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획자 겸 방송인 김범수

예술 작품이 제게 준 감동을 나누고 싶어요

글 : 이상범 인턴기자(성균관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김범수(46)의 인기가 뜨겁다. 지칠 줄 모르는 입담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다름 아닌 미술관이다. 부드럽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는 전시장 안을 가득 메웠다. 방송인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전시기획자 김범수. 그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작품 평가액만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전이다. 지난 6월 말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김범수가 전시 해설자로 등장할 때마다 많은 관람객이 몰려 화제가 되었다.

사진제공 : 코바나컨텐츠
대중에게 김범수는 ‘엘리트’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 취득, 게다가 공중파 아나운서 출신이다. 그동안 많은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신뢰받는 이미지를 쌓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문화 비즈니스와 관련된 직장에 다녔어요. 얼마 있자 방송 일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바로 케이블 채널의 비정규직 기자로 일을 시작했죠. 곧이어 SBS에서 채용에 나이제한을 없앤다는 소식을 들었고 2000년, 서른이 넘어 아나운서 공채 8기로 입사했습니다.”

그는 유독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다. 〈금요컬처클럽〉 〈접속 무비월드〉 〈재미있는 TV천국〉 등이 대표적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잦으셨는데, 돌아오실 때마다 클래식 음반을 사다 주셨어요. 베토벤・바흐・베르디 등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어머니는 평소에 피아노를 치시며 노래를 부르셨어요. 그런 경험들이 저에게도 영향을 줬나 봐요.”

그는 문화・예술 분야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끝없이 노력했다. 오로지 자신만의 언어로 시청자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대본만 갖고 진행하는 건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어요. 그저 앵무새가 되기는 싫었죠. 그런 생각이 들면서 1년 반 정도는 개봉 중인 영화들을 대부분 챙겨 보기 시작했어요. 방송국을 다니며 하루에 세 편씩이요. 결국은 스스로 말할 수 있겠더라고요. 배우의 연기, 감독의 디렉팅 등에 대해서요.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었습니다.”


늦깎이 아나운서가 됐지만 이른 시기(2004년)에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상황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꾸준한 활동 이후 김범수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2008년, 김건희 대표의 제안으로 문화예술 콘텐츠 기업 ‘코바나컨텐츠’에 합류한 것이다. 코바나컨텐츠는 까르띠에 소장품전(2008)을 시작으로 샤갈(2010~11), 고갱(2013), 마크 로스코(2015)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작품 전시회를 열어온 기업이다. ‘문화익인(文化益人・문화가 사람을 이롭게 한다)’의 가치 아래 전시, 출판, 아티스트 지원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쳐왔다.

전시가 있을 때마다 도슨트 활동도 빼놓지 않는다. 취미가 아닌 업이 됐기 때문에 치열하게 조사하고 공부했다.

“작가를 함께 이해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요. 관람객들은 시간을 투자해 오는 거잖아요. 제 해설을 듣기 위해 도쿄・런던・상하이에서 찾는 분들도 계세요. 항상 최선을 다해서 해설을 하고 싶죠.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 감상하고 싶어요.”

녹화가 없는 날 그는 몇 시간씩 전시장 앞을 지킨다. 검표를 돕고,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으며 소통하려고 한다.

도슨트 김범수에게는 〈마크 리부 사진전〉(2012)도 소중한 기억이다. 1950~80년대 베일에 가려 있던 중국과 소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한 작가였다. 자신이 받은 감동을 전하기 위해 그는 파리로 향했다. 작가와 그의 아내를 만났고, 그들의 사연을 녹여 사진들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당시 마크 리부에 대해 잘 모르던 분들이 제 해설을 들으며 우셨어요. 사진전을 알리기 위해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도슨트를 진행했는데, 오히려 제가 감동했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예술


안정된 직장을 포기한 그는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았다.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는 매 순간 전율을 느낀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두 가지를 느꼈죠.

첫 번째는 극장에 들어갔는데, 시설뿐 아니라 단원들의 악기까지 모든 게 낡고 오래됐어요. 무대 맨 앞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한 단원이 앉아 있고, 뒤로 갈수록 젊은 단원들이 연주를 준비하더라고요. 오색찬란한 역사를 유지해오는 극장의 모습이 보였어요. 무대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인 거죠.

두 번째는 공연 직전에 객석으로 들어오던 한 관람객의 모습이었어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는데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죠. 연주가 끝나자 그분이 무대를 향해 빨간 장미를 툭 던졌는데, 아직도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그들에겐 문화가 일상이에요. 참 부러웠습니다.”

반면 국내 공연・예술 문화에 대한 그의 관심과 우려는 따끔했다. 당장만을 생각하는 세태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우리 모두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대형 전시 공간들은 건축에서 각종 결함이 발생하고 있어요. 개개인의 장인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완성해야 하고, 혹은 임기 중에 끝내려 하다 보니까 다음 세대를 고려할 수가 없죠. 해외 나가서 비싸고 좋은 공연 보는 것보다 먼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의 잘못도 크다고 지적했다. 전시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제지하고, 줄을 설 때는 서로 배려하는 것이 ‘진짜’ 문화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미술관을 가면 아이들이 앉아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잖아요. 마네나 고흐의 그림 앞에서요.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신윤복, 겸재 정선 선생님의 그림이 있잖아요. 먼저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여름 뜨거웠던 전시는 끝났지만, 그는 다시금 다음 전시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전교 1등만 하는 부잣집 도련님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저도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고, 피눈물도 흘려봤고, 새우잠도 자봤거든요. 이혼을 겪었고,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아픔을 겪기도 했고요. 이제는 방송과 전시를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있다. 대중이 만나는 김범수가 늘 새로운 이유다.





김범수가 기획에 참여한 〈마크 로스코〉전.
  •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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