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

사람 안에 도시가 있다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파리를 주제로 한 사진집임에도 에펠탑이나 몽마르트 언덕은 병풍처럼 등장한다. 김진석의 사진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사람이다. 사진집 제목도 《라비 드 파리》, ‘파리의 인생’. 관광명소나 맛집 대신, 도시의 체온과 숨소리를 프레임에 담는 ‘길 위의 사진가’를 만났다.

사진제공 : 큐리오스
장소협찬 : 카페 르쁘띠푸(02-322-2669)
으젠느 앗제, 1857년에 태어나 1927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사진가다. 독학으로 사진을 배웠고, 마흔이 되던 해부터는 파리의 시가지를 찍는 데 인생을 바쳤다. 선원, 유랑극단 배우, 화가 등을 겸하기도 했는데 오직 필름 값을 벌기 위해서였다. 결국 그는 무명 사진가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가 김진석은 앗제의 사진집을 파리의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발견했다. 그를 사진의 길로 이끈 사진가이자 “파리의 일상 속에서 환상적인 작풍을 만들어냈다(〈초현실주의 혁명〉, M 레이)”는 평가를 받는 앗제의 유작을 파리의 골목에서 만난 것이다.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렇다. 하루에 10시간씩, 꼬박 걸으며 묵묵히 셔터를 누르다 보면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중에는 그를 사진의 길로 이끈 앗제도 있었고, 그에게 ‘길 위의 사진가’라는 별명을 붙여준 스페인 할아버지도 있었다. 김진석 작가는 지난해 가을 두 달을 파리에서 보냈다. 그 여정의 기록은 《라비 드 파리(La vie de Paris・파리의 인생)》라는 사진집으로 발간됐다.

“좋은 순간을 마냥 기다리지는 못해요. 하루에 걸어야 하는 거리가 25~30km 되거든요. 놓치는 순간은 아쉬워하지 않고 흘려보내려고 해요. 똑같이 걷지 않고, 똑같이 언덕을 오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풍경이 있어요. 그 속도를 공유하려고 하죠.”

파리의 1구역에서 20구역까지 담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길을 나섰다. 달팽이처럼 펼쳐진 도시를 담기 위해 그도 한 마리의 달팽이가 됐다. 혼자 떠나온 길이지만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에스카르고(프랑스어로 달팽이) 프로젝트’는 함께한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었다. 일종의 크라우드펀딩인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여행 경비를 충당하고 사진집을 낼 수 있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진을 보기 위해 기꺼이 동참한 사람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파리라는 도시는 변화가 참 느린 곳이에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해요. 도시의 외형도, 사람들의 모습도요. 그렇게 달팽이처럼 느리게 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걷고 또 걷고, 찍고 또 찍고


20㎏이 넘는 장비를 메고 세계의 도시를 걸으면서 그가 발견한 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의 어디서든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아가고(《라비 드 파리》 중)”, “사랑하는 연인이 나누는 키스는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소울키스》 중)”. 그의 뷰파인더를 통해 비춰지는 세상은 더 이상 관광지나 명소가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삶의 터다.

“예전에 기자생활을 할 때는 어떤 컷을 놓치면 반드시 찍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컸죠. 다른 기자가 찍었을 때는 화도 났고요. 길에서는 그걸 버리게 돼요. 한번 지나간 건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사진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했어요. 예쁜 풍경이나 좋은 풍경이 주는 쾌감만큼이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주는 기쁨이 크거든요.”

기자에서 작가가 되는 동안 그의 손에서 카메라가 떨어진 적은 없지만, 카메라에 담긴 풍경은 바뀌었다. 월간 《말》지 기자 시절이나 《여의도 통신》 편집장을 할 때도 그의 관심은 사람이었다.

“기자 시절 ‘새벽을 여는 사람들’을 취재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분들을 담았죠. 그런데 셔터를 누를 때마다 가슴이 아리더라고요. 찍고 나서 후유증 있고요. 이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그리고 사진에 대한 회의가 있었어요. 종군기자들이 찍은 전쟁사진을 보면 세상이 슬퍼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런 모습을 다루면 슬픔이 고이거든요. 어떤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세상에 보여준다는 게 그렇더라고요.”

그 고민이 그를 길 위로 이끌었다. 2008년 제주 올레길을 걸으면서, 2010년에는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를 다시 고민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사진을 찍었어요. 그때 찍은 사진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뉴스로서의 밸류(value)는 없지만,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오히려 그 일상이 가치로워 보였거든요. 바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니까요. 걸으면서 제 사진과 마음이 바뀌었죠.”

길을 걷다 보면 순응하게 된다. 좋은 장면을 건질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한 장도 건질 만한 사진이 없는 날도 있다. 그런데 ‘다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순간적으로 액정이 꺼질 때가 있어요. 그때 액정에 비친 제 얼굴이 웃고 있어요. 오히려 길 위의 사진은 예상처럼 찍히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좋은 사진을 만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죠. 걷는 건 아직도 힘들어요. 카메라를 메고 무더운 날이나 비 오는 날에 걷는 건 말할 수 없이 힘들어요. 이 과정은 저에게 ‘힐링’이라기보다는 ‘보람’이에요.”


웃고 울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


‘길 위의 사진가’에게는 두 다리가 이동 수단이고, 두 손이 지지대이자 삼각대다. 손에 카메라를 쥐고 있다가 이때다 싶은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 이때 가장 혹사되는 부분이 네 번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인데 강행군 끝에 기어이 문제가 생겼다.

“한국에 돌아와서 새끼손가락 수술을 했어요. 걸으면서 하루 열 몇 시간을 찍으니까 이 부분(약지와 새끼손가락 부분) 관절이 닳아서 인공관절로 대체했어요. 일단 작업이 밀려 있어 파리랑 부다페스트 작업 이후로 치료를 미뤘죠.”

부다페스트 작업은 파리 작업 중 시작하게 됐다. 헝가리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파리처럼 “부다페스트도 걸어줄 수 있느냐”고 제안한 것.

“파리랑 같은 형식이면 중복될 것 같아서 헝가리의 사진가가 서울을 찍고 제가 부다페스트를 찍는 형식으로 함께 작업을 했어요. 지금까지 있던 문화를 교류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를 교류함으로써 없던 창작물이 생겨난 거죠.”

사진전 〈두 도시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헝가리 사진작가인 사츠머리 게르게이가 3월 말부터 열흘가량 서울에 머물면서 보고 찍은 사진과 김진석 작가가 부다페스트에 4월 한 달을 머물며 찍은 사진 40여 점이 부다페스트 카르톤 갤러리에 걸렸다. 사츠머리는 “부다페스트에서는 볼 수 없는 대규모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한강변 좋은 자리에 늘어선 게 인상 깊었다”고 했고, 김진석은 “체코 프라하의 야경이 화장한 새색시라면 부다페스트는 화장을 지운 새색시 같았다”는 감상을 남겼다.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걸어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나 본질은 같다는 게 느껴져요.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진실하게, 사실적으로 담는 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에요. 그러다 보면 그 도시의 특징이 드러나죠.”

예를 들어 파리를 떠올리면 한 시각장애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떤 시각장애인이 가다가 길을 놓쳤어요. 한 흑인 청년이 그 모습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도와주더라고요. 그건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데 그 청년의 자세가 인상적이었어요. 도움을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옷 끝을 살짝 잡더라고요. 그 사람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도록요. ‘내가 도와주기 때문에 내가 주도하겠다’는 태도가 아니었어요. 이건 오랜 관용이 쌓인 후에 나오는 행동이죠. 그 모습이 파리의 낭만으로 느껴졌어요.”

그건 파리의 에펠탑이나 몽마르트 언덕이 이야기해 줄 수 없는 파리의 멋이다. 김진석의 사진에서는 도시의 정체성이 풍경이 아닌 사람에 담긴다.

“짧은 순간이라도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진이었으면 좋겠어요. 웃고 울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진이요. 그게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의 마음이기도 하고요.”

다음으로 그가 걷고 싶은 도시는 전라북도 고창, 그의 고향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국의 풍경이 그의 프레임에 포착된다. 언젠가 어느 날 어느 골목에서 그 찰나의 풍경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으젠느 앗제가 김진석에게 남긴 옛 파리의 사진처럼.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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