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신데렐라〉 배우 서지영·안시하

바보들이 꾸는 꿈, 기적을 믿나요?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뮤지컬계의 신데렐라’ 배우 안시하와 신데렐라보다 사랑받는 ‘요정’ 배우 서지영이 뮤지컬 〈신데렐라〉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케미’(호흡)가 왕자보다 더 달콤하다는 소문이다.

사진제공 : 엠뮤지컬
〈신데렐라〉에 함께 출연 중인 서지영(왼쪽)·안시하.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는 의붓언니와 새엄마가 부르던 이름이다. 이 재투성이 아가씨가 어떻게 왕자님을 만나 빛나는 드레스를 입고 변신하는가…는 뮤지컬 〈신데렐라〉의 관심사가 아니다.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기 전부터 다정하고 상냥한데다 자신의 새엄마나 의붓언니에게도 앙심을 갖지 않는다.

“그동안 따뜻한 작품을 안 했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오열하지 않고 행복하게 마치는 공연을 해보고 싶어서 〈신데렐라〉를 하게 됐죠. 전형적인데 전형적이지 않다는 것도 매력적이었거든요.”_안시하

뮤지컬 〈신데렐라〉가 동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전형성 안의 비전형성이다. 본래 디즈니의 신데렐라에서는 요정이 등장해 신데렐라의 드레스와 마차를 만들어준다. 요정은 신데렐라와 왕자의 사랑을 연결하는 일등 공신이다. 뮤지컬은 묻는다. ‘왜 요정이 나타나야 했을까.’

“왕용범 연출과 브로드웨이에서 〈신데렐라〉를 함께 보는데 너무 신선했어요. 연출이 “요정은 신데렐라의 엄마가 아니었을까?”라고 물어보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보통은 회사에서 먼저 작품을 제안해서 연출을 하게 되는데, 이번 작품은 왕용범 연출이 적극적으로 추천했어요. 한국에서 해볼 만한 작품이라고요.”_서지영

〈신데렐라〉의 ‘신 스틸러’ 요정 역을 맡은 서지영은 20년 경력의 베테랑 배우이자, 왕용범 연출의 아내다. 한때는 연출의 아내라는 이유로 캐스팅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협력자이자 동반자가 됐다. 〈신데렐라〉에는 안시하・서현진・윤하・백아연 등 4명의 신데렐라와 엄기준・양요섭・켄・산들 등 4명의 왕자가 출연한다. 요정 마리 역은 서지영과 홍지민이 더블 캐스팅됐다. 신데렐라와 왕자의 호흡만큼이나 신데렐라와 요정의 ‘케미’가 화제가 되는 이 공연에서 안시하-서지영 콤비의 호흡은 명불허전이다.


왕자보다 애틋한 요정과의 호흡


“시하나 저나 앙상블에서부터 차곡차곡 올라왔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있어요. 이런 친구들이 잘해주어야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어요. 워낙 기본기가 탄탄한 친구라 무대에 오르면 믿음이 가요. 제가 어떤 액션을 보내도 리액션을 해줄 것이라는 든든함이 있죠.”_서지영

“요정을 만나면 신데렐라뿐 아니라 관객들도 행복해하는 게 보여요. 요정은 처음엔 웃음을 주고 나중엔 감동을, 마지막에는 행복을 줘요. 그런 배역이 쉽지 않거든요. 나도 나중에는 꼭 요정으로 이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_안시하

안시하는 〈신데렐라〉 출연 전부터 ‘뮤지컬계의 신데렐라’라 불렸다. 그의 운명을 단박에 바꾸어준 마법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의 무명 생활, 소극장의 창작극으로 시작해 대극장의 앙상블까지 성실하게 무대에 서왔지만 정작 주연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마음을 접을 때쯤 마법처럼 〈아이다〉가 찾아왔다. 〈아이다〉에서 오디션 응시자들의 상대 역할로 호흡을 맞춰주다가 제작진의 눈에 띄었다. 오디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안시하는 연출의 디렉팅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었다.

〈아이다〉의 새로운 주인공 암네리스가 탄생하는 순간은 안시하의 인생 2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신데렐라〉에서 그의 드레스를 만들어주는 건 요정 마리이지만, 왕자의 마음을 훔치는 건 신데렐라의 몫이다. 안시하의 마법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는 이 무명의 배우가 얼마만큼 관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가에 있었다.

“〈아이다〉를 공연할 때는 끝까지 얼떨떨했어요. 당시 일기를 보면 ‘가다가 지하철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너무 두려웠거든요. 그전 일기에는 ‘다른 배우들처럼 작품이 연달아 있어서 스케줄이 빡빡해서 힘들다는 말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쓰여 있는데 말이죠. 인생 2막을 열어준 게 〈아이다〉라면, 2막 1장을 열어준 건 〈프랑켄슈타인〉이에요.”

〈프랑켄슈타인〉의 줄리아 역을 맡으면서 무대가 보이고, 관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켄슈타인〉 때 처음으로 벽을 넘어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소리를 쓸 줄 알아야 여러 배역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성 레슨을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 ‘산다는 것은’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면 꼭 내 이야기같아 매번 오열했죠. 그런데 그 이후로 조금씩 릴랙스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다〉를 꼭 다시 하고 싶어요. 그때의 긴장을 극복하고 한 번 ‘이런 작품이구나’ 느끼고 싶어요. ‘이겨냈다’는 느낌으로요.”

〈프랑켄슈타인〉 역시 왕용범 연출의 작품이다. 안시하와의 만남은 2008년, 당시 〈햄릿〉의 앙상블로 출연하던 그에게 왕 연출은 “시하야, 넌 30대에 분명히 빛날 거야”라고 말했었다. 그의 예언이 적중하듯 2014년 안시하는 〈프랑켄슈타인〉으로 뮤지컬어워즈 신인상을 받는다. 데뷔 10년 만의 일이다.


‘와~ 좋다!’는 느낌을 주는 배우


1996년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로 데뷔 무대에 오른 서지영은 2003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풋루스〉의 주인공 에리엘 역으로 213회의 공연을 혼자 소화해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풋루스〉는 원 캐스팅으로 5개월을 했어요. 지금처럼 커버해줄 배우도 없었죠.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는 3회 공연을 했어요. 그 다음날 낮밤 공연이 또 있었고요. 1998년에 〈지하철 1호선〉도 1년 동안 혼자 했어요.”

앙상블로 시작해 소극장 조, 주연을 거쳐 주인공의 자리까지 오른 두 사람, 그리고 주인공 그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서지영의 행보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나이 들면서 좋은 게 많아요. 20대로 돌아가라면 안 갈 것 같아요. 이 나이쯤 되니까 많은 면에서 편안해졌어요. 여배우니까 외모가 변하는 게 반갑지는 않죠. 그런데도 지금 느끼는 감사함과 행복감은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나중에 팔십이 되었을 때 남편(왕용범 연출)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공연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있던 날 아침, 왕용범 연출은 출장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현관에 이런 편지가 붙어 있었다. “20*동 30*호에 사는 나의 요정님께”, 서지영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2007년 결혼해 결혼 8년 차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마법 같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 홍지민이 “우리 부부도 어지간해서 (닭살 커플로) 뒤지지 않는데, 이 부부는 정말 레전드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다. 2006년 소극장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공연하면서 배우와 스태프 20여 명이 마니또게임을 했는데 세 번 연속 마니또로 뽑혔다. 왕 연출은 “원래 서지영씨를 팬으로서 좋아했지만 이 게임을 계기로 운명적인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저에게 마법의 순간은 결혼이었어요. 처음에는 연출이 겨울에 손등이 빨개져서 다니는데 고생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그게 인연이었나 봐요.”

서지영・안시하는 〈신데렐라〉를 하면서 서로가 경험한 마법의 힘을 나눠주고 있다. 무대가 커질수록, 경력이 쌓일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걸 알아서다.

“재환이(그룹 빅스의 켄)는 〈체스〉에 이어서 두 작품째 같이 하고 있는데, 연기를 너무 어려워해서 제가 ‘재환아, 어려워하지 말고 누나가 주는 걸 잘 보고 주는 만큼만 받아. 네가 그걸 주면 내가 다시 줄게’라고 했더니, 그게 되더라고요. 윤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느리더라도 받아서 이야기해봐. 그럼 달라질 거야.’ 윤하가 그걸 느끼고 ‘언니 이건 신세계예요’라고 해요. 무대를 사랑하는 친구들은 느는 것도 달라요.”_안시하

“시하 나이 때 주인공을 많이 해요. 그걸 다 지나고 나면 주연에 대해서 내려놓게 돼요. 배역의 분량이 상관없어져요. 무대에 선 순간 사람들에게 ‘와~ 좋다!’는 느낌만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좋겠다만 남아요. 〈잭 더 리퍼〉에서는 딱 두 장면 나왔는데 굉장히 사랑을 받았어요. 저도 그 배역을 너무 사랑하고요. 어린 배우들이 주인공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어요.”_서지영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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