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극장판’ 권다솜 대표

당신만을 위해 영화를 상영합니다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3번 출구에서 이슬람 사원을 향해 가는 길을 우사단길이라 부른다. 경리단길, 해방촌에 이어 우사단길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상업성보다 청년 아티스트들의 번뜩이는 ‘창업성’을 볼 수 있어서다. 이 우사단길 계단의 끝에는 ‘극장판’이 있다.
‘극장판’은 우사단길을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곳에 있다. 단골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찾아가는’ 재미가 극장판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나만 알고 싶은 마음’과 ‘오래오래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곳. 들어가 보면 그 마음이 이해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영화를 틀어주는 작은 영화관에는 상영시간표가 따로 없다. 영화를 고르고 자리에 앉으면 영화가 시작된다. 객석은 딱 여섯 개. 붉은색 푹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스크린을 응시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어? 정말 끝난 건가?’ 어안이 벙벙한데 극장판의 주인장이자 영화감독인 권다솜씨가 빙긋 웃으며 들어온다. 커튼을 걷어주며 묻는다. “영화, 어떠셨어요?”

극장판은 단편영화만을 상영하는 영화관이다. 괜찮은 단편영화들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들에게도 ‘극장판’이 될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마음으로 창업(?)하게 됐다.

시작은 부평로터리지하상가였다. 청년창업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돼 2014년 한 해를 운영했고, 계약기간이 만료된 뒤 이곳 이태원으로 옮겨왔다. 극장판은 입구부터 권다솜 대표의 손때가 묻어 있다. 손가락 표지판을 따라가면 극장판의 대문이 보인다. 플라스틱 박스를 쌓아 만든 테이블과 의자, 손수 만든 티켓과 브로슈어, 심지어 화장실 콘센트에도 대표의 재치가 묻어난다.

“인테리어 전문업체에 의뢰할 재정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게 되더라고요. 부평에서 계약을 연장해도 됐지만 우사단길로 오고 싶었어요. 골목길을 걸어서 찾아와야 하는 수고가 있지만 그 ‘찾아오는’ 맛도 있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영화를 틀려면 방이 있어야 했고요.”

예전 언젠가는 주택이었을 열 평(33㎡) 남짓한 공간이 지금은 영화관이 됐다. 권다솜 대표는 매표원부터 영사실 직원, 소품 판매원과 상영관 대표까지 도맡고 있다. 감독 겸 배우의 1인극 같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실제 주인공은 단편영화의 감독과 관객이기 때문이다.

“지난 7~8월에 관객이 굉장히 많이 왔어요. 1월에 문을 열고 6월까지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7~8월에 두 배씩 늘면서 300명 정도 영화를 보고 갔어요. 멀티플렉스 한 관을 꽉 채운 거나 다름없으니까 유의미한 일이었죠.”

심지어 그의 부모님도 이곳을 좋아하신단다. 그가 어릴 적부터 시네키드로 자랄 수 있었던 것도 영화를 사랑한 부모님 덕분이었다.

“처음에 제가 구상을 얘기했을 때 ‘빨리 하라’고 하셨어요. 아무도 안 하는 거니까 네가 해보라고요. 그렇게 응원해주신 덕분에 할 수 있었죠.”


단편영화만 상영하는 이유


극장판은 오후 1시에 문을 연다. 오후 9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하루 서너 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한다. 관객이 방문해 영화를 고르면, 상영관에 영화가 걸린다. 먼저 온 관객이 있다면 라운지에서 기다리면 된다. 기다림은 길지 않다. 영화 상영시간이 대부분 15~20분 내외다. 영화 한 편의 관람료는 2000원,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가도 되고, 영화관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어도 된다. 영화 관람료의 절반은 영화를 제작한 감독에게 간다.

“관람료는 오픈할 때부터 2000원을 고수하고 있어요. 보통 한 달에 서너 편을 트는데 네 편을 다 보더라도 장편영화 한 편의 가격을 넘기지 말았으면 했어요. 한편으로는 너무 싸면 단편영화의 가치를 너무 낮게 보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도 있죠.”

애초에 단편영화 감독들이 돈을 벌려고 영화를 만든 게 아니듯, 권다솜 대표도 영리를 목적으로 영화관의 문을 연 게 아니다. 단편영화가 상영될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몇 명의 관객이 그 영화를 봐주었는지 기억하는 것, 그렇게 다음 작품을 만들 동력을 채워주는 것이다.

“저도 영화연출을 전공해서 감독들이 단편영화로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상업영화나 장편영화는 공식적인 수치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단편영화는 그런 집계가 잘 안 돼요. 극장 운영하는 사람이 해주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권다솜 감독은 서울예대 영화과 07학번이다. 단편영화를 만들었지만 틀 곳이 없었다. 영화제에서 수상하지 않는 이상, ‘극장판’이 되어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작품은 숱했다.

“3개월에 한 번씩 계절별로 공모하고 있는데, 출품하는 감독들이 대부분 국내 영화제에서 한 번도 선보이지 못한 분이 많아요. 상영관이 있다는 걸 알고 제작을 시작해서 완성해온 분들도 있어요. 공모전에 들어오는 작품이 일정하지는 않아요. 신작은 25~30편 정도고, 중복 지원하는 작품도 있어요. 저희가 지원에 제한을 두지 않거든요.”

장르의 다양성을 생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탈락하는 작품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고민한다. 기회를 주려고 연 자리인데, 누군가는 기회를 잃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심사가 참 어려워요. 제일 고민되는 점은 ‘내가 떨어뜨리는 게 맞느냐’ 싶은 거예요. 심사할 때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관객의 시선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이 정도라면 이 돈을 내고 이 정도 시간을 내서 보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니까요.”

권다솜 대표는 한 달에 단편영화만 30~50편을 본다. 웬만하면 국내에서 열리는 영화제에는 참석해서 단편영화들을 보려고 한다.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 않지만, 극장판을 운영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판


“저는 영화를 볼 때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봐요. 그런데 관객들은 전혀 다른 눈으로 보더군요. 그런 반응들이 참 재미있어요. 관객의 눈으로 피드백을 받으니까 감독의 입장에선 득을 많이 보고 있죠. 그런 피드백을 만든 감독님들께 전해드리고 싶은데 그 점이 제일 아쉬워요.”

극장판의 관객은 커플 반, 여성 반이다. 남자끼리 오는 경우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로 드물다고 한다. 다르게 분류하자면 극장판의 관객은 단골 반, 첫 손님 반이다. 극장판에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적다. 무엇보다 다음 번에 올 때는 새로운 친구를 데리고 온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꼭 소개해주고 싶은 곳’,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아지트가 됐다. 특별한 관객이 생기기도 한다. 엄동설한이던 1월, 막 문을 연 극장판을 찾아온 첫 손님이 있다. 그들은 곧 극장판의 단골이 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영화학도였다. 시간이 흘러 그가 영화를 제작해 극장판 공모전에 출품했고, 그 영화는 공모전을 통과해 극장판에 걸렸다. 결과는 더 놀라웠다. 그 작품이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된 것. 다름 아닌 서윤수 감독의 〈도미노 레이디〉다.

“단편영화의 장점은 짧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선 지루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웃음). 영화가 끝나면 많은 분이 아쉬워해요.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고요. 보기엔 짧아도 만드는 건 어려워요. 그럼에도 영화를 계속하는 이유는 완성본이 나왔을 때의 보람 때문이에요. 극한의 과정이 계속되는데 그 과정을 넘어서 완성본을 보면 또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 하면 또 생각나서 안 할 수가 없어요.”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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