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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전쟁 영웅들이 모두 여자였다면?

화제의 웹툰 - 성별 반전 대하드라마 《여자 제갈량》

“여러분은 삼국지연의의 어떤 점에 가장 끌리는가?
맹장들이 말을 타고 1대 1로 겨루는 일기토. 사나이들의 우정. 슬프고 비정한 장면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단 세 치 혀로 수십 수백만의 장정을 죽이고 살리고 태워버리는 책사들의 활약이다.”

- 《여자 제갈량》 중에서 -
대부분의 웹툰이 ‘웹툰’으로 끝나는 시대다. 수없이 많은 웹툰 중에서 페이지를 넘겨가며 볼 수 있는 책의 형태로 출간되는 건 거의 ‘간택’이나 마찬가지.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고 그걸 묶어 단행본으로 내는 것이 당연한 건 이미 지난 세기의 일이 되었다. 《여자 제갈량》은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서 직접 나서 소셜펀딩으로 단행본 출간을 결정한 첫 번째 작품이다. 목표 모금 금액이 일정 퍼센트를 넘어가면 1쪽에 인쇄될 작가 사인이 친필 사인으로 바뀐다는 옵션을 발견한 독자들은 이른바 ‘김달 작가 손목 부러뜨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마치 왁자한 축제 한마당처럼, 플랫폼이 판을 깔고 작가가 재기를 뽐내며 독자가 즐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펀딩 목표액이었던 300만원을 1200%나 웃도는 3500만원이 단행본 출간을 위해 모였다. 제목만 보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삼국지》 외전에 불과할 것 같은 《여자 제갈량》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삼국지연의》는 지리한 세월 이어진 남자들의 전쟁 소설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지리한’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가 많겠지만, 《삼국지연의》가 땀내 풀풀 나는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자 제갈량》은 한나라 말에서 진나라에 이르는 전란의 시대를 주무른 책사들을 모조리 여자로 바꿔버린다. ‘What if?’는 너무나도 흔한 테마이고, ‘트랜스섹슈얼’ 역시 만화를 보는 이라면 익숙한 설정이겠지만 곽가·사마의·제갈량·방통, 순욱·가후 등 각기 다른 군주를 받들며 개성을 뽐내는 책사들이 모두 여자가 된 《삼국지》는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은가? 남자들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만 인식되던 그 시대 여성들에게 전쟁의 가장 중요한 ‘전략’ 부분을 넘겨주고 나니, 단순히 트랜스 물이란 설명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수많은 설정상의 변화가 뒤를 따른다. 물론 이 모든 변주는 원서에 기재되었고 유력한 설이라 받아들여지는 지점들, ‘사실’에 가까운 설정들을 토대로 설득력 있게 이뤄졌다.


훤칠한 키에 미색을 뽐냈던 제갈량은 아홉 살 위 오빠인 제갈근과 장기를 둬도 밀리지 않는, 병약하고 멀대같이 키가 크며 비상한 여자아이로 묘사된다. 사마의의 집안은 여자가 가장이 되어 모든 주도권을 쥐고 데릴사위를 들임에도, 대외적으로는 족보에 여자라고 이름을 올릴 수조차 없었다. 《여자 제갈량》 속 세계는 어디까지나 군주는 남자인 게 당연하며, 여자가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왕을 만드는 재능을 가진 자’라는 칭송을 듣는 것까지다. 호색한이었다는 설이 있는 곽가는 작품 속에서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로 묘사되며, 조조의 책사로 발탁된 뒤 스스로 모두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모조리 불태워버리겠다는 심산으로 조조에게 파괴적 전략을 제시하는 잔혹한 천재 캐릭터로 분한다.


《여자 제갈량》은 《삼국지》 원전에서 이어진, 다른 평행우주를 구축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학문적 성취와 식견을 가졌고, 천하를 호령할 기세를 지녔다 하더라도 여자라서 품은 뜻을 직접 펼칠 수가 없다. 성별의 벽은 너무나도 견고했다. 그들이 ‘여자’라는 설정상의 작은 뒤틀림은 전란의 분위기도, 한 가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현저하게 벌려놓았다. 작가는 강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약자의 핸디캡을 안은 그들의 심리에 주목한다.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한 허튼 욕망과 체념, 전란으로 피폐해진 고향을 위한 복수, 여성이라서 오히려 같은 여성에게 잔인하게 구는 속내, 투기와 시샘 등. 조근조근 풀어놓는 캐릭터의 내면, ‘사실’에 근거해 재해석 한 사건의 뒷모습. 오직 남자들만의 성전이던 전쟁터에 사뿐히 내려앉아 가장 냉철한 전략을 제시하는 여성 책략가들의 활약은 흥미롭지만, 가슴 아프다.

군주의 몰락과 함께 책사의 운은 끝나게 마련이다.

전란의 끝이 무엇인지 《삼국지》를 아는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아니 몰라도 이 작품을 즐기는 데는 관계없다.

《여자 제갈량》에는 예정된 비극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통쾌함이 있다. 살아가는 동안 가끔 목격할 수 있는 마이너리거의 역전홈런 같은.

《여자 제갈량》 / 김달 / 레진코믹스 토요일 연재
  • 2015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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