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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깊이 울어야 문장이 될까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손세실리아 〈낌새〉

산새 죽은 자리 깃털 분분하다
먹고 싸는 일을 직방으로 해치우며 살아온
날 것의 최후답게 말끔하다
뼛속까지 텅 비었으니
해체도 간단했으리라
새로서야 몸의 하중이 가벼울수록
자유로운 비행이 수월해서라지만
새도 아닌 노모
사소한 동작에도 분질러지고 바스라져
툭하면 깁스 신세다 얼마 전엔
잇몸뼈까지 도려냈다 그뿐인가
지리는 일 잦아져 바깥출입도 삼간다

기필코 날고야 말겠다는 듯
하루하루 새를 닮아가는

손세실리아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사 , 2014



시골에 살며 가까이에서 많은 새들을 보았다. 곤줄박이·붉은머리오목눈이·딱새· 물까마귀·뻐꾹새·종달새·휘파람새· 까마귀·멧비둘기·딱따구리·가창오리· 왜가리…. 앵두와 양보리수와 버찌가 익으면 뭇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는다. 시골생활의 즐거움은 새들에게서 온다. 대기가 코발트빛으로 빛나는 여름 새벽 부지런하고 사랑스러운 새들은 깨어나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는 새벽마다 새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곤 했는데, 망망대해와 같은 고독 속에서 큰 위로를 받고 기쁨을 얻었다. 인간의 관점과 새의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과 새는 뇌의 크기가 다르고 감각계가 다르다. 대개 맹금류의 눈은 정밀도가 뛰어나 세세한 것까지 보고, 올빼미의 눈은 민감도가 뛰어나 어두운 곳에서도 사물을 잘 본다. 그러니까 새의 일부는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시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새들은 인간에겐 없는 자각(磁覺) 기능을 갖고 있다. 철새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할 때 이 자각 기능으로 방향을 탐지하고, 지구 자기장으로 제 위치를 인식한다. 믿기 힘들지만 새들은 지구 자기장을 본다고 한다. 이 명민한 새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고 축복이다.

시인은 죽은 산새를 본다. 나도 시골에 살며 산새 죽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더 힘센 부리와 발톱에 해체된 산새의 주검! 그 자리에 살점 흔적은 없고 깃털들만 분분하게 날린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코마(koma)’의 영역, 즉 생물적 욕망과 생물적 필요로 얽혀 있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로 얽혀, 먹고 먹히는 일이 항다반사로 일어난다. 먹고 먹힘을 통해서 자연은 끝없는 에너지 교환을 한다. “산새 죽은 자리 깃털 분분하다/먹고 싸는 일을 직방으로 해치우며 살아온/날 것의 최후답게 말끔하다”. 산새의 죽은 자리가 깔끔한 것은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새는 먹고 싸는 일을 직방으로 해치우며 살았던 것. 그렇다면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먹고 배설한다. 먹고 싸는 무분별의 이면에는 탐욕과 이기주의, 기만과 허언들이 엉겨 있다.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교란시킨다. 배신하고 상처를 입는다. 누군가를 배신하고 상처를 입히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잘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늙은누룩뱀의 눈물〉) 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쥐지 못할 때 욕망은 그르렁거리고, 불만과 우울증으로 마음은 병이 든다. 사람으로 사는 일은 “생의 이 너머와 저 너머를 넘나드는/초인적 여정”(〈파일럿〉)이다. 삶은 복잡하고, 관계들은 얽히고설킨다. 그에 반해 새들은 얼마나 단순한가! “뼛속까지 텅 비었으니/해체도 간단했으리라”. 새들은 뼛속까지 텅 비우고 산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죽는다. 그 단순한 새의 생태는 복잡한 삶을 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낌새〉는 사는 일의 버거움을 감당하다가 마침내 삭막하게 늙은 노모의 모습을 그려낸다. 아마 노모는 시간에 쫓기며 그렇게 팍팍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고, 여가를 충분히 즐기지도 못한 채. 왜 그럴까? “시간에 쫓긴다는 것이 예측 불가능성과 통제권 박탈의 결과라고 한다면, 진정한 여가는 자신에게 그 경험에 대한 일정한 통제권과 선택권이 있다고 느낄 때 가능하다.”(브릿지 슐트, 《타임푸어》, 379쪽)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삶의 통제권도 없다. 그러니 여가도 없다. 세월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데, 나이의 침범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면서도 끈질기다. 나이란 “우리 주변과 우리 내부를 관통하며 짜인 그물”(로버트 그루딘,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 174쪽)이다. 그 그물에 걸리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허겁지겁 살다가 문득 늙어가는 자신과 마주친다. 늙는다는 것은 시간과 인생의 가능성이 축소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의 젊음은 소리 없이 시간 속으로 확장되는 반면, 우리의 노년은 거꾸로 축소된다.”(로버트 그루딘, 앞의 책, 171쪽) 누구에게나 사는 일은 버겁다. 시인도 그 버거움 속에서 허우적이다가 제 곁에서 고사목 같이 늙어버린 어머니를 발견하고 놀란다. 그리고 자신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직관한다.

노경은 인생이란 연극의 종막이다. 사람은 노경에 이르러서 생명의 마지막 변화를 맞는다. 등뼈가 굽고, 육체는 주름이 가득한 채 시들며, 여행들은 조용히 끝난다. 뇌가 짜낸 기억의 태피스트리는 방대하지만 이제 그것을 다 챙기지 못한다. 기억은 단속적으로 끊어지며 끊어진 것들의 이음새는 헐겁다. 기억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세지는 것은 늙어간다는 유력한 징표다. 노화는 “점점 빛이 어두워지다가 이윽고 주변의 어둠과 섬세하게 합쳐지는 과정”이고, 그 뒤를 잇는 죽음은 “무한으로 이끌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쇠약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비”(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275쪽)다. 죽음은 길게 끌고 온 인생의 파국이고 종말이지만 동시에 불가피한 노쇠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구원이자 행운이다. 시인은 새의 주검에 노모를 겹쳐본다. 노모의 뼈는 속을 비운 새의 뼈같이 약해진다. 그래서 “사소한 동작에도 분질러지고 바스라져/툭하면 깁스 신세다 얼마 전엔/잇몸뼈까지 도려냈다”. 세상 떠날 때를 앞둔 노모는 비우고 바스라지고 도려내며 죽음을 예비한다. 점점 더 새를 닮아가는 노모와 함께 사는 일은 애련하다.

나는 손세실리아 시인의 개인적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 시에 따르면, 시인과 어머니 사이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시인은 어머니와 인연을 끊으려고 멀리 달아난 적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시인과 어머니는 화해한다. 시인의 삶은 그 어머니와 화해에 이르는 도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시가 곧 인생이다. 인생은 “소심함과 머뭇거림과 뒷걸음질/미주알고주알과 하찮음과 오지랖”(〈내 시의 출처〉)들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일이고, 동시에 “담대하고 장엄하고 매혹적인”(〈파일럿〉)이다. 죽음은 인생이 펼친 그 모든 것을 닫는 일이고, 결국 인생이란 노역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시인은 날마다 새처럼 나는 연습을 하는 노모를 바라본다. 그 눈길에 담긴 것은 “기필코 날고야 말겠다는 듯” 하루하루 새를 닮아가는 노모를 향한 동병상련이다!


손세실리아(1963~)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한다. 시집으로 《기차를 놓치다》 등이 있다. 시인이 일산에서 살다가 제주도 조천으로 삶의 근거지를 이전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왜 태어난 곳도 살던 곳도 내륙인데, 그 낯익은 내륙의 삶을 버리고 낯선 삶 속으로 들어갔을까? 그 내력을 〈바닷가 늙은 집〉은 이렇게 전한다.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버려진 집을 발견”하는데, 폐가는 “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하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도 저렇듯/담담하고 의연히 쇠락하길 바라며/덜컥 입도(入島)를 결심”한다. 덜컥 입도다! 좀 더 들여다보면 숨을 데가 필요하고, 맺힌 설움을 토로할 품이 필요했던 탓이다. 시인은 제주도에 내려와 조천의 “해안가 마을길에 찻집을” 냈는데 “발길 뜸하리란 예상 뒤엎고 성업”(〈문전성시〉) 중이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주로 약하고 천하며 버려진 것들을 제 슬하로 거둬들여 먹이고 입히며 그것들을 시로 쓴다.
  •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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