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악기사’ 김광민 대표

“그럼요, 들어와도 됩니다”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악기사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뮤지션들의 아지트처럼 여겨지던 이곳이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부른다. 심지어 만져봐도 되고, 두드려봐도 괜찮다고 한다.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겠다”고도 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신촌 오거리에는 현대백화점이 있다. 여기에서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에 이르는 길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SPA 매장, 대형마트 등이 줄지어 있다.

한 블럭 걸어 들어가면 다른 풍경이 나온다. 서강로 11길. 조붓한 골목길의 나지막한 건물들, 창전동 주민들은 이 길을 ‘예찬길’, 예술을 찬양하는 이들이 모인 길이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이 모이면 거리 풍경이 달라진다. 홍대 앞이 대표적이다. 미술과 음악을 다루는 이들이 모이자 사람들이 모이고, 상권이 생겼다. 임대료가 오르자 예술가들은 인근 상수, 합정, 망원, 문래 등으로 흩어졌다. 이 중에 ‘예찬길’도 있다. 예찬길이 다른 곳과 구분되는 점은 마을과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가 있다. 서강동 주민을 대상으로 ‘예찬길 문화교실’을 열고, 매주 금요일에는 〈어쩌다 마주친 콘서트〉를 열었다. 수익금은 지역 발전을 위한 사업에 기부했다. 처음에는 악기사가 생겨서 시끄러워지지 않을까 걱정하던 주민들도 “거리가 환해지고, 가까운 곳에서 공연이 열려서 좋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주 자선공연을 했어요. 관객들이 기부금을 내면 공연 수익금을 주민센터에 가져다 드렸어요. 동네 문화센터 형식으로 강좌를 열었는데 많을 때는 15개 넘게 생기기도 했고요. 동네 주민들과 마을 축제도 여러 번 했어요.”


김광민 대표가 여기에 악기사를 낸 건 4년 전 일이다. 근처 연습실에서 합주하던 시간까지 합치면 이 마을에 온 지는 10년이 넘는다. 퀸즈 네스트(Queen’s nest) 밴드에 속한 김 대표는 현재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 다른 멤버 두 명도 악기사 일을 돕고 있다. 처음에는 홍대에 악기사를 낼까 했는데, 그러다 보면 동네 주민들과 멀어질 것 같아 예찬길에 자리를 잡았다.

“워낙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서 이웃들이랑 친해요. 지금은 주민센터나 서울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연계되면서 ‘평생교육’이 가능해졌어요. 악기 매장이라기보다는 동아리 같은 느낌이에요. 동네 사람들에게는 놀이터예요. 매일 와서 쉬었다 가고, 놀러오고 하죠.”


누군가 떠나면 또 누군가 찾아와요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악기사의 문을 열면 김광민 대표보다 먼저 달려 나오는 건 ‘광식이’와 광식이 동생 ‘광태’다. 생후 4개월에 버려진 유기견 광식이와 눈도 뜨기 전에 거리에서 발견된 유기묘 광태는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사람을 잘 따르는 골드리트리버와 강아지를 잘 따르는 고양이는 처음 온 손님들의 마음도 무장 해제시킨다. 밖에서 악기를 구경하며 쭈뼛거리던 사람들을 안으로 이끄는 역할도 한다. ‘어쩌다 마주친 악기사’의 특징은 누구나 들어와 악기를 연주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통기타와 드럼, 일렉트로닉 기타뿐 아니라 젬베・오카리나 등의 전통악기, 우쿨렐레 등도 구비돼 있다. 초보자든 실력자든 악기들을 만져보고 두드려볼 수 있다.

“한 고등학생이 밖에서 기타를 구경하고 있더라고요. 들어와서 마음껏 쳐보라고 했더니 무척 고마워했어요. 원래 악기는 잘 안 팔리는 물건이에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고는 크게 관심을 두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마트 시식처럼 체험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죠.”


많이 사지도 않지만 자주 바꾸는 물건도 아니기 때문에 악기사에서 주로 하는 작업은 ‘A/S’다. 기타 줄을 바꾸는 일부터 악기 전체를 분해하는 일까지 김광민 대표가 하는 일은 전천후다.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니까 믿을 수 있는 물건이 제일 중요해요. 악기사를 운영하려면 웬만한 악기는 다룰 줄 알고, 만들 줄도 알아야 해요.

그 외엔 방법이 없어요. 고장의 모든 경우의 수를 배우는 것보다 악기를 만들 줄 아는 게 (모든 경우의 수를) 마스터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악기사에서 취급하는 악기들은 그런 기준으로 선별한다. 국산 제품 중에서 견고하고 A/S가 잘되는 악기들이다. 하세이사 기타, TN 드럼 등이 그 예다. 악기 강좌도 수시로 열린다. 통기타 동아리 ‘통기타 예찬’은 하루에 한 시간씩 매일 배우면 한 달에 10만원의 수강료를 받는다. 4개월차부터는 한 달에 7만원, 1년이 지나면 5만원으로 떨어진다. 친구를 데려오면 수강료는 더 할인된다. 악기사에는 휴일이 따로 없다.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는 언제든 열려 있다. 복습, 자세교정, 합주 등이 가능하다.

예찬길 마을 공동체가 주최하는 축제에서는 더욱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예찬길에서 공방이나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이들이 주축으로 수제치즈 만들기, 쿠키나 케이크 만들기, 이니셜 은 목걸이 만들기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27일 열렸던 ‘예찬길 마을축제’에서는 골목길 미술관, 골목길 콘서트, 예찬 장터 등이 열리기도 했다. 한 해가 지나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공방도, 다른 곳으로 옮긴 점포도, 사라진 이들도 있지만 김광민 대표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에요. 오랜 시간 터를 잡고 있었고,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또 찾아오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런 흐름은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처음에 세운 원칙은 꼭 지키려고 하죠. ‘첫째, 상업성보다는 공공성을 중요시한다. 둘째, 일방적으로 수익을 올릴 것이 아니라 손님들도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음악이든 관계든 우선순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고 해요.”


‘어쩌다 마주친’이라는 느낌이 좋아요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어느 날 김광민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 노래의 한 구절이다. 끝까지 불러본 적은 없지만, 이 한마디가 악기사의 정체성이 되었다. ‘신촌홍대 최대 기타 동아리’부터 ‘악기체험 라운지’ ‘예찬악기 서울점’ ‘어쿠스틱 공연장’… 또 하나의 자랑이 있다면, 함께 하는 이들에겐 이곳이 ‘꿈의 직장’이라는 것.

“나름 꿈의 직장이에요. 일하는 사람들은 마음껏 악기를 다루고, 강아지 고양이랑 산책하고요.”

인터뷰를 나누는 동안 한켠에서는 흥겨운 드럼 소리가 들렸다. BGM(배경음악)을 틀어놓은 줄 알았는데, 악기사 직원의 연습 소리였다. 손님에게든, 직원에게든 악기사로 수익을 내기보다 공익을 추구하겠다는 초심을 지키는 것, 김광민 대표의 꿈은 매우 단순하다.

“제가 멘토로 모시는 분이 있어요. 《Business As Mission》이라는 책을 쓴 해리 김이라는 분인데, 책에 쓴 그대로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고 계세요. 어느 나라에든 친구가 있어서 한 달은 무전취식할 수 있는 분이에요(웃음).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마음도 편하고요. 제 고향이 제주도인데, 고향에서 올라올 때 목표가 있었거든요. 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죠.”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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