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행위예술가 스텔락

신체는 고루하다 (The human body is obsolete)

글 : 오주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졸)  / 사진 : 하지영 

‘신체는 고루하다(The human body is obsolete).’
호주 커틴대 교수이자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스텔락(Stelarc)이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그는 연약한 인간 신체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인간과 기계와의 친화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자신의 신체와 기계장치를 결합한 퍼포먼스를 발표해왔다. 그중 1982년에 발표한 〈제3의 팔(The Third Arm)〉과 2007년에 자신의 팔에 귀를 이식한 〈팔 위의 귀(Ear on Arm)〉는 전 세계 미술계와 각종 매체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9월 이화여대 인문과학원에서 주최하는 국제학술대회 〈휴머니즘을 넘어서: 휴머니즘에서 포스트트랜스 휴머니즘?〉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스텔락을 만나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제공 : 스텔락
기계와의 결합으로 인체의 한계 극복

“트랜스 휴머니즘은 제가 하는 예술 퍼포먼스와 아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은 분야입니다. 그래서 이번 학술대회의 모든 강의에 참여하면서 강연을 들었고,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문화적 운동이다. 장애・고통・질병・노화・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생명과학과 신생기술이 그런 조건들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스텔락의 예술작품은 트랜스 휴머니즘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기계를 신체에 장착시켜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현대미술에서도 첨단 분야인 사이보그, 바이오아트, 신체변형미술의 선구자로 명실상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스텔락이 내놓은 작품들은 신체와 기계의 결합, 신체의 내부와 외부의 결합, 신체와 인터넷의 결합 등 ‘결합’을 통해 신체를 확장했다.


〈제3의 손〉은 배와 다리 근육에 연결된 로봇팔을 본인의 오른손에 장착했다. 신체의 근육운동에 따라 3개의 팔이 동시에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제 3의 손〉 퍼포먼스에서 그는 로봇 팔로 공을 집기도 하고 손목을 290도까지 돌리기도 했다.

“3개의 손을 이용해서 ‘EVOLUTION(진화)’이라는 글자를 썼어요.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였죠. 2개의 눈으로 3개의 팔이 하는 일을 봐야 해서 굉장히 어지러웠어요(웃음).”

1999년에 발표한 〈엑소스켈레톤(exoskeleton)〉은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온 다리 8개 달린 악당, ‘옥터퍼스’를 떠올리게 한다. 로봇 다리 6개가 달린 기계를 타고 스텔락이 직접 조종한다. 로봇 다리들은 전후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

“인간의 몸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진화를 거듭하며 세상에 적응해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연약하게 디자인되어 있기도 합니다. 단 몇 분만 숨을 멈추면 우리는 죽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멈추면 우리는 죽어요. 온도가 단 2~3℃만 변해도 우리는 심각하게 아플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신체의 디자인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우리가 생물학적인 신체에만 순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Exoskeleton _ Cankarjev Dom, Ljubljana
Photographer- Igor Skafar Stelarc
그리스 출신인 스텔락의 본명은 ‘스텔리오스 아르카디우(Stelios Arcadiou)’다. 그는 다른 사람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스텔락’으로 이름을 바꿨다. 호주 멜버른 왕립공대로 유학을 간 그는 예술을 전공했고 미술공예 특수교직을 이수했다.

“고정된 이미지를 그리는 전통예술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는 것을 잘하지도 못했고요(웃음). 그 대신 몸으로 직접 예술을 표현하는 데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기계와의 결합으로 인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스텔락은 멜버른에 정착해 예술 활동에 몰두했다. 1970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요코하마국제학교에서 예술을 가르치며 접한 아시아의 첨단 테크놀로지가 그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와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다.

“과학기술에 대한 제 지식은 정말 일반적인 수준이었어요. 단순히 과학의 이론과 철학에만 관심이 있었죠. 하지만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실질적인 기술을 발전시키게 되었습니다.”


예술이 흥미로워질 때는 놀라움을 줄 때


그의 작품 중 대표작은 〈팔 위의 귀〉다. 2006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자신의 왼팔에 연골로 배양한 인공 귀를 이식한 것이다. 이는 신체적・기술적은 물론 의학적으로도 어려운 도전이었다. 작품 아이디어는 1996년에 떠올렸지만 실현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전문의들이 수많은 상의를 거쳐 수술을 진행했고, 수술을 통해 팔에 귀를 결합했고 세포가 자랐다. 수술 후 귀를 자라게 하기 위해 많은 양의 호르몬제를 직접 몸에 투여했고,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려는 과정에서 감염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팔 위의 귀〉는 그의 신체 중 일부가 되었다.

“단순히 귀를 이식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와이파이가 연결된 작은 마이크를 제3의 귀 안에 설치하는 추가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 누구나 원하면 〈팔 위의 귀〉로 접속해 제가 듣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24시간, 7일 내내 와이파이를 켜두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겁니다.”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스텔락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디어를 내기는 쉬워요. 얼마든지 낼 수 있죠. 제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아이디어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머릿속을 부유하는 아이디어를 실체로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현실화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워요.”

스텔락은 ‘관심을 끌기 위해 기행을 일삼는 예술가’라는 비평도 듣는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의견을 수용한다며 웃어넘겼다.

Ear On Arm_London, Los Angeles, Melbourne
Photographer- Nina Sellars Stelarc
그는 지난 8월 13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예술이 흥미로워질 때는 바로 놀라움을 줄 때이다. 왜냐하면 그 놀라움은 세상을 다시 보게끔 하는 불안, 불확실성 그리고 모순과 반응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스텔락이 심각한 부작용이나 신체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실험적인 예술을 하는 이유다.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 중 성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실패했죠. 제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고 충분한 투자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모두 기술적으로 또 신체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극한으로 내 몸을 몰아가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우리의 신체적인 조건을 초월한 예술작품을 내놨을 때의 희열은 그 어떤 고통도 감당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스텔락의 다음 작품은 그가 호주로 돌아간 9월 29일 호주 퍼스(Perth)에서 발표되었다. 〈프로펠(PROPEL: Ear on Arm Performance)〉이라는 작품으로 커다란 기계 팔에 사람이 매달려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수직・수평으로 이동하며 도는 예술 퍼포먼스다.

“원래 사람은 로봇팔 안쪽으로는 들어가면 안 돼요. 아주 위험하거든요. 위험하다고 해서 하지 않을 이유는 없죠. 기계에 연결된 인간의 몸이라니, 정말 아름다울 것 같지 않나요?”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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