는 알바지만 아저씨들은 ‘노가다’가 생업이잖아요. 오늘 일당으로 먹여살릴 가족들이 집에서 기다리는 거잖아요. 뒤로 자꾸 밀려나고 그날 하루 허탕을 쳐도 화나지 않았어요.”

운 좋게 뽑히면 사무실 앞에 주차돼 있는 봉고차를 타고 공사 현장으로 간다. 광주・용인・동탄. 어떤 날은 아파트를 지었고, 어떤 날은 빌딩을 올렸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죠. 황폐한 황무지에 건물을 올리는 일이잖아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수직과 수평의 구조가 씨실 날실처럼 짜여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가 하는 작업이나 아저씨들이 짓는 건물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공사판에서 발견한 예술


어느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전철을 탔는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했다. 시멘트를 개고 벽돌을 나르다 왔으니 차림새가 지저분해서, 땀 냄새가 나서 그런가 보다 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불쾌함과 경멸이 깔려 있었어요. ‘배운 것도 없고 게으르니까 저런 막노동이나 하는 거지.’ 화가 났어요. 노가다 하는 아저씨들 엄청 부지런해요. 사무소 문 여는 새벽 4시 전부터 나와서 기다려요. 자기가 하는 일에 신념도 있고 자부심도 강하고요. 외국에선 이런 노동자들을 인정하고 대우해주잖아요. 우리 사회는 왜 이렇죠?”

그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멸은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의 산물이라는 것을.

“공사장에 버려진 폐자재로 아저씨들이 하는 것처럼 구조물을 만들었어요. 합판과 철근으로 골조를 세우고 시멘트로 ‘공구리’를 쳤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 작품을 보고 멋지대요. 제가 하면 예술인데 아저씨들이 하는 건 노가다라고 하죠. 아마 제가 만든 걸 보면 아저씨들이 뭐라 할 거예요. 왜 이렇게 엉터리로 지었냐고.”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합판과 각목, 철근 등을 가져다 ‘공사장’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500/30〉 〈1000/100〉 〈우리의 집은 없다〉 등의 작품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연애・취직・차・집 등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동세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500/30〉 하면 뭐가 연상되세요? 보증금 500에 월세 30이 떠오를 걸요? 딱 봐도 싸구려 옥탑방 같죠. 내가 진짜 이렇게 살다가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차를 가질 수 있을까?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500/30_ 시멘트, 혼합재료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전망은 불투명하다. 어느 미대든 전공생 중에 겨우 한두 명만이 전업 작가의 길을 간다.

“우리 세대는 누구나 불안한 미래를 떠안고 있어요. 기성세대가 안정된 미래를 손에 쥐고 놓질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예술을 한다고 더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어떤 직업보다 능동적으로 삶을 살 수 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작업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느 예술가나 그렇듯이 죽으면 제 작품이 세상에 남겠죠. 경제적으론 풍요롭지 못하겠지만 보람 있고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사장’ 시리즈의 최종 종착지는 모란역 사거리다. 인력사무소가 모여 있는 그곳에서 노상 전시회를 여는 게 그의 새해 목표다.

“인력사무소에 나왔다가 허탕 치고 집에 갈 때는 얼마나 허무한지 몰라요. 고작 알바인 제가 그럴진대 아저씨들 마음은 더하겠죠. 그래서 현장에 못 간 아저씨들은 인력사무소 근처 편의점 앞이나 길에서 술을 마셔요. 그 길 위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아저씨들이 하는 일도 예술이라고. 아저씨들이 짓는 건물이 사람들이 칭찬하는 작품이 된다고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일본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화가 오카모토 타로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은 누구나 예술가이며 그 분야의 천재다. 다만 편견에 가득 찬 선입견을 갖고 있어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할 뿐이다.”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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