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잘 듣고 있습니까

듣는 것에 인색한 사회다. 어쩌면 그런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듣기보단 말하는 것에 익숙한 시대. 들리는 것을 듣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 이곳에서 듣고 싶어 듣는 행위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죽고 싶어.”

“지랄하지 말고 여자랑 술 먹자.”

이런 식이다.

내가 왜 죽고 싶어 하는지 묻지 않는다. 다섯 글자로 말하니 열두 글자로 답한다. 그리고 여자랑 헤어졌으니 죽고 싶겠거니 한다. 여자랑 헤어졌으니 여자랑 술을 마시면 죽고 싶지 않겠거니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왜 헤어졌는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헤어졌는지, 헤어지고 뭘 했는지, 내가 지금 집인지 공원인지 한강 다리 위인지 듣지 않고 술을 먹자고 한다. 여자랑 술을 마시면 된다고 열두 글자로 답한다. 살고 싶다고 했으면 조금 더 애처롭게 들어주었으려나 하는 찰나의 고민도 어차피 소모라고 판단하고 항상 그렇게 마음을 접는다.

그게 지금 내 주변이고, 내 사회다. 물론 내가 여자랑 헤어졌다는 건 아니다. 그저 예시라는 것이다. ‘웃기고 자빠졌네, 쪽팔리니까 예시라고 하네. 풉’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분도 지금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잘 들어라.’

연기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배운 것이다. 상대의 말 혹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잘 들어야 한다는 거고, 그것이 연기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연기를 ‘혼자 하는 연기’라고들 하고, 나 같은 놈이 긴장을 하면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그 ‘혼자 하는 연기’다. 하지만 이 실수들을 발견하기가 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꽤나 수려하게 편집되어 사람들에게 다가가니 말이다. 그렇다고 크게 귀 기울여서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잘 들어봐. 이건 속임수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편집의 시대고, 무관심의 시대다. 비단 영화나 TV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다. 우리 삶 깊숙히 파고들어와 있다는 거다. 상대의 말을 편집해서 듣고 어떠한 상황을 오역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관심도 없으면서 듣고 싶은 대로 들어버리고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후에 “어, 그랬어? 난 이런 줄 알았는데. 네가 그렇게 얘기했잖아. 잘못 들었나 보네. 미안해” 정도로 상황을 정리해버리고 다시 나의 판단에 집중한다.

‘집주인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우리 옆집에 방송국 피디가 산다고 한다. 그 피디를 본 적은 없고, 같이 사는 피디의 여자 친구를 본 적은 있는데 꽤 예쁘게 생겼다는 사실만 나는 알고 있다. 집 앞에 쓰레기를 세워놓고 몰아서 버리며, 얼마 전에는 쓰던 베개 두개를 버렸는데 색이 꽤 누런 것을 보니 피디는 둘째치고 그 여자 친구도 깔끔한 성격은 아니겠거니 한다.’

사실 전부 추측이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나는 그 예쁜 여자를 동거녀라 판단했고 (왜 그 피디가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집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들을 지저분한 사람들이라 판단했다. 그 여자는 동생일 수도 있는데, 동생이라면 사돈지간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나는 왜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ㄱ… 여기까지 하겠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한강 다리 위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에 붙어 있는 문구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면부지의 수화기 너머 상담원이라니 참 슬프다.

동시에 가장 절박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기도 하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그들은 “젠장, 무슨 그딴 일이 있어. 여자랑 술 먹자 나와”라고 하지 않는다. “그랬군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해준다. 죽지 말라거나 살아야 한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냥 들어준다.’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다음을 듣고 맞는 것을 고르시오’ 식의 듣기 평가를 하고 있다. 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 어쩌다 틀리면 꾸중을 듣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에서 맞는 것을 고르는 데 혈안이 되어버렸다. 그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틀린 답을 말하는 바람에 상대는 더 힘들고 죄스러운 감정을 부풀린다.

“나 어제 술 먹다가 부장이랑 맞장 떴어.”

“그 부장이 개새끼네!”

처럼 말이다.

설사,

“그건 네가 참았어야지. 네가 만날 지각하고 휴대폰 하니까 부장이 그러지.”

라고 맞는 답을 말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그저

“…”의 침묵과

“그랬구나. 가끔은 그럴 수 있어”의 동의가 필요한 순간인데 말이다.

박정민은 영화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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