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사람 -
세계적인 뮤지션 스팅을 키워낸 성장의 순간들

“음악은 언제나 슬픔을 달래는 탈출구”

사진제공 : 마음산책
10월 2일 예순네 살이 되는 팝스타 스팅은 여전히 곡을 쓰고 전 세계를 돌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현역이다. 본명은 고든 매슈 섬너. 국내에선 영화 〈레옹〉의 주제곡 ‘Shape of my heart’와 ‘Englishman in New York’을 부른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하지만, 그의 활동 영역은 음악을 뛰어넘는다. 영화배우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브라질 삼림 보호와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지난 7월에는 티베트의 평화운동가 달라이 라마를 후원하는 평화 앨범 제작에도 참여했다. 10월 10일에는 멕시코의 지역 경제와 문화 보존을 지원하는 무대에 설 예정이다. 음반을 1억 장 팔았고 그래미상을 16회나 받은 스팅의 재산은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재산을 자녀들(3남 3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서전 《스팅》(마음산책)은 유년 시절부터 남성 3인조 그룹 ‘폴리스’ 결성 과정과 솔로로 독립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년 시절의 ‘깨진 음악’


자서전의 원제목은 《Broken Music: A memoir》이다. 직역하면 《깨진 음악 : 회고록》인데, ‘불협화음’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유년 시절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제대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 낙농장을 차린 아버지는 말이 없고 무뚝뚝한 가장이었다. 스팅의 표현에 따르면 “아버지는 쇠창살 뒤에 갇힌 죄수처럼 홀로 떨어져서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세상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반면 엄마는 아버지와 달리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은 입만 열면 서로를 빈정대고 비난하는 말을 쏟아냈다. 일부러 상대방 마음을 후벼파는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았다. 남동생과 나는 이 속에서 파괴의 언어를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욕설 난무하는 독기 서린 구름이 머리통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우리는 그 아래 참호에 쪼그리고 앉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불안한 가정환경은 어린 스팅에게 정서 불안을 안겨주었다. 냉기 어린 집안에서 도망친 스팅은 외할머니 집에 있는 피아노에 분풀이해댔다. 말 못 할 혼란과 분노를 표출하기에 할머니네 피아노가 안성맞춤이었다.

“응접실 문을 닫고 커튼을 내린다. 페달을 힘껏 밟으면서 건반을 미친 듯이 두들겨댄다. 천상의 화음은커녕 지옥의 소리가 방안 가득하지만 한참 그렇게 피아노를 두들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치미는 울분을 피아노로 풀지 못했다면 삐딱하게 자라서 지금쯤 버스정류소 기물을 때려 부수거나 고물을 훔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며 울분을 토했던 스팅은 기타를 접하면서 음악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민간 아버지의 친구가 남긴 낡은 기타였지만 이때부터 피아노를 두드리는 일을 멈췄다. 스팅은 특별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접한 비틀스 음악과 주 1회 방영한 TV 팝음악 프로그램은 그에게 뮤지션의 꿈을 키워준 자양분이었다. 스팅의 음악 교사는 비틀스, 교재는 비틀스의 음반이었던 셈이다.

스팅의 유년 시절 모습.
“비틀스 앨범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했다. 노래 속에 감춰진 코드 구조를 분석해 기타로 수없이 따라 했다.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소절이 나오면 축음기 바늘을 수없이 갖다 대면서 무한정 들었다. 내 것이 될 때까지 포기란 없었다.

어떤 과목의 공부도 이렇게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면서 해본 적이 없다.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도망치려면 이렇게 해야 해, 어서 서둘러’라고.”

고등학교 졸업 무렵 스팅은 대학 진학을 준비했으나 첫 시험에서 실패한다. 그 후 1년간 버스 차장, 공사장 막노동꾼, 공무원 등 몇몇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한다. 노던카운티사범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동안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긴다.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대학가 인근 클럽에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다.

“처음 보는 악보도 즉석에서 연주하고 저마다 스타일이 다른 노래도 거뜬히 소화하는 능숙한 음악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주말마다 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이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2년간 일했다. 스물다섯 살 스팅은 곧 아기 아빠가 될 터였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다. 정규직, 연금 수령 등 현실적인 계산을 뒤로하고 그는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포기를 모르는 잡초 근성

용감하게 사표를 내고 런던으로 이주한 스팅은 남성 3인조 ‘폴리스’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이 시절 스팅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사회보장연금센터까지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깜깜할 수가 없다. 신청서에 사인하는 것도 싫고 나 같은 실업자 수백 명이 굽이굽이 늘어선 줄 끝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싫다. 건장한 몸으로 일할 곳을 찾지 못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다. 기계 다루듯 하는 공무원 앞에 서면 가뜩이나 초라한 존재가 더 하찮게 느껴진다.”

스팅은 미래가 불안해서 미칠 것 같으면 기도에 의지했다. 매일 밤 무릎 꿇고 신에게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달라고 빌었다.

“어린 시절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영의 세계로 인도해줄 이 가늘고 기다란 생명의 동아줄, 곧 기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은 없었다. 고난과 역경이 닥치면 의심을 하였던 이 젊은 날의 치기를 신이 용서하시고 그 너른 품에 나를 푸근히 안아주실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묵주기도를 올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실업급여 외에 수입이 없었던 스팅은 이 시기에 많은 곡을 작사, 작곡했다. 폴리스의 첫 정식 앨범이 나온 후 처음으로 미국 투어 공연을 떠났다.

큰 기대 속에 개최한 첫 공연에 자리를 채운 관객은 모두 6명. 실망하지 않고 성심껏 노래를 불렀다.

“폴리스의 영원한 유산은 노래다. 하지만 우리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노래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무대든 가리지 않고, 아무리 멀어도 한달음에 달려가고, 침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고, 100%를 주는 대신에 절대 투덜대지 않는 우리의 잡초 근성이 바로 그것이다. 보잘것없는 존재로 시작했지만, 용맹한 전사로 거듭난 뒤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폴리스는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했지만 1983년 해체한다. 솔로로 전향한 스팅은 지금도 활발히 곡을 쓰고 무대에 서고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아티스트, 아티스트들이 존경하는 아티스트로 꼽히며 2002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스팅의 자서전은 세계적인 뮤지션의 성공담이 아닌 음악이라는 출구를 통해 슬픔을 달래던 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다. 스팅이 만든 노래에서 느껴지는 슬픈 감수성의 원천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음악은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확인하게 된다.
  • 2015년 10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1

2019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