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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이곳으로 와서 나무가 되어요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공광규〈수종사 뒤꼍에서〉

신갈나무 그늘 아래서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서 오는 작은 강물과
작은 강물이 만나서 흘러가는 큰 강물을 바라보았어요
서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몸을 합쳐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지나온 삶을 풀어놓다가
그만 똑! 똑! 나뭇잎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눈물에 반짝이며 가슴을 적시는 나뭇잎
눈물을 사랑해야지 눈물을 사랑해야지 다짐하며
수종사 뒤꼍을 내려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서 뒤돌아보니
나무 밑동에 단정히 기대고 있는 시든 꽃다발
우리는 수목장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던 거였지요
먼 훗날 우리도 이곳으로 와서 나무가 되어요
나무그늘 아래서 누구라도 강물을 바라보게 해요
매일매일 강에 내리는 노을을 바라보고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

공광규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하나의 풍경은 곧 하나의 삶이다. 빛의 은총 속에서 빛나는 풍경을 응시하는 자는 풍경으로 육화된 삶을 응시하는 자다.

삶이 여러 겹의 경험들로 만들어지듯 풍경은 장소와 시간의 겹으로 이루어진다. 풍경은 일조량과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같은 풍경이라도 동틀 녘의 풍경과 해 질 녘의 풍경은 얼마나 다른가! 풍경은 보는 자의 시간과 감정이 겹쳐지면서 무수한 풍경으로 거듭난다. 땅과 바위와 나무들 따위 도무지 부동할 것만 같은 고형물들도 변화의 흐름에서 비켜서지 못한다. 땅은 얼었다

녹으며 조금씩 달라지고, 바위 표면은 미세하게나마 비바람에 깎이고 닳아지며, 나무들도 계절을 넘기면서 제 속에 생장점의 켜를 늘려간다. 그러니까 작년의 흙은 올해의 흙과는 다르고, 작년의 바위는 올해의 바위와는 다르며, 작년의 나무는 올해의 나무와는 당연히 다르다. 풍경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지만 풍경 이면의 진실까지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풍경은 제 표면의 심연이다.

시의 화자는 수종사 뒤꼍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두물머리 풍경을 바라본다. 수종사는 높은 곳에 있는 절이고, 두물머리는 평평한 들에서 넓어지는 물이니 지대가 낮다. 시인은 신갈나무 그늘이 있고, 생강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멀리 낮은 지대의 물을 조망한다. 거기 작은 강물이 합쳐지며 큰 강물을 이루는 것을 바라보며 물들이 “서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몸을 합쳐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고 쓴다. 작은 물길들이 큰 물길에 닿아 저를 포기하고 큰 물길에 투항하듯 합수하는 것인데, 여기에 이르러 물은 더 이상 격류 없이 잔잔해진다. 시인은 여러 곳에서 흘러온 물들이 합종연횡하면서 넓은 물을 이루는 두물머리 풍경에 슬며시 삶을 겹쳐본다. 사람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큰 세상을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시간은 선조적(線條的)으로 진행되는 한 흐름이지만, 그 차원은 여럿이다. 우선 그것은 세 차원이다. 시간의 세 차원은 바로 과거·현재·미래다. “우리는 크고 작은 우연한 사건을 과거에, 걱정과 욕망은 현재에 저장한다. 그리고 미래는 희망과 의지만을 담는 순결한 그릇이다.”(로버트 그룬디,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 55쪽) 시간은 살아 있는 것에게 열려 있고, 유기체로 스며서 그 일부를 이룬다. 사람이 겪는 성장과 노화도 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겪는 생물학적 사건들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조망 속에서만 삶은 그 의미를 드러낸다.

물이 흐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듯 인생 역시 쉼 없이 흔들리면서 나아간다. 유년기가 물이 솟는 샘이라면, 청년기와 장년기는 세계의 한복판을 가르며 나아가는 거대한 강줄기이고, 강물이 하구로 나와 만나는 무한의 시간을 안고 출렁이는 바다는 인생의 마지막 기착지인 죽음의 은유로 빛난다. 시인은 작은 물들이 합쳐져 큰물을 이루는 풍경에서 인생을 꿰어보는 것이다.

시인은 수종사 뒤꼍을 떠나면서 제가 앉았던 자리가 수목장한 나무 그늘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나무 밑동에는 누군가 죽은 자의 골분을 뿌린 자리에 두고 간 시든 꽃다발이 있다. 꽃은 시들고 사람은 죽는다. 그 시든 꽃다발이 놓인 나무 그늘은 누군가가 수목장을 치르고 영원한 안식에 든 자리다. 뒤늦게 깨닫는다, 삶의 자리가 곧 죽음의 자리라는 인식인 것을! 그 인식의 끝에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와 나무가 되어 강물을 바라보자는 다짐이 새겨진다.

시인이 선 자리는 지형학적 은유로 말하자면 장년의 언덕이다. 장년은 출발과 시작의 때가 아니라 원숙해진 지혜 속에서 돌아오고 마무리하는 때다. 강물은 흐르고 흘러서 흐름이 없는 바다로 나아간다. 흐름이라는 점에서 강물은 시간의 지속을, 그 지속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을 강하게 환기한다.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은 시간을 쓰고, 보내고, 죽이는 존재다. 그렇다면 사람은 시간의 정복자인가? 진실을 말하자면,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에 안과 밖으로 포박되어 있는 존재다.

해마다 푸른 잎에서 붉은 잎으로 지는 그늘이 되어
한번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삶을 바라보게 해요

시인은 다시 한 번 되새긴다, 한번 흘러간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임을, 물도 생명도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임을. 시인은 이미 초원의 장례 방식인 평토장을 보면서 “이곳에서는 죽음도 자연이 박아놓는 은입사구름 문양 공예품이다”(〈죽음의 문양〉)라고 쓴다. 죽음의 문양에 대한 이 관찰은 담담하다. 이 담담함 속에서 시인의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숙고는 한층 깊어간다. 이 시는 삶의 수직적 높이[수종사]에서 죽음의 낮은 지대[두물머리]를 바라보는 구도인데, 이것은 이 시가 죽음에 대한 그윽한 바라봄이고, 받아들임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죽음은 삶의 단절이 아니라 돌연한 완성이다. 죽음으로써 생의 일회성은 확연해진다. 시인은 그 반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덧없고 애틋해진 인생을 노래한다.


공광규(1960~ )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충남 청양에서 자랐다. 시인의 눈길은 “소주를 주유하고/안주접시를 바퀴로 갈아 끼우고/술국에 수저를 넣어 함께 노를 젓고/젓가락을 돛대로 세워 핏대를 올려도 제자리인 인생”(〈낙원동〉)에 머문다. 제자리 인생이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을 못 면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인생, 음주와 노동이 한 쌍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인생이다. 시인은 서민들의 생과 식솔들의 안부를 두루 섬긴다.

그의 정서는 고향, 가족, 죽음 따위에 들러붙어 바글거린다. 그의 감성과 상상력은 이 고색창연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나이가 들어 찾은 고향집은 “먼지와 벌레가 주인이 되어버린 빈집”(〈백운모텔〉)이다. 이 빈집에서 금방 쓸쓸해진 것은 혼자 사는 이혼한 여동생 생각과 더불어 “젊은 나이에 병들어 울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도 생각나고/늙어서 불경을 외우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멘 까닭이다.(〈백운모텔〉) 시인은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고, 지금까지 시집 《대학일기》 《지독한 불륜》 《담장을 허물다》 등을 펴냈다.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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