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 전문 테너 김세일

“귀족적이고 따뜻한 거장의 소리”

글 : 오주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졸)  / 사진 : 김선아 

오페라가 탄생한 지 408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공연한 오페라 〈오르페오〉의 무대가 지난 7월 말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오페라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공연은 현존하는 공연 가능한 오페라 중 제일 오래됐다. 이 작품은 그리스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진 음악가 오르페오가 아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이 공연의 주연을 맡은 테너 김세일은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악가다. 특히 국내 테너로서는 드물게 오라토리오와 예술가곡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예술인이다. 유럽 거장들에게 “귀족적이고 따뜻하며 거장다운 소리”라는 평을 들으며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레퍼토리라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이 공연은 1막에서 5막까지 오르페오가 모놀로그 식으로 끌고 갑니다. 혼자 끌고 가는 중요한 역이라서 체력소모도 많고 쉽지 않았어요. 두 달 동안 꼬박 연습을 했지요.”

관객들의 반응은 성공적. ‘청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작품이라 지루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고음악의 멋과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무대·연출 부분에서는 현대적인 어법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6개 국어에 능통, 유럽을 무대로 활동

피아노의 거장 ‘루돌프 얀센’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세일은 현재 고음악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릴 적 MBC 합창단에서 활동하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꿈을 키운 그는 열여덟 살 여름방학 때 오페라의 종주국인 이탈리아로 캠프를 갔다가 성악의 매력에 빠졌다.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로마는 수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곳이에요. 오페라를 하던 옛날 극장의 분위기가 음악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계속 서양음악을 한다면 음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유럽에 있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어린 나이였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강했기에 주저하지 않고 서울예고를 자퇴했다. 그의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의 이탈리아행을 반대했지만 꿈을 향한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들어갔는데 만 열일곱 살 나이로 최연소 입학이었어요. 법적으로는 열여덟 살부터 입학할 수 있거든요. 선생님이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quasi 18anni(거의 열여덟 살입니다)’라고 대답하라고 써주셔서 달달 외워서 갔죠(웃음).”

음악원 졸업 후 김세일은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에서 연주 디플로마를, 취리히 음악대학에서는 독주자 디플로마와 음악가 칭호를 획득했다. 그 후 네덜란드로 넘어와 오페라 스튜디오 정식 단원으로 활동했다. 스위스에서 그는 바흐의 수난곡(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묘사한 극적인 음악)과 독일 가곡을 접하며 ‘오라토리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라토리오를 만난 뒤 그의 음악 방향이 바뀌었다.

네덜란드에서 마태수난곡 복음사가를 부르고 있는 김세일.
“오페라는 음악도 중요하지만 연출 같은 비주얼적인 부분도 중요합니다. 반면 오라토리오는 연출이 없으므로 오직 음악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청중과 음악가가 소통하는 채널이 오로지 음악 하나이기 때문에 청중은 본인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음악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힘이 필요할 때 힘이 될 수도 있고, 기쁠 때는 기쁨이 배가되게, 슬픈 사람에게는 위로를, 어떤 사람에게는 추억을 줄 수 있죠.”

오페라와 같은 시기에 탄생한 오라토리오는 종교 또는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 독창·합창·관현악을 위한 대규모 악곡이다.

옛날 유럽은 종교와 정치가 일치되어 있었다.

부활절 전 사순절 기간에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보내라는 교황의 명에 따라 남녀 간의 세속적인 사랑에 대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종교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진 오라토리오였다. 화려하게 화장하고 의상을 입을 수도 없었기에 교회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페라가 극적인 무대를 연출한다면, 오라토리오는 성악가와 피아노의 호흡이 유일한 무대장치다. 그래서 노래의 뜻을 잘 알고 파악해서 부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이탈리아・스위스・네덜란드에 머물면서 언어를 습득할 수 있었고, 현재 이탈리아어・프랑스어・독일어・네덜란드어・영어 6개 국어를 구사한다.

“오라토리오를 하기 위해 미리 언어를 배운 것은 아닌데 지금 와서 보니 언어를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웃음).”


성악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그는 2003년부터 오라토리오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라토리오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큰 국제 콩쿠르인 마리아 클래스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지금은 여러 곳에서 초청받아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 사순절 때는 대성당이 많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하우다(Gouda)’ 지역에서 공연을 했다. 네덜란드가 고음악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사순절 기간에 마태수난곡을 300회 이상 공연한다. 그 기간에는 매일 어디를 가든지 마태수난곡을 들을 수 있다.

“이번 사순절 때 에반겔리스트(인물의 대화와 상황을 설명하는 작중 인물) 역을 맡아서 노래했습니다. 큰 성당이 한 자리도 빠짐없이 꽉 찼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한 할아버지가 오셔서 ‘내가 50년 동안 이 노래를 들어왔는데 당신같이 기억에 남는 복음사가는 처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부르는 마태수난곡을 들으셨을 텐데 그중 저를 꼽아주시니 정말 감동이었어요.”

에반겔리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일어로 해설하는 아나운서 역할인데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럼에도 김세일은 잘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내후년까지 공연을 하기로 계약했다. 이 곡은 김세일이 꼭 들어보라고 추천하는 오라토리오 곡이기도 하다. 오페라보다 더 긴 곡으로 음악 마라톤이라고 볼 수 있다. 노래 가사로 성경에 나오는 내용인 유다의 배신부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까지 표현했다.

“수동적으로 듣지 않고 가사와 비교하면서 들으면 바흐의 깊이와 문장에서 나오는 심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페라는 오르페오로 분장한 김세일이 부르는 노래라면 오라토리오는 김세일이 설명해주는 복음사가의 에반겔리스트라는 뉘앙스 차이가 있습니다.”

김세일은 오라토리오가 우리에게 생소한 장르일 뿐이지, 절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커피믹스만 주로 마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에스프레소・아메리카노・라테 등 다양한 커피를 마실 수 있죠. 오라토리오도 똑같습니다. 지금 오페라만 알려졌을 뿐이지, 다양한 장르의 성악곡을 듣다 보면 본인의 취향대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김세일의 꿈은 성악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음을 알려주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오라토리오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커 보였다.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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