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그룹 ‘에브리웨어’ 부부작가 방현우・허윤실

놀랍고 재밌고 즐겁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서울 도산사거리에 자리 잡은 자동차 복합문화공간 현대모터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분해돼 내부가 낱낱이 드러나 있는 자동차가 눈길을 끈다. 미니어처 도로가 2만여 개 부품 사이를 휘감아 돌고, 카메라를 단 미니카들이 미니어처 도로 위를 달리며 촬영한 영상이 멀티비전 스크린에 투사된다. 미디어아트그룹 에브리웨어(everyware)의 작품 〈Ensemble〉이다. 자동차에 열광하는 사람도 이렇게 내부를 샅샅이 살펴볼 기회란 거의 없지 않을까? 아이들이 특히 작품 곁을 떠나지 못하고 미니카가 촬영한 자신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기계와 인간의 따뜻한 상호작용 보여주는 가상현실

에브리웨어 작품이 전시될 때면 어느 나라든 반응이 비슷하다. 경탄하고,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한다. 최근 문화역 284에서 열린 전시회에 선보인 〈Portal〉은 관람객이 손전등을 건물 벽면에 비추면서 작품이 시작된다. 손전등의 빛에 벽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듯 구멍이 뚫리고 에브리웨어 작가들의 추억이 담긴 영상이 나타난다. 다른 시공간으로 연결되는 터널을 뚫는 듯한 느낌이다. 관람객이 전등을 어디에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다른 영상이 등장하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이다.

2008년에 발표한 〈Oasis〉 역시 관람객의 참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작품이다. 탁자 위를 덮은 모래를 젖히면 연못 같은 스크린이 보이고, 연필로 그린 듯한 가상의 생명체가 생겨나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명체가 사는 서식지의 넓이는 관람객이 만든 연못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Cloud Pink〉.
관람객은 작은 연못, 큰 연못, 수로 등을 만들어 가상의 생명체를 끌어들이면서 즐거워한다. 가상의 연못 위에 조약돌을 올려놓으면 생명체가 피해가고, 나뭇잎을 올려놓으면 떼로 몰려들기도 한다. 〈Cloud Pink〉는 하늘로 손을 뻗어 구름을 만지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하늘영상의 천막에 손을 뻗으면 손이 닿는 자리의 구름이 흩어지면서 색깔이 변한다. 〈Soak〉은 관람객이 천을 손가락으로 찌르고 손바닥으로 문질러 색이 번지게 하면서 자신만의 패턴을 완성하게 하는 작품. 사람들이 만들어낸 패턴은 고해상도 이미지로 저장돼 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고, 티셔츠에 인쇄할 수도 있다.

〈Crowdraw〉는 스마트폰 앱이나 웹사이트의 가상공간에서 페인트탄을 구매해서 쏘면 실제 공간에서 로봇이 원격 구동되면서 벽면에 페인트탄을 발사하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쏜 한 발 한 발의 페인트가 쌓여 공동작품이 완성된다. 사람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이 가상공간에서 발사한 페이트탄이 실제 벽면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확인할 수 있고, 프로젝트의 전체 진행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Levitate〉. 사람이 지나가면 중력을 거스르듯 공이 위로 떠오르는 작품이다.
에브리웨어 작품은 이렇게 사람들 속에 내재된 자연에 대한 동경, 꿈과 환상,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킨다. 서로 반대방향을 본다고 여겼던 기계와 자연, 기계와 인간이 그들 작품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간단치 않은 기술을 통해 구현되는 작품이지만, 그들 작품 앞에서 남녀노소 아무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작품을 만지는 게 금기시되는 전시장에서 그들은 마음껏 만지고, 가지고 놀라고 관람객을 유혹한다. 〈The Wall〉은 벽을 향해 천으로 만든 공을 냅다 던지게 한다. 영상 속의 벽은 공이 어느 자리를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로 산산이 깨졌다 복구된다. 관람객은 속이 후련해지는 듯 웃으면서 계속 공을 던진다. 에브리웨어의 작품은 이렇게 현실과 가상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서울공대 교수 출신 남편과 디자인 전공 박사 아내가 함께하는 작업



〈Soak〉. 관람객이 천을 손으로 문질러 색이 번지게 하면서 자신만의 패턴을 완성하게 하는 작품이다.
에브리웨어의 부부작가 방현우・허윤실씨를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미디어아트를 한다는 자각도 없이 시작한 일인데, 사람들이 우리를 미디어아트 작가로 분류하더라”라고 말한다. “만약 장난감업체 사람들이 우리를 먼저 알아봤다면 우리가 만드는 게 장난감이 되지 않았을까요?”라면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서울대 미디어아트 수업에서였다. 남편인 방현우씨는 기계항공공학 석사과정, 아내인 허윤실씨는 국어국문학과 디자인학부를 복수전공하고 있을 때였다. 이후 방현우씨는 유체역학을 활용한 에이즈 진단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서울대 조교수가 되었고, 허윤실씨는 LG전자 R&D센터에서 일하다 미국 UCLA에서 디자인-미디어아트 석사, 서울대 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력으로만 보면 각자 딴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모든 일을 함께 해왔다”고 말한다. 결혼도 스물다섯 스물여섯에 일찌감치 했고, 허윤실씨가 유학으로 잠시 미국에 먼저 가 있을 때는 화상 채팅창을 켜놓고 생활했다.

“횟집을 차리든 과수원을 하든 둘이 뭐라도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관심사가 겹치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이렇게 함께 작업을 하고 있네요.”

〈Nuts Rider〉. 자전거 페달을 돌리면 모니터 속 장면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레이싱 게임이다.
남자는 이과로 공대를 나왔고, 여자는 문과로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관심 분야도, 능력도 달라 역할을 나눠 작업하리라는 추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방현우씨는 “고등학교 시절 철학과 물리학 모두 관심이 많았는데,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분리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죠. 우리 두 사람은 관심사도 능력도 차이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함께 작업하다 보면 두 사람이 똑같은 생각, 심지어 동시에 똑같은 말을 할 때도 많다고 한다. 디자인 일을 처음 맡아온 것은 방현우씨였다. 창업한 선배들이 “너 디자인 잘하잖아?”라며 일을 줘 제품 디자인부터 패키지 디자인, 홈페이지 디자인, 영상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까지 맡았다. 허윤실씨는 “미디어아트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나긴 했지만 제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은 남편”이라고 말한다. 남편한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남편이 추천한 책으로 더 깊이 공부했다고 한다.

〈Oasis〉. 탁자 위를 덮은 모래를 젖히면 연못 같은 스크린이 보이며 가상의 생명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가로서 이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오아시스(Oasis)〉는 허윤실씨의 대학원 졸업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작품 이후 이들은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일본 국립아트센터를 비롯해 미국・호주・스페인 등 전 세계에서 초청받는 작가가 되었고, 국내외 다국적기업의 의뢰도 많이 받는다.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작품이 어디에서나 눈길을 끌고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에는 우리가 좋아서 만든 작품이 전시초청까지 받는 게 신기했다”고 말한다.

“수채화와 유화의 발색원리가 다르고, 돌을 깎아서 만든 조각과 흙을 빚어 만든 소조의 맛이 다르듯 뉴미디어 기기 각각의 특성, 맛이 살아나도록 작업하려고 합니다.”


생각만 달리하면 삶은 충분히 가벼워질 수 있다

〈Memorial Drive〉는 ‘산초’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산타페를 폐차시킨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다양한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지만, 이들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카메라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빠져들 듯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을 지향한다. 이들의 작업실에서는 양쪽 아버지와 아내의 여동생, 남편의 사촌동생까지 함께 일한다. 가족을 작가로 끌어들였다. 방현우씨는 “남자들의 로망이 목공 작업이고, 자식의 로망이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거잖아요? 꿈을 이뤘죠”라고 말한다. 아버지들은 재료를 깎고 용접하는 하드웨어 관련 일을 주로 담당한다. 함께 일하며 사돈끼리 굉장히 친해졌다고 한다. 방현우씨는 지난해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를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라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그는 벗어나 있었다. 평생 교수를 할 생각은 원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마냥 재미만 좇는 것은 아니다. 잠은 충분히 자지만 깨어 있는 동안에는 항상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고 뭔가 만들어낸다. 그동안의 작업은 제작과정까지 상세하게 홈페이지(http://everyware.kr)에 공개하고, 강의 등을 통해 지식을 나누기 위해 노력한다. 좋아하고 의미 있다 생각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가볍게 만들었다.

TV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사진이 찍혀 TV 화면 속 가상공간에 쌓인다.
“집은 따로 없어요. 월세를 내는 작업실 뒷방에 침대를 놓고 생활하죠. 옷 욕심도 없어 싸고 편한 옷만 입어요. 대신 작업에는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생각만 달리하면 삶이 얼마나 가벼워지는데요? 강남에 아파트 하나 장만하려면 평생 돈의 노예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것 하나 덜어내도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겠어요?”

현대자동차 광고에도 등장했던 이들의 작품 〈Memorial Drive〉는 ‘산초’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자동차 산타페를 폐차시킨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남편이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때 트렁크 한 가득 풍선을 담았다 날리게 해줬던 자동차.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자동차를 떠나보내며 아내는 “여기저기 박고 다녀서 미안해”라며 울컥하고, 남편은 “이젠 잘 쉬겠지”라고 조그맣게 말한다. 에브리웨어는 이 자동차의 부품으로 작품을 만들어 가족에게 돌려줬다. 아이 키에 맞춘 운전대를 돌리면 모니터에 가족의 추억이 담긴 장면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첨단기술을 활용하지만 에브리웨어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기계와 자연, 기계와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 따뜻한 소통을 느끼게 하기에 남녀노소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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