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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

작가 송진화

동그스름한 두상에 바짝 깎은 머리, 가녀린 어깨와 호리호리한 몸매. 7월 8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송진화 개인전 〈너에게로 가는 길〉에서 만난 여인이다. 까무잡잡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피부가 돋보이는 이 여인의 눈썹은 강철로 되어 있다. 위로 길게 치켜 올라간 강철 눈썹이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라고 말하는 듯하다. 송진화 작가가 흑갈색의 단단한 참죽나무를 깎아 만든 작품 〈날 내버려 둬〉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여성적인 몸매에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지만 어쩐지 외롭고 슬퍼 보인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세상에 맞서보지만 내면은 공허하고 쓸쓸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다른 작품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요〉 역시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단 여성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내가 당신의 선물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일까? 그런데 어쩐지 씁쓸하다.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지만 뭔가 자신이 없는 표정이다. 몸을 옆으로 틀며 오른손으로 왼쪽 집게손가락을 어색하게 잡고 있는 모습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 여성은 사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게 아닐까?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에 굶주려 있지만, 이내 실망하고 상처투성이가 된 채 세상을 향해 방어벽을 쌓는 우리 자신과 마주하는 듯하다. 어깨와 손끝, 발끝 모두 힘이 꽉 들어가 있는 나무여성들을 보며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등에 업혀 있거나 꽉 끌어안고 있는 강아지가 이 여성이 유일하게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내면의 여러 모습과 대면

날 내버려 둬_ 135×20×20cm, 참죽나무, 2012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는 좀 더 감정을 직접 노출한다.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연약한 아이 같은 여성은 발끝으로 서 있다. 두려움에 휩싸여 있지만, 주먹을 꼭 움켜쥔 채 ‘무섭지 않아’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를 흠뻑 맞아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은 〈나는 우산이 없어요〉나 깨진 유리조각을 밟고 서 있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은 더욱 극적이다. 작품들을 둘러보니 형상화된 심리학 책을 보는 것만 같다. 우리 내면의 여러 모습과 대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커튼을 들추고 들어가 탯줄에 매달려 있듯 거꾸로 매달려 있는 태아 모습의 조각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작품 〈아, 너였구나〉는 심리치유의 마지막 단계로 보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내면의 결핍을 치유하려면 아기 때의 자신으로 돌아가 ‘내면아이’를 안고 토닥여주라고 하지 않던가? 예술의 역할이 ‘사람들을 대신해 울어주는 것’이라면, 그 역할에 정말 충실한 작품이자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송진화 작가는 동그스름 예쁜 두상에 바짝 깎은 머리가 작품과 꼭 닮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몸에 딱 붙는 원피스에 때론 목걸이나 팔찌로 치장한 반면, 그는 흰색 긴 셔츠의 수수한 차림에 화장기도 거의 없다. 살이 보이는 게 부끄러워 여름에도 반팔은 거의 입지 않는다고 한다. 여성적인 모습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신의 분신인 작품들이 대신해주고 있기에 정작 스스로 꾸밀 필요는 못 느낀다고 한다. 머리는 자신의 손으로 항상 바짝 깎는다고 했다. 심리적 함의가 풍부하다고 작품을 본 느낌을 전하자 그는 “제 작품에 대해 콘셉트가 뭐냐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제 작업은 일기와 같아요. 콘셉트를 잡아놓고 일기를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일기처럼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쏟아놓을 뿐이죠.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작업한 적은 없습니다. 손이 먼저 움직여 만들어놓고 보니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알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빈손_ 65×35×26cm, 소나무, 2014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_ 23×57×15cm, 소나무, 2014
그의 작품 앞에서 ‘내 모습 같다’며 눈물을 쏟는 관람객도 있다. 눈물을 떨구던 한 관람객이 그에게 ‘한번 안아봐도 될까요?’라고 해 한참 안고 토닥여준 적도 있다고 한다.

“작업할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반응입니다. 그저 내가 급급해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들을 배출해야만 해서 작업에 쏟아 넣었을 뿐이니까요. 작업은 그저 나를 숨 쉬게 하는 도구였죠. 평론가도 관람객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작품을 그렇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감사하죠. ‘혼자 발광하는 줄 알았는데,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더 신중해지고,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전공은 원래 조각이 아니었다. 세종대 회화과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그는 14년 동안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다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서른아홉 살이 되어서였다.

“미대 졸업하고 오랫동안 작업을 못 했으니 남들은 제가 내적 갈등이 많았을 거라 짐작하더라고요. 사실은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어요. 제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사람 상대하는 일이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학원은 꽤 잘되었지만 나중엔 너무 지쳐 ‘그만두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때 그가 새로 입주한 아파트단지 내 비어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고, 작업실로 빌렸다.

“세상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첫 개인전을 열기까지 2년 동안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않고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아까워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나무와 진한 연애를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 무섭지 않아_ 138×35×35cm, 은행나무, 2013
2002년 첫 개인전에서 그는 스티로폼을 깎은 후 한지를 덮어 만든 부조 형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속에서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터져 나오듯 실오라기 같은 게 비집고 나오는 작품이었다.

그다음에는 데드마스크같이 사람의 얼굴만을 스티로폼으로 깎았다. 울분을 토하거나 고함을 치는 표정이었다. 나무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6년,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을 때였다. 재봉틀로 옷이나 가방을 만들며 손을 놀리던 그는 우연히 인사동 목인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서 전통 목조각에 이끌린 그는 각목 하나를 주워 연필 깎는 칼로 깎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나무와 진한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값비싼 재료를 쓰지 않는다. 어느 집이나 건물, 혹은 놀이터의 일부였다 쓸모를 다해 버려진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개심사의 해우소(화장실)로 쓰인 나무로 작업한 적도 있다. 나무의 나이테, 터지고, 갈라지고, 벌레 먹은 모습을 그대로 살려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게 더 큰 심리적 파장을 자아낸다. 벌레 먹은 폐목을 사용한 〈엄마의 청춘〉에서 엄마의 몸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에서 여성의 몸은 칼에 베인 듯 위아래로 길게 파여 있다. 원래 나무의 모습이 그대로 작품의 특징이 되었다.

“저보고 나무를 잘 다룬다 하지만, 나뭇결이나 옹이, 휘어진 곡선 그 자체가 너무 예뻐요. 나무 지가 예쁜 것이고, 저는 거기에 슬쩍 업혀가는 것입니다. 표면을 홀랑 덮어버리는 게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이테가 드러나도록 채색을 하지요. 나무는 살아 있을 때 사람들에게 휴식과 기쁨을 주고, 죽어서는 유용한 물건이 되고, 버려진 다음 다시 제 작품이 되어준 거지요. 나무를 보자마자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줄지 떠오를 때가 많아요. 그 모습을 빨리 보고 싶어 마구 깎아나가게 됩니다.”

나는 우산이 없어요_124×38×33cm, 소나무, 2014
미켈란젤로가 돌 안에 가두어져 있는 형태를 끄집어내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낸다고 했듯 그 역시 망치와 끌로 불필요한 부분을 퍽퍽 쳐낼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이 만드는 작품과 매번 사랑에 빠져 쪽쪽 입을 맞추고, ‘절대 다른 데 팔지 않을 거야’ 다짐도 한다. 그러다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 바로 연애대상이 바뀐다. 태아 같은 모습의 조각은 완성 후 머리 위를 툭툭 털어주다 안게 되었을 때 울컥했다고 한다. 내 아이 혹은 나를 안는 느낌이었다. 관람객 중 몇 명이라도 그걸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달아놓았다고 한다.

“제 작품이 감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면서 좀 걸러서 은유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은지 충고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생겨먹지 않은걸요. 조각에 대해 아예 모르고 시작했기에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고 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내게 됩니다. 제 작업을 유행가 같다고 생각해요. 클래식도 있어야 하지만 유행가도 필요하잖아요? 제가 내성적인데다 굉장히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더라고요. 어리광 부리고 싶은 욕구도 많고. 쉰이 훌쩍 넘었지만, 내면에는 열아홉, 스무 살의 제가 남아 있어요. 백 살이 되어도 여자는 여자 아닌가요? 환경 때문에 표현 못 하고 접어버린 부분이 작품으로 다 표출되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작업을 안 했겠지요.”

엄마의 청춘_ 80×15×16cm, 소나무, 2009
그의 작품에는 극적인 장면이 많아 ‘이 작가에게 어떤 곡절이 있을까?’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 “저 자신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릴 때 행복하고, 새싹이 돋아날 때는 예뻐서 어쩔 줄 모르죠. 하지만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의 대사였던 ‘아주 행복한 순간조차 내 심장의 반은 슬픔에 차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삶은 그저 만만하게 살아지지 않죠. 한 걸음 한 걸음 애쓰며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작품을 통해 연약하더라도 안간힘을 다해 살아가는 생명력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던 그는 “그 시절이 제가 계속 꺼내먹는 자양분”이라고 말한다.

“쇠비름은 소도 안 먹는다며 농부가 볼 때마다 뽑아버립니다. 그런데 아무리 뽑아도 또다시 뿌리가 땅을 파고들 정도로 생명력이 대단하죠. 그런 생명력을 보여주고 싶어요.”
  •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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